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학으로서 창조론
고대 근동지방 전승에 따르면, 이 세상은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암흑의 심연, 그곳은 모든 빛을 잃고, 형체조차 없는 허공만이 가득했다. 바람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혼돈의 바다 속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떠 있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기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차갑고 무겁고, 동시에 신비로운 힘을 품고 있었다. 시간이 시작되지도 않았고, 모든 것은 여전히 제자리를 모르고 널브러져 있었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움켜쥐고 있었지만, 그 무엇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때, 암흑을 가르며 퍼져 나가는 빛. 빛은 혼돈의 수면 위로 떠오르며, 세상 깊은 곳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빛은 단순한 틈 사이로 들어오는 작은 조각이 아니었다. 강력하고 뜨거운, 바로 그 자리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빛. 물과 하늘이 서로 갈라지며, 그 둘 사이에서 생명이 태어날 준비를 했다. 물은 바다를 이루었고, 하늘은 그 위를 덮었다. 그것은 만남과 분리의 연대기였으며, 존재들이 서로 얽히고 다시 풀리는 역동적인 여정이었다. 세계는 서로 얽히며 형성되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형상들이 태어났다.
인간은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인간은 혼돈의 바다에서 태어난 존재이며, 그 바다에서 끊임없이 흙과 자연,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 뒤엉키며 자신의 빚어간다. 흙은 단순한 물질적 땅이 아니라 고요하고 부서지기 쉬운, 세상의 모든 기억이 묻혀 있는 깊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