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여행지는 가까운 일본, 대만, 동남아 등이다. 동남아 중에서도 태국, 베트남을 많이 간다. 그러다 보니 이들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다.
중진국의 함정이란 한 나라가 가난한 단계는 벗어나서 어느 정도 잘 사는 ‘중간 수준의 소득 국가’까지는 올라간 상태를 말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선진국 단계로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정체되는 현상이다. 이들 나라들은 처음에는 임금이 싸기 때문에 공장을 유치하면서 단순 제조업으로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활 수준이 오르고 임금이 높아지면 더 이상 ‘값싼 나라’로 경쟁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기술력이나 브랜드가 선진국 수준에 바로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이때 문제가 생긴다. 값으로는 더 가난한 나라에 밀린다. 기술로는 선진국에 밀리는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성장이 느려지거나 멈추는 경우가 많다. 이 상태를 ‘함정’이라고 부른다.
그중에서도 요즘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나라가 하나 있다. '아시아의 병자'라고 일컬어지는 태국이다. 태국은 한인들이 2만여 명 살고 있다. 2024년 한 해 동안 태국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약 186만 명으로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에 이어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태국은 많은 한국인들의 관심을 갖는 나라이다. 그래서 유튜브에서는 동남아의 관광대국인 이 나라가 경제 침체에 빠지고 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졌다는 영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각종 매체에서는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제조업에만 머무르고 첨단 산업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군부나 왕실 등 정치적인 문제가 있다. 등등. 태국에 오랫동안 거주했던 내가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유튜브에서 나오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동남아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내가 느낀 싶은 이야기를 하겠다.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나라들은 브라질, 태국, 말레이시아, 남아공 등이다. 이들 나라는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언저리이다. 반대로 함정에서 벗어난 나라는 대한민국, 대만, 싱가포르 등이 있다. 처음부터 중진국은 아니었지만 중국, 일본도 높은 경제가 있는 나라이며, 같은 문화적 유사성을 일부 공유하는 베트남은 현재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르완다의 폴 카가메(Paul Kagame) 대통령은 대놓고 '우리는 한국과 싱가포르를 모델로 삼는다' 선언했다. 실제로 그 전략이 매우 유사하다.
중진국의 나라에서 벗어난 나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로는 유교기반의 문화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예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싱가포르의 전 총리인 리콴유의 토론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보편적 민주주의를 주장했고, 리콴유는 아시아적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둘 다 훌륭하신 분들이고 모두의 말이 다 맞다.
그렇다면 유교 자본주의는 무엇일까? 유교 문화에 있는 근면함, 교육 중시, 가족 중심의 책임감, 조직에 대한 충성 같은 가치가 자본주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쉽게 말해, 성실하게 일하고 공부를 중시하는 문화가 산업화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한 가지 예로 과거제도이다. 신분에 상관없이 출세할 수 있다는 아주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이는 오늘날의 이들 동아시아 국가들의 교육열과도 연관이 되어 있다. 나라가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과거 제도는 지속되었다. 최고통치자는 독재일지라도 엘리트 관료는 과거를 통한 경우가 많았다.
