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어둠에서 길을 찾는 여정
1. “왜 나는 태어났는가?”
모든 것은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왜 나는 태어났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절규가 아니다. 욥의 입에서 터져나온 이 음성은, 믿음이라는 구조물 위에 쌓아올린 정직한 존재의 균열에서 들려온다. 그는 무죄했고, 순전했다. 그러나 고통은 그런 자격과 무관하게 그를 찾아왔다. 그러므로 그의 물음은 어떤 결과에 대한 항변이 아니라, 고통이 말하는 언어 자체에 대한 질문이다. 고통은 이유를 묻는 순간, 존재의 심연을 드러낸다.
이 물음은 우리 안에도 오래전부터 머물러 있었다. 고통 앞에서 우리는 흔들린다. 그리고 마침내 묻는다. 이 세계의 질서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이며, 왜 이 고통이 내 몫으로 주어졌는가? 고통은 더 이상 사건이 아니라 해석이 되며, 존재가 시작되는 가장 깊은 질문이 된다. 욥은 신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불투명한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 존재의 균열, 인식의 틈에서
고통은 단지 감각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앎의 경계선을 흔든다.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신의 뜻을 이해하며, 자신을 자각하는 방식은 언제나 고통 앞에서 깨진다. 고통은 모든 인식의 뿌리를 의심하게 한다. 우리가 이해하는 질서, 우리가 붙잡고 있는 진리,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까지. 고통은 이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든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완전하지 않다. 그것은 감각을 통과해 온 변형된 풍경이고, 익숙함이라는 습관에 갇힌 상징이다. 진리란 결국,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이해와 오해 사이의 긴장 속에서 길어 올려지는 찰나의 빛이다. 욥이 처한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 이유는, 고통이 논리로 번역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은 논리를 뚫고 나오는 체험이며, 존재의 눈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진실이다.
그래서 신을 향한 물음은 곧 나를 향한 물음이 된다. 고통은 내 안에 있는 불투명한 자아, 내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의 실체에까지 그 물음의 칼날을 들이댄다. 그리고 거기에서 새로운 인식이 시작된다. 해석이 아니라, 전환으로서의 인식. 하나님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 앞에 서 있는 나를 다시 발견하는 일로서의 인식.
3. 변화하는 존재, 깨어지는 자아
인간은 단단하지 않다. 우리는 순간순간 무너지고 다시 일어난다. 어떤 자아도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삶도 단일한 목소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흐름 속에 있고, 그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어렴풋이 감지할 뿐이다. 존재는 창조된 것이지만, 완성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형성되어가고 있으며, 그 형성의 과정이 곧 삶이다.
그러나 이 흐름은 자아의 고집과 갈등한다. 우리는 변화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만든 의미의 집, 우리가 쌓아올린 세계관의 구조 안에서 안정을 구한다. 하지만 고통은 그 집을 무너뜨린다. 갈라진 틈 사이로 진실이 흘러들고, 더 이상 익숙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없게 만든다. 그 순간, 존재는 새로 쓰인다.
삶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고백이나 신념이 아니라, 일상에서 무너지고 일어나는 반복 속에서 형성된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과 마주하고,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조금씩 드러낸다. 존재란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형상들의 집합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서서히 변화해간다.
4. 실천, 그 형상의 회복
믿음은 움직임이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라 손의 일이고, 눈물의 기록이며, 타인의 고통 앞에서 멈추는 발걸음이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의 뜻은 해석이 아니라 실현이어야 하며, 진리는 말이 아니라 행위 속에 있다.
역사 속의 예수는 그것을 증언했다. 그는 세상을 가르치지 않았고, 걸었다. 그가 향한 길은 이상이 아니라 땅이었고, 실천이었다. 그 길은 불완전한 인간 존재가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이웃의 아픔을 자기 삶 안에 끌어안는 방식이었다. 그 길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실현이었다. 미래의 보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안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실천으로서의 왕국.
하나님 나라는 기다림이 아니라, 걷는 길이다. 그것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실현되는 길이며, 우리가 일상 속에서 반복하는 작고 진실한 선택들로 이뤄진다. 그 길에서 믿음은 개념이 아니라 프락시스가 된다.
5. theohodos ― 하나님의 길, 존재의 여정
우리는 고통을 넘어서 자유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어떤 벗어남이 아니라, 더 깊은 순종 속에서 발견된다.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뜻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얽매임에서 벗어난다. 세상의 욕망은 끝이 없고, 마음은 쉽게 그 욕망에 포획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자기중심성의 해체이며, 평화의 내면화다.
그 길은 단지 고통을 피하는 길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을 품은 삶 속에서, 의미를 다시 길어 올리는 여정이다. 그 길에서 우리는 신과 함께 걷는다. 고통은 우리를 묶는 족쇄가 아니라, 존재를 깨우는 침묵의 음성이다. 우리는 그 음성에 귀 기울이며, 조금씩 걷는다.
theohodos,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삶을 다시 배우고, 의미를 다시 쓰며, 진리를 다시 발견한다.
고통은 더 이상 지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며, 이미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속으로 들어선다. 지금, 여기에서.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마침내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