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빛에 대해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신의 뜻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에 대한 방식은 시시각이 변할 수 있다.
“진리가 고정되었다면, 왜 우리는 진리를 매번 다르게 경험하는가?”
우리는 진리를 장소로 구현한 대성당에서 이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먼저 선 곳은 루앙 대성당 앞이다. 모네의 눈에 루앙 대성당은 시간과 빛이 변화함에 따라 외관이 달라진다. 모네는 인상주의 화가로서, 빛의 변화를 포착하고 그 변화를 작품의 중심으로 삼았다. 태양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 빛은 시시각이 변하며, 우리가 그 빛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하는지에 따라 성당은 달라진다. 고딕 양식의 첨탑은 하늘을 향해 예각화된 자세로 서 있지만, 그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첨탑의 날카로움은 달라진다. 성당의 외벽은 신의 손이 닿듯이 다양한 색과 형태로 변한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빛에 따라 성당 외벽과 내부의 공기를 바꾼다. 아침 햇살 속에서는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여 따뜻한 느낌을 주고, 저녁의 차가운 빛은 파란색과 보라색의 음영을 만든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흘러드는 빛은 마치 시간이 만들어내는 초자연적인 색의 흐름처럼, 성당의 공간을 순환한다. 성당을 향한 인간의 열망은 그 형태와 색상 속에서 진리로의 향연을 이루고, 그 안에서 우리는 빛을 받아들이며 진리를 탐구한다.
진리 또한 이와 유사하다. 신의 뜻은 변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는 우리가 속한 시대와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른 해석되고 실천된다. 마치 모네가 같은 성당을 그리면서도 빛의 변화에 따라 성당의 첨탑이 달라 보이도록 만든 것처럼.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성당을 만난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다. 주인공 화자는 시각적, 표면적인 세계에 집중하고, 사람들과의 감정적 연결에 무관심하거나 불편함을 느낀다. 어느 날, 자신의 아내가 전남편과도 계속 연락하고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화자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내의 전남편 로버트를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세상을 "보는" 방식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화자는 자기 눈을 가리고, 로버트가 화자의 손을 이끌어 대성당의 그림을 함께 그린다. 화자는 빛을 매개로 물리적인 시각이 없더라도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네의 루앙 대성당과 카버의 대성당은 모두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 묻는다. 모네의 루앙 대성당은 빛이 시각과 인식이 달라지는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서 성당은 단순히 고정된 물리적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변할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카버의 대성당은 빛으로 포착되지 않는 세계를 보여준다. 주인공 화자는 로버트와 함께 대성당을 그리며, 자신의 시각 밖의 영역을 보기 시작한다. 우리 눈에 닿는 빛은 모네의 성당의 모습을 변하게 한다. 그리고 부재하는 빛, 우리 눈에 닿지 않는 빛은 카버의 화자에게 세상의 또 다른 면을 개방한다.
카버의 대성당에서 화자가 로버트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순간, 그 순간. 우리가 진리나 경험을 찾는 과정에서 그 자체로 의미를 완성해가는 여정(hodos)에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모네와 같은 빛을 보면서 완성되는 존재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