다른 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남미 모 국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곳은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공부를 하지 않는다. 부자는 이미 부유해서 공부할 필요가 없고, 가난한 사람은 공부해도 신분을 바꿀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유교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많다. 정경 유착과 권위주의 정당화, 창의성 저해, 경쟁 심화 등이다. 그리고 그 결과 유독 이들 나라가 현재 출산율이 낮다는 것이다.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아 난 나라들의 두 번째 공통점은 전후 토지개혁이다. 한국은 유상매수, 유상분배로 1950년대 토지개혁을 단행하여 지주제가 사실상 사라졌다. 내 땅에서 생기는 생산물은 모두 자기 것이 된다. 생산성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기존에 4명이서 일했다면 이제는 2명이면 충분했다. 남는 인력은 모두 공장으로 가서 생산을 담당했다. 이렇게 번 돈으로는 자식 교육에 올인했다. 저학력층은 제조 현장에, 고학력층은 대기업, 정부 관료 등으로 갔다. 일본은 1946년 미군정의 주도로 급진적 토지개혁을 했다. 농촌의 보수적 지주 세력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 기반을 닦았다. 농촌 소득이 올라가면서 일본 공산화를 막고 내수 소비 시장을 형성했다. 대만은 1953년 토지를 주식으로 교환하는 형태로 지주들에게 땅을 받는 대신, 정부가 소유한 공기업의 주식을 주었다. 지주들이 자연스럽게 산업 자본가로 변신했다. 이것은 농업 자본이 공업 자본으로 흐르게 만든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싱가포르는 1966년 토지수용법을 강력히 시행했고 오늘날에도 공공주택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1950년대 공산주의 정부에서 시행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필리핀은 미통치기와 이후 여러 차례 토지 개혁을 시도했으나 대지주 가문의 반대로 실패했다. 남미나 아프리카 등 많은 나라들 역시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진 거대 농장주 계급이 정치와 경제를 장악했다. 브라질은 상위 1%가 전체 토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풀어만 놔도 소가 알아서 큰다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광활한 팜파스 초원을 소수 가문이 독점하면서 산업 자본으로의 전환에 실패했다. 이들 나라는 한국으로 치면 조선시대 안동 김 씨나 평양 조 씨가 아직까지도 떵떵거리며 대농장을 소유하고 잘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토지개혁이 동북아시아는 성공했고 다른 곳은 실패했을까? 당시 동북아는 기존 지주 세력의 힘이 약했고, 무엇보다 공산화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당시 공산주의였던 중국과 북한은 토지개혁을 시행했다. 미군정은 토지개혁을 시행하지 않으면 오히려 공산화가 된다는 두려움(?)이 커서 먼저 토지개혁을 실시하게 하였다. 실제로 농민들을 달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북한은 농민들에게 땅을 공짜로 나눠주는데 우리는 왜 이런가? 농민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당시 지주들의 힘이 약했던 것도 한 가지 이유이다. 남미나 동남아의 지주들은 친미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한국이나 대만은 지주 세력이 친일파여서 식민 지배 이후 이들 발언권이 약했다.
토지 개혁의 성공 여부가 전후 각 나라의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은 셈이다. 만약 필리핀이나 남미에서 아주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2026년 현재 토지개혁을 한다면 어떨까? 물론 효과가 어느정는 있겠지만 1950~60년대에 비하면 아주 미비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산업구조가 농업에서 서비스나 제조로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국민 대다수가 농민이었다. 생산량의 50%를 지주에게 바쳤다. 이러한 구조에서 만약 100% 모두 자기 것이 된다면? 생산량은 아주 폭발한다. 농지 소유 → 농가 소득 증대 → 자녀 교육(인적 자본 투자) → 산업화에 필요한 인재 배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작동한다. 즉 토지개혁이라는 것은 1950~60년대에 했었어야 성공하는 것이었다.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면 유교 자본주의의 비판으로 여러 나라를 꼽는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아일랜드, 폴란드, 체코, 에스토니아 같은 동유럽 등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론이 있다. 이스라엘은 성경시대부터 등장해서 디아스포라(유대인 이주)와 히틀러에 의한 대학살 등을 겪긴 했지만 어느 정도 어느 정도 살았던 곳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없어졌더라도 유대인은 꾸준히 살아남아 유럽 곳곳에서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즉 원래부터 어느 정도 근본이 있던 나라였다. 또한 전후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유대인 네트워크라는 특수성이 있다. 현재도 미국을 지배하는 것은 유대인이라는 말은 반은 틀렸지만 반은 맞는 말이다. 아일랜드, 폴란드, 체코, 에스토니아 같은 나라들은 유럽 대륙이다. 유럽의 경우 원래부터 유럽의 전통적인 문화가 있던 곳이다. 그리스 로마 시절부터 내려오던 문화적 가치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우크라이나의 경우 전쟁 중이라도 명목 1인당 소득은 약 5,000달러이다. 통계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부룬디는 약 210달러, 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은 약 500달러이다. 