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on-Decreation-Recreation의 순환
신학에서 창조(creation)-역창조(decreation)-갱신(재창조, recreation)의 세 틀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다. 신과 인간이 서로를 매만지고 비껴가는 가운데 생성되고 변주되는 역동적 과정이다. 각 단계는 얽히고 스미며, 신의 의도와 인간의 자유 의지가 교차하며 겹쳐지는, 복잡하고도 깊은 내러티브의 흐름을 이룬다.
창조(Creation)
창조는 단지 세상이 시작된 어떤 순간(ex nihilo creatio)에 갇힐 수 없다. 그것은 신의 창조적 활동이 쉼 없이 이어지는 긴 여정이며, 인간 존재가 신의 의도와 어긋나듯 겹쳐지며 형성되는 열린 과정이다. 창조란 혼돈 속에서 질서를 길어 올리고(creatio ex chaos), 무형의 상태에 의미와 구조를 건네는 신의 손길이 닿는 순간이다. 이 창조는 단지 물질 세계의 틀을 짓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세계가 신의 뜻을 따라 기울고 자라는 생의 과정이기도 하다. 창조는 곧 신과 인간, 세계 사이의 첫 호흡이며, 이 관계는 멈추지 않고 살아 있는 변화로 나아간다(creatio continua, 지속되는 창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창조가 단지 ‘시간의 시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하는 창조’라는 감각이다. 시간은 창조에 딸려오는 무늬이자, 그 안에서 태동하는 숨결이다. 창조는 멈춤 없는 생성, 끊임없이 펼쳐지는 실현의 장이며, 신의 창조적 역동은 우주와 인간이 그 뜻을 따라 길을 찾아가게 하는 근본의 설계다. 이 창조의 맥은 결국, 인간과 세계가 함께 엮이는 공동의 울림을 예고한다(communio creaturae, 창조물의 공동체).
타락은 창조된 인간 존재의 결이 어긋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신의 숨결로 짜인 질서 안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빚어졌지만, 타락은 그 자유가 신의 뜻을 등지고 뒤틀려버린 시간의 틈이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실패나 윤리적 과오를 넘어, 존재의 축이 기울어지는 깊은 균열이다. 인간은 신과의 응시를 피하고, 내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충동과 욕망의 기류에 스스로를 맡긴다. 그리하여 관계는 흐려지고, 세계는 혼탁해지며, 존재는 부패의 그림자에 스민다.
이 사건은 무지하거나 실수로 이루어진 선택이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신의 자리로 끌어올리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로 고의적으로 결단한다. 그것은 고독한 자의 반역이며, 신의 음성을 거절하는 조용한 폐허다. 타락은 개인의 내밀한 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문화, 관계와 언어, 모든 질서의 틀마저 어지럽히는 광범위한 뒤틀림이다. 인간은 신의 뜻을 밀어내고, 자신만의 이정표를 세우며, 그 길 위에서 존재는 원래의 지향점을 잃는다.
결국, 타락은 신의 창조 질서가 인간의 자유의지로 배반당하는 그 순간이며, 그 반역은 무형의 세계와 유형의 현실 모두에 균열을 일으킨다. 타락은 단절의 시간이며, 질서가 침묵으로 휘청이는 그 틈에서, 세계는 신의 의도를 잊은 채 유랑을 시작한다.
역창조(Decreation)
역창조는 신과 인간 사이에 끊긴 숨결을 다시 잇는 일이다. 타락 이후, 인간은 더 이상 신의 뜻을 향해 나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관계는 메마른 땅처럼 갈라졌다. 그러나 신은 그 단절을 침묵으로 방치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틈 사이로 들어오셨다. 역창조는 바로 십자가라는 균열에서 출발한다. 예수의 죽음은 죄의 무게를 가로지르며, 그 폐허 위에 다시 길을 내신다. 그리고 그 길은 다시 신을 향한다.
이 사건은 타락의 어둠을 넘어서는 빛의 반전이다. 인간은 그 빛 안에서 다시금 신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존재로 불려나온다. 역창조의 심장은 예수의 자기비움 속에 있다. 스스로를 비우고 낮추어,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신다. 무(無)에서 빚어진 첫 창조처럼, 이 또한 아무것도 아닌 자리에서 피어나는 창조다—creatio ex nihilo. 그 무너진 중심에서, 새로운 질서가 다시 심호흡을 시작한다.
역창조는 단지 개인의 내면에 국한된 구원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와 문화 전반에 깃든 병든 결을 어루만지며, 그 뿌리까지 회복하는 심층의 일이다. 역창조는 한 인간이 신과의 관계를 되찾는 경계를 넘어,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새로운 질서—신국의 도래를 실현해 가는 여정이다. 이 사건은 과거의 닫힌 역사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를 파고들고, 미래를 여는 신의 지속적인 호흡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이 역동 안에서 새로 태어난다. 신과 다시 맺어진 관계 속에서, 그는 신의 뜻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그 발걸음은 단지 회복된 자의 감사가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신의 나라를 드러내는 살아 있는 증언이 된다.
재창조(Recreation)
재창조는 신국의 완성된 실현이며,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그 은밀한 파루시아를 통해 드러난다. 그는 단지 다시 오는 이가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현존하며, 그의 임재로 세계는 마침내 신의 의도대로 되돌아간다. 재창조는 창조와 역창조가 맺는 결실이며, 그 안에서 인간과 세계는 마침내 새로워진다.
이 변화는 개인의 내면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와 문화, 관계와 구조 속에서 깊이 구현된다. 신국은 단지 영혼의 평안이 아니라, 존재의 모든 층위에서 피어나는 질서와 정의의 완성이다. 그때, 세상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공간이 되고, 신의 뜻은 지연 없이, 전면적으로 실현된다.
이 재창조의 순간은 단순히 신국이 도래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신과 깊이 겹쳐지는,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결절의 지점이다. 이때 인간은 더 이상 자신과 분리된 의지를 좇지 않으며, 그 존재 전체로 신의 뜻을 구현한다. 세계 또한, 단지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의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재창조는 먼 미래의 사건으로 미뤄둘 수 없다. 그것은 지금 이 자리, 이 순간부터 길러져야 할 감각이고, 훈련이며, 삶이다. 인간은 그때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그 뜻을 따라 걸어야 한다. 결국 재창조는 신의 통치가 지연 없이, 틈 없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며, 그 찰나가 도래할 때 모든 존재는 스스로 신의 리듬에 맞춰, 조화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이 세 단계는 단순히 나란히 배열된 독립적 사건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서로의 그림자이자 여운이며, 하나의 깊은 숨결 안에서 연결된 순환이다. 창조는 이미 역창조의 가능성을 품고 있고, 역창조는 재창조 없이는 완결될 수 없다. 그 연결은 직선이 아니라, 상호 침투하고 되비추는 구조다.
이 여정 속에서 인간은 단지 사건의 수용자가 아니라, 신의 의도가 흐르는 길 위에서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동역자다. 창조 안에서 시작된 그 존재는 역창조를 지나며 상처 입고 다시 깨어나며, 마침내 재창조의 빛 아래서 신과의 온전한 관계로 수렴해 간다. 이 전 과정은 신의 의도와 인간의 자유가 섬세하게 맞물려 이루는 긴장과 화해의 드라마이며, 존재가 거쳐야 할 깊은 순례의 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