해외에서 일을 하면서 거주하면, 단순히 여행으로 왔을 때와는 다른 그 사회의 깊은 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4박 5일, 6박 7일 등으로 여행을 오면 곁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 높은 빌딩, 화려한 조명, 멋진 사람들 등 도시의 화려한 외관만 보기가 쉽다. 그래서 섣부르게 '아 이 나라는 이렇구나. 저렇구나'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이 아니라 생활'을 하게 되면 좀 더 리얼한 면을 볼 수 있다. 시내 중심에서 벗어나 외곽 지역을 돌아다니고, 관광객이나 외국인이 거의 없는 로컬 골목길을 지나면서, 우리는 도시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다. 거기에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삶과 고단함, 사회적 구조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캄보디아는 과거 크메르 제국이라는 찬란한 영광을 가진 나라다. 당시 크메르 제국의 영향력은 지금의 베트남 남부와 태국 국경까지 미쳤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왕국을 넘어선 그야말로 제국이었다. 그 시절, 캄보디아 제국과 비교될 만한 강국으로는 중국의 송나라 정도였다. 앙코르 와트 유적에서 당시 정치와 문화의 수준을 엿볼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도 캄보디아는 1960년대까지 비교적 동남아시아에서 괜찮은 나라였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보다 형편이 나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1970년대 킬링필드를 거치면서 사회 기반이 무너졌다. 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국가를 떠받치던 인력과 시스템도 사라졌다. 중국 문화 대혁명이 나라를 30년 뒤로 돌렸다는 말이 있는데, 킬링필드는 100년을 되돌렸다는 말이 있다. 대학살이 끝나고 전국에 남아있던 의사가 단 3명에 불과했다는 말이 있으니. 내전 이후 각 나라의 도움으로 지금의 캄보디아는 최빈국이라는 표현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동남아시아에서 미얀마, 라오스와 함께 가난한 나라로 꼽힌다.
사회적 복지가 충분하지 않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저소득층이 선택할 수 있는 생계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본 없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중 하나가 폐지수거, 공병 수거 등이다. 이는 선택이라기보다는, 다른 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현실에 가깝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도 조금만 시내에서 벗어나도 폐지 줍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노인들이 혼자서 폐지를 줍는 대부분인 한국과는 달리 캄보디아는 청장년층들이 많다. 그리고 부부가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큰 리어카를 남자가 운전하고, 여자가 줍고, 아이는 그 옆에서 놀고 있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두 번째 차이점은 한국보다 수입 구조가 더 낮다. 이것은 국민소득과도 관련된다. 한국이 국민소득이 35,000불인데 캄보디아는 2,500불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의 1/12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플라스틱 1kg, 빈 종이 1kg의 단가도 한국보다 훨씬 낫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1~3달러에 불과하다.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기도 하는데 기름값도 안 나올 것 같은데.. 같은 생각도 든다. (참고로 캄보디아 기름은 한국 못지않게 아주 비싸다. 한국처럼 수입하기 때문에 1리터에 1달러를 육박한다.)
이들은 이른 아침 이른 아침(5–8시)이나 해 질 녘 이후(17–22시) 많이 보인다. 특히 저녁시간 때는 시장 폐장 시간이라 마트나 개인들이 쓰레기를 많이 내놓는다. 그래서 주로 일을 마치고 저녁에 부업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폐지를 먼저 갖고 가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과 달리 칼부림까지는(?) 일어난 기사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폐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한국보다 더 치열하다. 개인들이 경쟁하는 한국과 달리 이곳은 Cintri 같은 민간 수거업체가 먼저 수거를 하기 때문이다. 폐지를 둘러싼 싸움은 종종 동물들의 먹이 사냥에 비유할 수 있다. 처음에는 사자나 호랑이가 사냥하고 큰 고기를 먹는다. 다음에는 하이에나 같은 동물들이 와서 잔고기를 먹는다. 마지막으로는 까마귀 등의 새들이 남은 고기의 구석구석을 해치운다. 도시에서 재활용품을 둘러싼 경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형 업체가 1차적으로 수거하고 다음으로는 영세 업체가, 그리고 개인들이 수거한다. 즉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줄어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적은 것을 두고 경쟁한다.