유럽에서 두 번째 가난한 몰도바는 7,100달러, 세 번째 가난한 코소보는 약 7,600달러이다. 우간다는 1,200달러, 남수단은 약 400달러이다. 아시아를 예를 들어보자.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2,000달러 내외. 미얀마는 1,500달러 정도이다. 즉 똑같이 가난해도 유럽에서 가난한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다. 실제로 2013년 내가 알바니아를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는 알바니아가 코소보와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못살던 나라였다. 하지만 내가 여행한 알바니아는 아프리카나 어디 동남아 나라보다 훨씬 괜찮은 곳이었다. 적어도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은 없었다. 구걸하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또 길거리에 쓰레기가 많지도 않았다. 똑같이 가난하더라도 유럽의 빈국에서 사는 것이 아프리카나 동남아 빈국보다 훨씬 낫다. 이유는 단순하다. 적어도 그곳 사람들은 하루 두 끼를 챙겨 먹고, 맨발로 다니지는 않는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첫째로 유럽의 빈국들은 바로 옆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들이 있다. 이들 나라가 공장을 세우고 여러 가지 간접적인 효과가 있다. 두 번째로는 EU라고 하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가난해도 함부로 정치를 망치거나 독재를 하기 어렵다. "너희가 법치를 지키고 부정부패를 없애면 우리 클럽(EU)에 끼워줄게"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 알바니아, 몰도바 같은 나라들은 EU에 아직 속해있지는 않지만 유럽대륙에 같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EU 표준에 맞춰 법과 제도를 계속 수정한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처럼 대놓고 막장 정치를 하기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는 역사적인 기본값과 문화적 자부심이 있다.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는 가난해도 문해율이 100%에 가깝다. 구소련권 국가들은 경제는 망했어도 기초 과학, 수학, 예술 교육만큼은 철저히 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상교육이었으며 과거 구소련당시 시골 마을이라도 극장이 있었다. 네 번째로는 로마문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루마니아는 국명이 ‘로마’에서 따왔을 정도로 로마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있다. 알바니아와 세르비아 등 발칸 반도 국가들은 고대 로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군인 황제'들이 자신들의 조상인 일릴리아인(Illyrian)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문화적 DNA가 있는 셈이다.
위 주장들에 대해서도 문화적 편견이나 서구 문명에 대한 일방적인 편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수많은 아프리카 나라들은 아직도 내전이나 분쟁을 하고 있고 남미는 저개발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 원인을 과거 식민지배의 잔해로 꼽는다. 하지만 언제까지 식민지배 타령만 할 것인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전통적인 서구 선진국과 이들의 후손들이 세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을 제외하고,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했다. 한국도 그중 하나였다.
전후 독립한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의 수많은 국가에는 기이할 정도로 일치하는 공통점이 있다. 강대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순간, 사람들은 환호한다. 곧이어 식민지배 당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나 혁명가가 정권을 잡고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다. 형식적으로나마 식민지배의 잔재를 끊어내려 시도하며, 초기에는 경제 성장에 관심을 두고 국가를 운영한다.
처음에는 정해진 4~5년의 임기를 채운다. 하지만 임기를 마친 뒤에는 한 번 더 권력을 잡는다. 국민 역시 식민지배가 끝난 직후의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그들에게 한두 번의 정권 연장을 허용해 준다.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10년쯤 지배했으면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음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결국 국민들이 반대하기 시작하면 쿠데타가 일어나고 유혈 사태가 뒤따른다. 공들였던 경제는 망가지기 시작하고, 통치자는 점점 독재자로 변해간다. 초기에 신경 쓰던 민생 경제 대신, 이제는 자기 식구들 챙기기에만 혈안이 된다. 중간에 독재자가 한두 명 바뀌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시스템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1950년 전후를 기점으로 한 명 혹은 몇 명의 독재자가 40여 년을 해 먹는다. 이후 1990년대 초반 공산주의 소련의 붕괴화 자유화의 물결로 독재자가 잠시나마 물러나고 민주 정권이 들어서기도 한다. 그러나 형태만 바뀌었을 뿐 또 다른 독재자가 등장하고 나라는 말아먹고 경제는 골로 간다. 물가가 천문학적으로 상승해 100조 달러 지폐를 마구 찍어내다 결국 망해버린 짐바브웨나,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도 국가 시스템이 붕괴한 베네수엘라 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대다수는 저렇다.
