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죽음과 케노시스(kenosis, 자기비움)
‘신의 죽음’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선언이다. 그러나 이 선언은 단순히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신이 자신의 초월적 지위를 포기하고, 역사의 한복판으로 들어와 철저히 소멸하는 사건을 의미한다. 신은 더 이상 초월적 하늘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었다.
이 신의 자기 소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에서 절정에 이른다. 성육신은 단순히 신이 인간의 형태를 취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신이 초월적 존재로서의 절대성을 버리고, 역사적이고 유한한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급진적 자기 비움(kenosis)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신의 자기 비움이 육화된 형태이며, 십자가에서 신은 영광이 아니라 치욕을, 권능이 아니라 무력을,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선택한다. 여기서 신의 죽음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초월적이고 전능한 신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신의 죽음 이후에도 기독교는 여전히 ‘기독교’로 남는다. 초월적이고 전지하며 전능한 신을 믿지 않더라도, 기독교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새롭게 뿌리내린다. 이는 예수의 가르침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단순히 미래의 초월적 왕국으로 선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고통받는 자, 소외된 자, 버려진 자들의 삶 속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하나님 나라는 권력의 피라미드를 뒤집어, 가장 낮은 자가 가장 높은 자가 되고,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가장 위대한 자가 되는 세계이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신의 초월적 통치가 아니라, 신의 철저한 자기 비움, 곧 케노시스를 통해 열린다. 이는 단순히 윤리적 교훈이나 모범을 넘어, 신이 자기 자신을 세계에 내어주고 죽음에 이르는 극단을 통해 실현된 하나님 나라이다. 십자가에서 신은 무력한 죽음을 맞이하며, 이 죽음을 통해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세계에 흩뿌린다. 초월적 절대자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고통받고 죽어가는 자로서 하나님 나라는 드러난다.
죽음의 이미지는 여기서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자기 비움의 절정이다. 신은 자신의 초월을 포기하고, 역사 속으로 내려와 고통받는 자들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소멸시킨다. 그러나 이 죽음은 또한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예고한다. 죽음의 심연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무신론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자기 자신을 비운 신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곧 케노시스의 복음이며, 신의 죽음은 기독교 신앙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그것은 초월적 신의 통치가 아니라,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생명, 지배가 아니라 섬김, 영광이 아니라 치욕을 통해 열린 세계이다. 신은 더 이상 인간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자신을 소멸시키고, 그 소멸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약속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예수의 케노시스는 바로 그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