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비움(kenosis)에 대해
예수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흔적이 아니라, 빈 공간이다. 그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갔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사라진 자리에, 그의 형상은 여전히 맑고 투명하게 반사된다. 예수가 단순한 인간으로서 살아갔던 순간들을 따지지 않더라도, 그가 자신의 본래를 내려놓은 행위 속에서 오히려 더욱 깊은 변화의 물결이 퍼져나간다. 그의 발자국이 사라지고, 그가 걸어간 길 위에 흔적만 남았을 때, 그 자리는 어떤 고요함도 아닌, 모든 존재를 품을 수 있는 무한의 공간으로 변한다.
예수의 몸이 사라지고, 그의 흔적이 먼지처럼 흩어진 뒤에도, 그가 비워낸 자리는 여전히 그가 남긴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자리이다. 사라짐 속에서 예수는 오히려 더 강하게 현존한다. 그가 자신의 형상을 내려놓고 비워낸 자리가 그에게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가 남긴 빈 공간은 무엇인가를 가득 채우려는 새로운 흐름으로 다시 살아난다.
예수의 발자국이 사라지면서 그가 남긴 그 빈자리에는 오히려 그의 깊은 울림이 담겨 있다. 이 빈자리는 단지 공허가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오히려 모든 이들의 변화를 가능케 하는 문을 열었다. 예수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를 찾는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비운 자리를 통해, 우리는 그가 남긴 숨결을 다시 감지하고, 그 숨결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만난다.
그의 육체적 흔적이 사라지며, 그 자리를 떠도는 공기 속에서 우리는 그의 존재의 진의를 감지한다. 예수는 그의 형상을 내려놓고 비워낸 순간, 오히려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그의 흔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그 자리를 비워놓음으로써, 우리는 그가 남긴 빈 공간 속에서 더욱 깊은 의미의 발현을 경험한다.
예수는 빈 공간에 스며들어, 그 자리를 비우는 것만으로도 모든 이들에게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낸다. 그가 육신을 벗어버리고 비워낸 자리는 형이상학적 존재를 넘어,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는 길을 여는 통로가 된다. 그의 형상은 이제 어떤 물리적 시간이나 공간에 묶이지 않으며, 그가 남긴 빈자리는 오히려 그가 어디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가 사라짐으로써, 그는 더욱 강하게 모든 존재와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는다.
이처럼 그의 비움은 하나의 비밀로 남아, 우리가 그 자리에 머무는 동안, 그 빈자리를 통해 끊임없이 그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다. 예수는 그의 육체적인 발자국이 사라진 뒤에도, 그 자리에 남긴 빈 공간을 통해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는 그 공간 속에서 그의 부재를 진정으로 느낀다. 그의 비움은 부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빈자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신비로운 열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