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사이드의 코레오그래피와 바디우의 비미학을 경유하여
윌리엄 포사이드의 작품 In the Middle, Elevated는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중심을 잃고, 마치 무대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이 작품에서 무용수들은 공간을 넘나들며 신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듯한 동작을 반복하며, 각 동작은 분절적이고 비연속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무용수의 신체는 더 이상 단지 감정이나 내면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각과 사고를 창출하는 복합적 기계로서 기능한다. 그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안무의 수행이 아니라, 존재의 가능성 자체를 탐구하는 실험적 여정을 나타낸다. 무대는 감각의 원초적 대립을 상징하며, 공간과 시간은 고정된 규범에서 벗어나 유동적인 상태로 변형된다. 무용수의 각 동작은 일종의 ‘사고의 파편’처럼 기능하며, 그 파편들이 모여 새로운 의미의 출현을 이끈다.
이러한 운동은 윌리엄 포사이드가 ‘choreographic object’라 부른 개념에 바탕을 두며, 움직임이 더 이상 인간의 표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조건을 탐구하는 매개로 기능함을 드러낸다. ‘choreographic object’는 안무가의 의도나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무용을 넘어서, 움직임 그 자체가 하나의 사유적 구조물로 기능한다는 개념이다. 포사이드는 춤을 일종의 ‘객체’로 간주하며, 이를 통해 신체는 의미를 전달하는 주체가 아니라, 사고와 감각을 생성하는 복잡한 장치가 된다. 이 개념은 안무가 없는 안무, 중심 없는 구조, 해석 없는 실천을 가능하게 하며, 움직임을 단순한 표현이나 내면의 표상이 아닌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전환시킨다. 무용은 이때, 무용수나 관객을 넘어서서 하나의 자율적 사유 장치로 기능한다. 움직임은 곧 신체의 언어가 되고, 그 언어는 감각 이전의 감각을 호출하며, 세계의 균열을 긋는다.
이때 미는 더 이상 조화와 완결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불협의 공간에서 솟아오르는 낯선 진리의 형상이며, 우리가 기존의 존재론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의 출현이다. 알랭 바디우가 말하는 ‘비미학(non-aesthetics)’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미학—감각적 쾌감, 조화, 형식미 등—을 거부한다. 그는 예술이란 단지 감정을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전복시키는 ‘진리의 절단’이라고 본다. 바디우에게 예술은 하나의 사건(event)이며, 이 사건은 기존의 질서나 규범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실재를 만들어낸다. ‘비미학’은 예술을 철학의 하위 개념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대등하게 진리를 생산하는 자율적 절차로 간주한다.
이러한 사유는 신학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예술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교리를 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언어와 상징을 통해 신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이를 통해 신앙은 단순히 교리의 전달을 넘어서서, 신의 부재 속에서 의미를 창출하는 살아있는 실천이 된다. 예술이 진리의 사건을 창출하는 것처럼, 신앙도 새로운 진리의 사건을 창출하는 언어적 실천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비미학적 접근은 신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신학은 이제 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교리를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 신앙의 언어와 상징을 통해 신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신앙의 진정성은 교리가 아니라, 신의 부재를 직면하며 그 속에서 창조되는 의미들에 있다. 이는 신학이 신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신앙 공동체가 신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주체적 실천임을 강조한다.
캐서린 켈러는 길 위의 신학에서 신학을 ‘길 위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녀에게 신학은 이미 주어진 교리나 진리의 전달이 아니라, 존재론적 미완성의 과정이다. 켈러는 신앙을 정적인 종결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하는 ‘길’로서 묘사한다. 그녀는 ‘길 위에서’라는 개념을 통해, 신학이 끝없이 질문하고, 끊임없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임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접근은 예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술 역시 고정된 형식이나 의미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나 창작자에게 진리와 존재를 향한 끊임없는 탐색을 요구한다. 예술과 신학은 모두 이 여정의 일환으로, 고정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진리로 향하는 길 위에서 서성이며, 그 과정에서 미학적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갱신되는 구원의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예술과 신학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진리를 창출하는 과정을 함께 나아가야 한다. 그 진리는 단순한 형식적 규명이나 이론적 해석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적 경험과 그 경험의 복잡성을 다루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여전히 이 길 위에서 서성이고 있으며, 미학적 경험을 통해 구원의 과정을 갱신하고 있다. 이 과정은 완성되지 않은, 끊임없는 진리로 향하는 여정이며, 예술과 신학의 만남은 그 여정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