이러한 현상들이 특별하게 보이는가? 현실은 지구상 대부분의 독립국이 겪고 있다. 저것은 일반적인 기본값이다. 세계사적 중력을 거스르고 번영을 일궈낸 한국, 대만, 싱가포르, 일본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세계사적인 돌연변이자 경이로운 예외라고 할 수 있다.
태국, 선진국이 되기 전에 늙어버린 나라의 비극. 1980년대, 태국은 '아시아의 다섯 번째 용' 후보였다. 일본 제조업의 든든한 생산기지였고, 아시안 게임을 네 번이나 개최하며 동남아의 맹주로 군림했다. 하지만 지금 태국의 거리는 과거의 영광과는 다르다.
너무 일찍 써버린 ‘외국인 노동자’ 카드. 태국을 여행하다 보면 건설 현장이나 궂은일 현장에서 태국어보다 미얀마어나 크메르어가 더 많이 들린다. 국민소득 8,000달러인 태국이 2,000달러 안팎인 인근 국가(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의 노동력을 흡수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당연해 보인다. 특히 라오스의 경우 언어나 문화가 비슷하여 수많은 라오스 사람들이 태국으로 일을 하려 온다. 미얀마는 내전 이후 급속히 늘어났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는 너무 빨리 히든카드를 써버린 셈이다. 한 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자국 저임금 노동자들이 제조업의 숙련공으로 진화하며 기술을 축적해야 한다. 그런데 태국은 그 단계를 건너뛰고 외노자로 빈자리를 채웠다. 자국민들은 힘든 일을 기피하고, 기업은 기술 혁신 대신 값싼 노동력에 안주했다. 중진국의 함정은 바로 이 '안주'에서 시작된다.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늙어버린 나라. 가장 뼈아픈 지점은 인구다. 출산율 0.9~1.0. 방콕의 화려한 스카이라인 뒤에는 결혼을 포기한 청년들이 가득하다. 한국이나 대만도 늙어가고 있지만, 그들은 최소한 '부자가 된 뒤에 늙었다. 반면 태국은 중진국 문턱에서 성장이 멈춘 채 인구만 늙어간다. 젊은 피가 돌지 않는 경제는 활력을 잃고, 복지 비용은 늘어나며, 결국 국가의 저축은 투자 대신 노인 부양으로 흘러가게 된다. 인구 8천만 중에서 1천만 명, 비공식적으로는 1200만 명이 수도 방콕과 주변에 몰려있다. 매일 극심한 교통체증이 있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아이를 놓지 않는다. SNS등 비교문화도 이바지한다. 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에서는 페이스북이 네이버+다음+카카오톡+네이트온이다.
문제는 경쟁자의 등장이다. 바로 베트남이다. 과거 박항서 감독 시절, 베트남 축구가 태국을 꺾었을 때 태국인들이 느낀 공포는 단순히 스포츠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젠가 베트남이 우리를 추월할 것'이라는 공포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태국의 절반 수준이었던 베트남의 1인당 소득은 이제 4,000달러를 넘어 태국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태국의 생명줄인 관광산업조차 베트남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고, 일본의 공장들은 이제 태국을 떠나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로 향한다. 동남아에서 큰 형님 노릇했던 태국은 그 자리를 이제 베트남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 2027년경 베트남과 태국의 GDP 규모가 거의 대등해지고, 2028년 이후 베트남이 공식적으로 태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베트남이 태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태국은 다시 도약할 수 있을까? 태국이 다시 80년대의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중진국의 함정은 한 번 빠지면 나오기 힘든 늪과 같다. 토지 개혁을 통한 기득권 해체도, 정권의 안정성도, 인구 구조의 반전도 태국에겐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를 단언할 수 없다. 태국이 가진 특유의 유연함과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심지라는 지정학적 이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있다. 80년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태국은 지금 단순한 '생산 기지'를 넘어 '혁신 기지'로의 뼈를 깎는 변신이 필요하다. 태국에 오랫동안 살았던 나의 입장으로써는, 태국이 다시 한번 도약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