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Robin Dunbar, 프렌즈
얼마 전 코로나에 감염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면, 당신은 친구가 없는 것이라는 멕시코의 감염병 전문가의 의견이 기사로 난 적이 있다. 나는 기사의 스크린샷을 최근 코로나를 앓았던 친구에게 보내주며 "네 덕분에 친구가 있는 걸 증명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로빈 던바의 "프렌즈"
마침 우정에 관련한 책을 읽는 중이라, 이 책에서 다루는 친구 관계와 인간 지능의 관련성에 대해서 소개해볼까 한다.
(이 책에서는 친구 관계를 긴밀한 유대 관게를 유지하는 사이로 가족이나 친척 등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두를 친구 관계에 포함 시켜 다루었다.)
친최몇? 던바의 수, 150명
던바의 수란 한 사람이 유지할 수 있는 친구 수의 최대치를 뜻하는데, 대부분의 인간이 친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수는 150명 이라고 한다.
여러가지 다른 종류의 실험을 통해 이 숫자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1) 영국에서 사람들이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친구 수의 평균은 154명이다.
2) 미국 결혼식 하객 수의 평균은 지난 10년 내내 놀랍도록 같은 수를 유지하였으며, 이는 144명 이다.
3) 1086년 잉글랜드의 토지대장에 따르면, 한 마을의 규모는 150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700년이나 지난 1780년대에도 잉글랜드 농촌 마을의 평균 인구 수는 여전히 160명 정도였다.
4) 노르웨이 대학의 교직원과 학생들이 3개월간 보낸 이메일 수를 조사한 결과, 일정 시간 동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접촉이 늘거나 끊기는 패턴을 고려하여) 한 사람이 이메일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수는 150명에서 250명 사이로 일정한 수준이었다.
남의 털을 오래 고르는 원숭이가 더 똑똑한 원숭이
원숭이들이 털을 손질하는 이유는 위생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가 주도적이지만, 위생 만을 위하는 것이라기에는 이 동물들의 털 손질 시간이 비상식적으로 길다. 가장 사교적인 몇몇 원숭이들은 하루 활동 시간의 5분의 1을 친구들의 털 손질을 해주는 데 쓰기도 한다고 한다. (8시간 잔다고 치면, 하루 3시간 가량을 털 손질에 쓰는 셈이다! 원숭이의 털 손질 시간과 당신의 샤워 시간을 비교해보라!)
결과적으로 동물들의 털 손질 시간은 위생의 필요나 몸 크기보다는, 집단의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었다고 한다(친구가 많으면, 손질해주어야 할 원숭이의 숫자도 늘어난다). 그리고 집단의 규모는 다시 해당 동물의 뇌의 크기 (더 정확히 말해서는 지능에 관여하는 대뇌 신피질의 크기)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이 집단의 크기와 뇌 크기를 비교해 구한 공식에, 인간의 뇌 크기를 대입하면 인간 집단의 크기는 정확히 148이 나온다고 한다. 던바의 수와 놀랍도록 유사한 숫자다.
외향적 인간관계와 내향적 인간관계
그렇다면, 사교성이 뛰어난 외향적 인간들이 더 똑똑하고, 행복한 삶을 살까? 나는 MBTI 상으로는 외향성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내향적 스타일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즉, 친구가 몇 안 된다는 뜻이다. 나와 같은 내향적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작은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은 큰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에 비해 각각의 친구들과 더 깊이 있는 관계를 나누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외향적인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사회적 나비'에 비유했다.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며 향을 맡는 나비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다니며 시간을 쓴다는 것이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들은 우정을 더 적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신, 각각의 친구들과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 유명한 프로이트도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는 애정은 가치가 없다고 불평하지 않았는가!
재미있는 사실 : 바람둥이들이 지능이 더 낮다?
한 개체와 평생 동안 짝을 이루는 종들이 마구잡이로 짝짓기를 하는 동물이나, 한 마리가 여러 마리를 거느리고 사는 동물들보다 대체로 큰 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사실로 미루어,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는 카사노바 스타일의 남성들은 한 명의 여성과 진중하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적 지능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친구 관계에서 (혹은 연인 관계에서), 뇌 크기에 더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은 집단의 크기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유대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늑대나 하이에나 같은 다른 동물들도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지만, 유인원이나 인간과 같은 수준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진 않는다.
지능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 발달한걸까?
인간의 지능이 어떻게 발전하였는가에 관해서는 정말 다양한 이론들이 있지만, 이 책을 읽을수록 지능이 더 많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 발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친구가 많을수록 먹이나 포식자에 대한 정보를 더 빠르게 얻는 등 생존에 더 유리하다. 어떤 언어학자들은 'gossip' 이론이라고 해서 친구들과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더 효과적으로 나누기 위해 언어가 발달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뒷담화를 나누기 위해서도 역시 친구가 필요하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 정말로 더 똑똑할까?
저자의 뇌 MRI 영상 연구에 따르면, 큰 사회적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사람일수록 사교 기술을 관장하는 뇌 부위들의 크기가 더 컸으며, 특히 전전두피질이 발달해 있었다고 했다. (이 저자는 도대체 친구가 몇 명이나 되길래 자꾸 이런 쓸데없는 연구를 진행하는지!)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내 친구관계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150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복잡하고 내밀한 인간관게를 유지하게 위해서는 참으로 뛰어난 기억력과 어휘력, 사회적 인지능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페이스북 친구와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000명은 가볍게 넘어야 '인싸'로 인정받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미래에는 150명은 기본이고 1000명 2000명의 친구관계를 유지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진화에 성공하게 될까?
이 글을 마무리 짓으며.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뒤져 몇 안되는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안부 인사나 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