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탐사하는 방법론, 사변적 코레오그래피
코레오그래피는 더 이상 ‘움직임을 조직하는 기술’이나 ‘춤의 형식적 언어’를 의미하지 않는다. 코레오그래피는, 존재의 구조와 인식의 조건을 물질적·몸적인 차원에서 탐사하는 하나의 철학적 실천이자 방법론적 사유다.
존재를 감각하고, 인식을 재구성하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가능성을 구성하는 창조적 탐구의 형식—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코레오그래피다.
사변적 코레오그래피(Speculative choreography)는 이러한 재정의의 기점에 위치한다. 그것은 춤을 조형하는 기법이 아니라, 세계와 존재에 대한 감각적이고 철학적인 응답이다. 인식은 개념이 아니라 리듬이며, 존재는 구조가 아니라 사건이다. 코레오그래피는 이 감응의 밀도 속에서 발생하는 존재론적 조율이며, 지각의 윤곽이 형성되는 순간의 진동이다.
1. 코레오그래피, 존재와 인식을 사유하는 매개
이제 코레오그래피는 더 이상 무대 위의 형상이나 안무가의 의도 안에서만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가 생성되는 방식을 묻고, 인식이 작동하는 과정을 가시화하는 구성적 사유의 실천이다.
존재를 움직임이라는 수단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자체가 어떻게 존재를 실현하는지에 주목하는 것. 이 전환이 바로 사변적 코레오그래피가 요청하는 감각적 사고의 지점이다.
코레오그래피는 특정한 동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와 조우할 때 일어나는 리듬과 텐션, 그리고 그 긴장 속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존재의 형식을 탐색하는 감응적 실천이다. 질문은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존재가 형성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인식되고 감지되는가”로 이행한다.
2. ‘사변적’이라는 감각의 태도
사변적이라는 용어는 추측이나 가설의 의미를 넘어서, 실현되지 않았으나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미래의 상태들에 대한 철학적 감응을 의미한다.
사변적 사고는 감각이 미처 닿지 못한 결의 세계에 귀 기울이고, 현재의 질서가 배제하거나 포섭하지 못한 존재들을 향해 열린다.
이때 감지 이전의 미묘한 진동들, 즉 ‘정동(affect)’은 중요한 매개가 된다. 정동은 개념이나 감정으로 환원되지 않는, 아직 형성되기 전의 감응의 밀도이며, 존재의 가능성이 최초로 스며드는 접촉의 장이다.
사변적 코레오그래피는 바로 이러한 정동적 조건 위에서 작동하며, 몸은 이 미분화된 감응을 통과시키는 다공성의 매체가 된다.
코레오그래피는 이제 더 이상 반복 가능한 구조가 아니라, 존재의 위상학적 이동을 실현하는 하나의 윤리적·미학적 수행이 된다.
3. 존재론적 기반: 객체지향적 감각 구조
사변적 코레오그래피의 존재론은 객체지향 존재론에 닿아 있다. 객체지향 존재론은 모든 존재자를 고유한 세계-형성의 중심으로 간주한다. 인간은 특권적 중심이 아니라 다수 객체 중 하나이며, 존재는 상호 관계 속에서만 드러난다.
이 관점은 코레오그래피를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들—조명, 소리, 무대, 환경, 기계, 생물, 기류—모두를 동등한 존재적 행위자로 간주하게 한다.
코레오그래피는 이들 객체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구성되는 긴장, 리듬, 전이의 구조를 탐색하는 행위가 된다. 움직임은 단지 인간 신체의 궤적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존재의 미세한 이동이다.
존재자는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조우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다시 구성하는 동역학적 현존이다.
4. 인식론적 기반: 과정으로서의 앎
사변적 코레오그래피가 의존하는 인식론은 과정적 인식론이다.
이 관점에서 지식은 완성된 내용이 아니라, 항상 형성되고 있는 상태이며, 경험과 감응, 그리고 그 순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시간적 구성물이다.
이때 인식은 정동적 사건으로 시작된다. 정동은 세계와의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미세 진동이며, 그것은 언어보다 빠르게 몸을 흔들고, 사유 이전의 상태로 존재를 전치시킨다.
코레오그래피는 이 정동의 전달 경로를 설계하고, 그 과정을 통해 지식과 존재가 함께 발생하는 현장을 조성한다.
몸은 단지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감각과 인식이 교차하는 현장이다.
코레오그래피는 이 몸을 통해 인식이 발생하는 장면을 구성하고, 지식이 어떻게 물질화되고 관계화되는지를 실험한다.
과정적 인식론은 결과보다 형성의 과정을 중시하며, 이로 인해 코레오그래피는 지식의 재현이 아니라, 앎의 발생 자체가 된다.
몸은 이 과정의 핵심 장치이며, 움직임은 감각적 사유가 발생하는 기술이자 전략이 된다.
5. 방법론으로서의 사변적 코레오그래피
사변적 코레오그래피는 객체지향 존재론과 과정적 인식론을 조율하여, 존재와 인식을 동시적으로 탐사하는 방법론적 실천으로 구성된다.
이는 하나의 세계관이자 감각의 구성을 재설정하는 실험이다.
실천의 구체적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특정 안무가의 프로젝트, 장르를 넘나드는 미디어적 접근, 비인간적 환경과의 협업, 혹은 장소 특정적 설치 속에서 발생하는 현상학적 사건들 모두가 이 방법론의 메서드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코레오그래피 담론의 중심을 무대 밖의 삶과 세계로 이동시키며, 몸과 감각, 그리고 존재의 구성 방식을 새롭게 사유하는 비평적 전환점을 제시한다.
동시에 코레오그래피의 계보 안에서 탈장르적, 탈예술적, 탈형식적으로 재구성하는 진화적 제안이기도 하다.
존재를 조율하는 감각적 사유로서의 코레오그래피
사변적 코레오그래피는 움직임의 기술을 넘어, 존재의 가능성을 사유하고 실현하는 감각적 수행으로 자리한다.
몸은 그 실천의 매개이며,
감각은 존재의 접면을 감지하는 장치다.
이제 우리는 코레오그래피를 기술 이전의 존재론, 감각 이후의 인식론으로 새롭게 사유해야 한다.
그것은 아직 발화되지 않은 언어이며,
머무르지 않는 윤곽이며, 도래하지 않은 사건이다.
코레오그래피는 이러한 사건이 형성되는 경계의 흐름 속에서 작동하며, 존재를 다시 짓고 감각을 다시 훈련한다.
움직임이 아니라 존재를 구성하는 리듬.
감각이 아니라 인식을 떠도는 실천.
경계를 부유하며,
무용이 아닌 것으로부터 무용을 다시 사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