값싼 서비스와 저렴한 노동, 빠른 배달과 늘 깨끗한 거리. 우리가 편하다고 느끼는 도시의 모습은 사실 누군가의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삶 위에 세워져 있다. 쿠팡에서 새벽 배송을 받는 편리함은, 누군가가 아직 어두운 새벽에 물류센터에서 상자를 나르고, 졸린 눈을 비비며 거리로 나서야 가능하다. 우리가 잠든 사이 도시는 이미 움직이고 있고, 그 움직임의 상당 부분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동에 의해 유지된다. 길거리의 폐지나 공병도 우리의 눈에 잘 띄지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정리가 된다.
폐지 줍는 사람들은 소득이 낮은 캄보디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근 국가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방콕에서는 야시장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남긴 박스와 캔을 모으는 이들이 금세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일의 상당 부분을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이주 노동자들이 맡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가 버린 것들을 먼저 주워 담는 사람들이 국적에 따라 나뉜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낮에는 관광으로 붐비지만, 밤이 되면 거리 곳곳에서 현지인들이 캔과 병을 수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광지 특성상 재활용 단가가 조금 높아, 하루 3~5달러를 버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미국이라고 해서 별 다른 것은 없다. 미국 뉴욕에서는 밤마다 ‘캐너(Canner)’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거리를 누빈다. 이들은 버려진 캔과 병을 모아 개당 5센트 보증금(refund)을 받는다. 뉴욕의 높은 생활비 때문에, 정규직 없이 사는 사람들·이민자·노년층이 이 일을 많이 한다. 관광객이 가득한 맨해튼의 화려함과 이들의 삶이 하나의 도시 안에서 공존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카르톤네로라 불리는 폐지·박스 수거 노동자들이 도시의 중요한 노동층으로 자리 잡았다. 2001년 경제위기 이후 실업이 급증하면서, 하루 벌이를 위해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금도 저녁이 되면 손수레를 끌고 골목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흔하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소득에 따른 계급은 다 있다. 상류층은 정부 고위관료, 회사 대표, 혹은 귀족 가문들이다. 중간계층은 가장 많은 인원으로 일반 회사의 일반 서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층민은 주로 노동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청소, 건설, 일용직, 배달 등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층민보다도 더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은 누굴까? 그들을 가리키는 용어도 다양하다. 극빈층 혹은 최하위층, 저소득층 등 용어는 다양하다. 이들은 몸이 불편해서 일을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빚이 많은 사람들도 있고, 도박으로 날린 사람도 있다. 이유가 어째튼 이들은 사회의 아랫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수드라나 혹은 그보다도 낮은 불가촉천민들이 이들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뭄바이의 큰 노천 빨래터인 도비가트가 좋은 예이다. 이들은 수많은 옷을 손으로 빨고 돌판 위에서 문질러 세탁한다. 세탁된 옷은 호텔과 집으로 가지만, 도비들은 그 삶과 거리가 멀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도 사람들이 폐기물을 분류하며 도시를 지탱한다. 관광객들이 해변과 축제를 즐기는 동안, 이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도시는 화려함과 그늘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높은 빌딩과 반짝이는 간판, 세련된 사람들만 보면서 쉽게 도시를 판단하지만, 그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삶과 노동이 있다. 프놈펜에서는 한쪽 도로에서 폐지를 줍는 사람이 있고, 반대편 도로에서는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지나간다. 부모는 무거운 리어카를 끌며 하루를 버티고, 아직 인생의 고달픔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는 그 옆에서 스마트폰을 본다. 이 모습은 도시가 단순히 화려함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런 모습이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반복해서 보게 된다.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도시가 있는 곳이라면 비슷한 풍경이 늘 존재한다. 한국도 노숙자들이 있으며 미국이나 유럽 어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단순히 “저 나라는 가난해서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는 현대 도시 문명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그림자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