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와 전도서, 그리고 피로한 시대의 인간
고통이 담긴 목소리
한때 세상은 명확한 질서를 지닌 곳이었다. 노력은 결과를 낳고, 선한 삶은 보상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 질서는 무너지고 고통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퍼져 나간다. 이 고통은 외부에서 강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 내면화되어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대 히브리 문학인 욥기와 전도서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텍스트들은 고통과 허무,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려는 인간의 사유를 포착한다.
욥기는 고통의 언어로 시작된다. 욥은 말한다. “왜 내가 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그의 고통은 단지 육체적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신의 존재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무응답이다. 부재의 현존. 신의 음성은 폭풍 속에서만 울려 퍼지며, 욥의 고통은 이해될 수 없다. 신의 침묵은 마치 우리가 고통 속에서 마주하는 부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부재 속에서 욥은 비로소 신의 존재를 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된다. 그것은 완전한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으로 바뀐다.
욥의 절망 속에서 느껴지는 신의 침묵은 그 자체로 존재의 불완전함을 가리키는 신호이다. 우리가 신의 뜻을 모두 알 수 없다고 해도, 그 고통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임을 암시한다. 신은 대답하지 않지만, 그 부재 속에서 인간은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를 탐구한다.
허무 속에서 발굴된 의미
전도서는 또 다른 종류의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은 단순히 절망적인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시스템, 모든 믿음, 모든 기대에 대한 의심을 담고 있다. 코헬렛(전도자, 전도서의 저자)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규칙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 그는 규칙의 부재를 받아들인다. 현존의 부재. “헛되다,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이 반복적인 선언은 그 자체로 허무의 미학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 허무 속에서 코헬렛은 또 다른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라."
전도서에서 허무는 단지 부정적인 감정으로서 허탈감이 아니다. 혹은 허무한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신을 믿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제시한다. 의미가 보장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명령을 받는다. “오늘의 삶이 의미 없다고 해서 내일도 의미 없다는 법은 없다.” 코헬렛은 세계를 무의미하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무의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한다. 전도서의 목소리는 단순한 절망의 외침이 아니라, 존재의 허무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요구하는 목소리이다.
피로한 시대의 고백
오늘 우리는 과거의 규칙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느낀다. 과거에는 인간이 외부의 질서에 따라 삶의 의미를 찾았다면, 이제는 자기 자신을 규명하고 유지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점점 더 피로하고, 그 피로는 신체적 고통을 넘어 정신적인 고갈로 이어진다.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며, 남들에게 인정받고, 성과를 쌓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이 시대는 불확실하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을 찾기 위해 매일을 살아가지만, 결국 소진된다. 우리는 점점 더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품는 존재가 되어 가고, 그 속에서 고통은 우리의 삶의 일부로 여겨지게 된다. 욥기와 전도서가 오늘날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허무, 그것이 단지 불행이 아니라 존재의 필연적인 부분임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워지는 질문들
욥기와 전도서는 결국 하나의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고통은 단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며, 그 질문 속에서 인간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도록 한다. 삶이 부여한 고통과 허무의 바다에서 우리는 새로운 의미를 낚아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고통을 해석할 수 없다. 오히려 고통과 허무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속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한다. 욥기와 전도서가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삶의 방식은 우리가 겪는 고통과 허무를 온전히 마주한 후에도 여전히 살아가야 한다는 명령과 같다.
삶의 불완전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욥기와 전도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그것은 우리가 완전한 해답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다. 고통과 허무 속에서 우리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고통을 통해 존재를 깨닫고, 더 깊은 인간으로 살아간다. 이 오래된 텍스트들은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여전히 살아갈 이유를 제시하는 문학적 명령을 내린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금 이 텍스트를 되새긴다. 고통과 허무,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를 다루는 이 고대의 문학은, 우리에게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찾게 만든다. 그것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고통은 끝내 우리의 삶을 더욱 깊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