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존재와 인식의 경계

불완전한 계시와 인간의 욕망

by Wooin

태초의 신들은 언제나 감추어진 존재였다. 그들은 빛으로 내려오면서도 어둠 속으로 숨었고, 계시를 내리면서도 침묵했다. 제우스는 번개의 형상으로 드러났으나, 결코 그의 내면은 말하지 않았다. 아폴론은 진리를 상징했지만, 그 진리는 언제나 눈부셔 눈을 가리는 빛처럼 다가왔다. 그들은 인간과의 교감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었지만, 드러낸 바로 그 순간 다시금 가면을 썼다. 신의 본질은 언제나 그 너머, 형상을 넘어선 자리에서 흐릿한 그림자처럼 서성였다.

고대의 신들은 결코 완전한 진리를 인간에게 주지 않았다. 그들이 베푼 지식은 언제나 조각난 파편이었고, 인간은 그 파편을 꿰매어 하나의 신을 상상했다. 계시는 종종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은 신의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기보다는 인간의 이해를 시험했다. 인간은 그 불완전한 조각을 긍정의 언어로 엮고, 그것을 하나의 전체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 총합은 언제나 신의 본질에서 한없이 멀다.

긍정의 신학이란, 신을 정의하려는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신을 체계화하고, 교리화하고, 언어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인간의 이성 안에 신을 가두려는 충동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욕망은 신의 초월성을 무시하고, 신의 타자성을 인간의 상상력으로 환원시킨다. 이때 신은 더 이상 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그림자, 상상 속의 피조물일 뿐이다. 신의 자리를 인간의 언어가 차지하고, 계시의 자리는 해석이 잠식한다.

신을 말하려는 열망이 곧 신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신은 언어를 넘어선 존재이며, 개념을 넘어선 신비이다. 우리가 신을 ‘안다’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신을 인간화하고 있다. 신의 존재는 ‘모름’의 감각 속에서, 불확실성과 침묵 속에서 더욱 진하게 체험된다. 계시는 존재하지만, 그 계시는 본질이 아니라 파편이며, 전체가 아니라 흔적이다. 신은 드러나지만, 드러남 자체가 또 하나의 감춤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을 완전히 규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부정신학은 의미심장한 전회를 제공한다. 동방정교회의 부정신학은 신을 긍정적 언어로 정의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경고한다. 이 전통은 신을 ‘무엇인가’라고 말하는 대신, ‘무엇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신은 ‘선하다’, ‘전능하다’는 진술보다, ‘선함조차 초월한 존재’, ‘전능함조차 그 언어로 담을 수 없는 존재’라는 부정을 통해 더 가까이 다가온다. 말할 수 없음이 말보다 진실하다. 신은 모든 긍정적 진술의 잔여에서, 말과 말 사이의 침묵에서 비로소 숨을 쉰다.

동방정교회는 이성과 교리가 신을 설명하려 할 때, 오히려 그 신비성이 파괴된다고 본다. 그들은 신을 ‘무한’, ‘불가해’, ‘절대 타자’로 정의하며, 인간의 이성은 그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침묵하거나, “그는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의 바깥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신에 대한 더 정직한 태도이다. 이것은 몰이해가 아니라, 신비에 대한 경외다.

칸트의 신학 역시 이 인식론적 한계를 명확히 지적한다. 그는 신이 인간의 인식 능력을 초과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신은 감각 경험의 대상이 아니며, 순수 이성의 산물이 될 수 없다. 그는 “신은 도덕적 이념으로서 가정될 수는 있으나, 증명될 수 없다”고 말한다. 신은 인간의 윤리적 실천 안에서 느껴질 수 있는 형상 없는 명령일 뿐, 어떤 개념적 정의로도 붙잡을 수 없는 존재다. 이는 신에 대한 인간의 모든 인식이 근본적으로 추론의 영역일 뿐임을 말해준다.

이러한 철학적·신학적 통찰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우리는 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그 ‘모름’ 속에서만 신과의 관계는 가능해진다. 신은 명제가 아니라 어둠 속의 떨림이고, 교리가 아니라 손 닿지 않는 타자이며, 말이 아니라 침묵 속의 울림이다.

결국 신을 향한 참된 태도란, 그를 ‘알 수 없음’의 깊이에서 응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와 이성은 신을 붙잡을 수 없다. 우리는 신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을 뿐이다. 신은 언제나 뒤돌아선 자리에 머물고, 그의 빛은 언제나 눈부시게 어둡다. 계시는 우리를 향한 신의 몸짓이지만, 그 몸짓조차도 완전히 해석될 수 없다. 신을 향한 길은 끝나지 않는 그림자 추적이며, 그 추적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신을 향해 나아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림자에 대한 사유, 신의 부재에 닿는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