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 여러 진리

진리의 다면성: 라쇼몽으로 내민 신의 얼굴

by Wooin


사건의 흔적은 시간 속에 묻히고, 그 진실은 각기 다른 얼굴을 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소설 라쇼몽은 하나의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여러 사람들의 상반된 증언을 통해, 진리의 불완전성과 다면성을 드러낸다. 이 이야기는 한 여인과 남편, 그리고 도둑이 얽힌 비극적인 사건을 그린다. 여인은 남편을 죽였다고 고백하고, 도둑은 자신을 방어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죽은 남편의 영혼은 사건을 또 다른 방식으로 증언한다. 여인은 숲속에서 만난 도둑에게 강간당한 뒤, 남편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 결국 그를 죽였다고 말한다. 도둑은 그 여인의 주장에 반박하며, 자신이 방어하려 했고, 그 싸움에서 남편이 죽었다고 주장한다. 남편의 영혼은 자신이 죽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사건을 또 다른 각도에서 증언한다. 모두가 말하는 진리는 다르고, 각자의 경험과 이해에 따라 하나의 사건은 여러 모습으로 변형된다.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고정된 사실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눈과 마음이 끊임없이 그 진리를 재구성하는 것인가?


이 물음은 형이상학적 세계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진리’라는 개념은 단순히 고정된 것일 수 없다. 진리가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진리는 시간과 맥락 속에서 매 순간 다르게 드러나며, 우리가 마주하는 방식도 그때그때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진리의 변화무쌍한 얼굴들


라쇼몽의 증언들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진리도 언제나 다르게 펼쳐진다. 진리라는 것은 불변의 본질을 지닌 채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것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각기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관점 속에서 드러나는 것인가? 우리가 이해하는 진리는 변할 수 있을지라도, 그 진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중요한 것이다. 진리가 고정된 사실로 존재한다면, 그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계속해서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라쇼몽의 이야기 속에서처럼, 각 인물들은 자신만의 진리를 주장하며, 그 진리가 각기 다른 시각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라 해도, 그것을 해석하고 경험하는 우리의 방식은 언제나 다를 수밖에 없다. 진리는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눈은 매 순간 새로워지고, 그에 따라 진리는 다르게 드러난다.


따라서 진리는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고 해석할 것인가는, 인간의 역사와 삶 속에서 끊임없이 변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진리를 온전히 알 수 없다. 라쇼몽에서 각각의 해석이 다르듯, 진리도 각기 다른 시각과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진리가 완전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없다. 진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한, 항상 변형되며,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온다.


불완전한 진리와 그것을 향한 여정


진리가 불변이라면, 우리는 그 진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라쇼몽에서 각각의 증언은 서로 충돌하며 서로 다른 진실을 만들어낸다. 여인의 고백은 자의적인 해석을 따르고, 도둑은 자신이 방어하려는 권리를 주장하며, 죽은 남편은 자신이 사건을 경험한 방식으로 그 진리를 이야기한다. 진리는 한 점에서 절대적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은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겪는 시간 속에서 계속해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진리는 고정된 사실로 존재할지언정, 그것을 이해하는 우리의 방법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그 진리를 마주하는 우리의 얼굴은 계속해서 변해가며, 그에 따라 진리는 그 모습을 다르게 드러낸다.


우리는 진리의 본질을 절대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진리의 변형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 본질에 다가가려는 길을 계속 걸어간다. 진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드러날 때마다 우리는 그 진리의 일부를 붙잡고 나아간다. 라쇼몽에서 우리가 각기 다른 진실을 바라보듯, 우리는 그 진리의 각기 다른 조각들을 통해 사건을 풀어나간다. 우리는 진리를 절대적으로 온전히 알 수 없고, 다만 그 진리의 조각들을 붙잡으며 여정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다면체 속에서 진리를 만나다


진리란 고정된 본질을 지닌 채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마주하는 매 순간마다 다르게 드러나는 것일까? 라쇼몽에서처럼, 하나의 사건도 여러 시각으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면, 진리 역시 그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고 이해할지는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진리를 온전히 알 수 있을까? 아니면, 진리는 그 자체로 변화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나타날 뿐일까?


결국, 진리란 한 방향으로 고정된 것이 아닌,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진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 진리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우리는 진리를 마주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진리는, 결국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나 불완전한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그 진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그때그때 다르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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