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침묵, 그리고 구술과 문자 언어의 타락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는 언어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그는 신들의 전령이자 기만의 존재로, 질서와 혼란의 경계를 넘나든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진리와 인간 사이를 가로지르며 의미를 생성하고 해체한다. 언어는 언제나 불완전하며, 그 안에서 가능성과 균열은 공존한다. 헤르메스처럼, 언어도 신성함과 기만성을 동시에 품는다.
이러한 언어의 이중성은 구술과 문자라는 두 축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구술은 말의 리듬과 몸의 호흡 안에서 감각되며, 신앙은 그런 말의 시간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반면, 문자는 시간을 고정하고 사고를 구조화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형식의 변화를 넘어, 진리와 초월을 경험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형을 의미한다.
1. 구술적 신앙, 또는 살아 있는 진리의 리듬
– 문자 이전의 신앙
신앙은 말로부터 시작되었다. 구술 신앙은 체계적이고 고정된 체계나 이론이 아니었다. 문자 이전의 신앙은 목소리로 전해졌고, 공동체의 리듬 안에서 반복되는 삶의 실천과 공동체의 기억이었다. 그때 신은 개념이 아니라, 목소리와 호흡이 만드는 리듬 속에서 현현되었다. 신앙은 이해보다 응답, 교리는 설명보다 실천이었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선포는 이론적 신학이 아니었다. 구술 신앙은 단지 과거의 형식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적 기반이었다. 그 안에서 진리는 고정된 의미로 규정되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했다.
2. 문자적 신학, 또는 해석의 기획
– 문자화 이후 신에 대한 체계화
신앙의 말을 글로 변환하는 문자화는 진리에 대한 감각을 바꾸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언어는 무한을 담기에는 너무 좁다. 신은 이제 이야기와 경험의 주체가 아니다. 초월자의 존재론적인 현존은 사라진다. 문자 안에서 개념화, 정의, 그리고 해석의 객체가 된 신의 초월성은 무너진다. 신학은 철학과 접속하고, 신은 철학적 논증의 기계로 변한다. 문자화는 신학의 보편화를 가능하게 했고, 신의 존재와 교리는 이제 고정되었다. 고정된 정의는 로고스의 체계 안에 서 이루어진다. 로고스 중심주의는 신을 인간 언어로 포섭하려는 기획이자, 신의 무한성을 유한한 언어의 체계로 환원하려는 시도였다. 성서는 더 이상 공동체의 기억이 아니라, 해석의 텍스트가 된다. 문자화된 진리는 더 이상 살아 있는 리듬을 따르지 않고, 이성 중심의 해석학(Hermeneutics)에 종속된다. 언어가 문자로 변환될 때, 문자 속에 갇힌 진리는 헤르메스(Hermes)가 만든 미궁에 빠진다.
3. 신의 소멸
‘죽은 신’은 단지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가 신의 자리를 차지할 때 발생하는 존재론적 침묵이다. 신은 해석되고 재구성되는 상징이 된다. 기호는 의미를 떠돌게 만들고, 신은 그 속에서 침묵한다. 신은 문자 이전에 존재하며, 언어 너머에서 다가온다. 신학은 다시 그 침묵을 감각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언어의 자리를 비우고, 말해지지 않는 것에 귀 기울기.
침묵의 자리에서 다시 묻다
– 문자 이후, 다시 감각으로
문자화된 신학은 해석을 낳았지만, 신의 현존을 봉쇄했다. 살아 있는 신은 해석되는 존재가 아니다. 문자와 이론으로 구속되고 정리되면 신은 이미 사라진 것이다. 신은 다시 구술적 감각으로, 말 이전의 리듬과 몸의 호흡으로 돌아가야 한다. 글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 속에서, 예배의 울림 속에서. 신앙은 더 이상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듣는 것이다. 그는 침묵 속에서, 기다임 속에서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몸 속에서 실천과 체험의 대상이 된다.
헤르메스는 전령이면서 동시에 왜곡자였다. 신과 인간을 잇는 다리였지만, 그 다리 위에서 진리는 언제나 흔들리고 변형되었다. 언어가 문자로 굳어지고, 신이 정의된 순간, 헤르메스는 그 자리를 비워두었다. 진리는 더 이상 그 어느 언어 속에도 담길 수 없다. 초월자는 침묵을 통해,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헤르메스는 언제나, 말 이전의 존재를 기다린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진리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