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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은 애니,<귀멸의 칼날>

고토케 코요하루, 2016~2020, <귀멸의 칼날>, 슈에이샤.

by Woo Play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시청자들이 올해 가장 재밌게 본 작품은?

<귀멸의 칼날>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4 애니메이션산업백서>의 설문조사 결과다.


만 10~69세 애니메이션 시청자 3,500명 대상의 조사 결과에서 당당하게 19.8%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2위 <명탐정 코난>을 8.5%p 차이로 크게 앞섰다. 연령별 응답 결과에서도 6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1위를 차지했다.


나도 재밌게 본 작품이지만, 이 정도로 국내 인기가 높을 줄은 몰랐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애니메이션의 높은 인기, 원작 만화는?

흔히들 <귀멸의 칼날> 흥행의 일등공신으로 원작을 초월한 고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꼽는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방영 이전에는 원작만화의 판매량도 잘해야 ‘중박’ 정도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2019년 애니메이션의 흥행 이후 원작의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2020년에는 일본 만화 역사상 가장 빠르게 1억 부를 돌파한 만화가 되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덕을 크게 봤다는 평가가 많다. 여기에 더해, 애니메이션 1기가 방영된 2019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던 시기였다. 시대적 운도 따라준 케이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인기의 비결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귀멸의 칼날>은 소위 ‘왜색’이 짙은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은 개화기 일본이고, 주인공은 일본도를 휘두르며 악귀를 멸하는 소년 검객이다. <슬램덩크>처럼 우리나라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는 소재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2020년에 완결된 만화가 이만한 인기를 지속하는 건 이례적이다.


원작 만화를 정주행하면서 이 의문을 파헤쳐 보고자 했다.


이 만화는 우리가 소년만화에 기대하는 많은 것들을 골고루, 그리고 충실하게 제공한다. 화끈한 액션, 고난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주인공, 명확한 선악구도, 가족애와 동료와의 우정 등. 또한 어려움 없이 읽히면서도 만화다운 감동과 재미를 충분히 선사하는 작품이다. 그중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 보았다.


모방 놀이의 대상으로 적합하다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은 국내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데, 어째서인지 청소년에게도 인기가 많다. 그 인기의 비결을 현직 중학생에게 물어보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날카로운 답변이 돌아왔다.


“따라 하기 좋잖아. (자세를 잡으며) 번개의 호흡, 제1형! 헤키레키잇센!! 얼마나 재밌어? 애들 환장하지.”


아.. 그거였다. 칼싸움. 게다가 필살기가 있다. 따라하기도 쉽다.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특수능력의 명칭이 ‘호흡’인 것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본다. 똑같은 특수능력이지만 <스타워즈>의 ‘포스’는 아무나 쓸 수 없어 보이고 ‘호흡’은 그렇지 않다. 호흡을 안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생활 밀착형의 다양한 파생 놀이가 나타난다. ‘시험의 호흡’이라든가 ‘폭식의 호흡’이라든가...


중요한 건 따라 하고 싶은 멋진 액션과 매력적인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화려한 액션에 매료되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흉내를 내보고 싶어 진다.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특성에 맞는 호흡과 색깔을 갖고 있다. 물의 호흡은 차분한 성격의 파란색, 화염의 호흡은 강인한 성격의 빨간색인 식이다. 역할 놀이에 최적화된 설정이다.


그래서 <귀멸의 칼날>은 친구들과 하는 장난부터 진지한 코스프레까지, 모방 놀이의 대상으로 적합하다. 이건 작품의 주제나 철학을 논하기 이전의 문제다.


주인공을 응원하게 된다

‘카마도 탄지로’는 모범적인 소년만화 주인공이다. 솔직히 매력 있는 캐릭터는 아닐지 모른다. 답답할 정도로 올곧고, 순수한 선의로 똘똘 뭉쳐 있으며, 농담이 통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응원해주고 싶은 주인공이다.


그가 혈귀(도깨비)를 잡는 귀살대가 된 이유는 가족의 복수와 여동생의 구원을 위해서다. 누구나 납득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유다. 또한 혈귀는 그 자체로 악하고 유해한 존재다. 혈귀를 죽이는 데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혈귀는 반드시 목을 베어야만 죽일 수 있지만, 그 행동에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요소는 하나도 없다.


혈귀를 잡기 위해서는 특수한 장비(일륜도)와 능력(호흡)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얻는 데에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진 않다. 혹독한 수련만 견뎌내면 된다. 탄지로는 주인공답게 불굴의 의지와 여동생 네즈코에 대한 책임감으로 극복해낸다. 귀살대원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는다.


이렇듯 주인공 탄지로는 도덕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모범적이다. 하지만 싫지 않다. 오히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삶을 혈귀에 의해 파괴당하고, 고통 가득한 길을 걷고 있는 그를 더욱 동정하고 응원하게 된다.


소년만화의 주인공은 독자에게 사랑받아야 한다. 독자가 그를 좋아하거나 응원할 때 어떤 망설임이나 부담감을 느끼게 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도 탄지로는 참 모범적인 소년만화 주인공이다.


고민하지 않고 감동할 수 있다

선악구도가 명확하다는 점도 이 만화의 큰 장점이다. 왜 장점이냐면, 독자가 고민하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행동은 정당한 걸까? 악역의 입장에서 보면 주인공이 오히려 나쁜 게 아닐까?" 이런 고민 따위가 들어올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악역에게 인간적인 서사가 부여되지 않는 건 아니다. 꽤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악역들에게도 주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악행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절대로. 그래서 독자는 죄책감 없이 악역의 서사에도 감동하고 눈물 흘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귀멸의 칼날>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이 사투 끝에 혈귀를 물리치는 장면도, 동료들이 서로를 감싸며 희생하는 장면도 아니었다. 바로 혈귀가 죽을 때에 주마등과 같이 나타나는 회상 신이다. 이 장면에서는 대게 먼저 떠난 가족이 등장하는데, 이때 가족들이 죽은 혈귀에게 해주는 대사가 매번 비슷한데도 매번 사람을 울린다.


그들은 혈귀가 되어 많은 사람을 죽인 자신의 피붙이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나 버리지도 않는다. 대신 "나도 너와 함께 지옥으로 가겠다"라고 말해 준다. <귀멸의 칼날>은 이런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악역을 위해 눈물 흘리는 것을 허락해 주면서도, 죄책감은 지우지 않는다. 감동은 주되, 고민은 하지 않게 한다.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소재, 그러나 소년만화의 기본기에 충실한 작품

<귀멸의 칼날>이 2024년 국내 애니메이션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한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로 매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지금의 인기도 마지막 극장판 상영이 끝나면 식어갈 것이다.


소위 왜색이 짙은 편이기도 하고, 이런 종류의 만화에 익숙한 소비자가 아니면 애초에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그래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슬램덩크>를 극장에서 본 사람도 <귀멸의 칼날>은 안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이만한 성적을 보여준 것은 역시 작품에 그만한 매력이 있다는 증거다. 무엇보다 재미와 감동이 있다.


재미와 감동은 소년만화의 기본이다. 소년만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인기 소년만화 중에 재미와 감동이 없는 작품은 없다.


<귀멸의 칼날>도 소년만화가 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골고루 갖춘 작품이다. 소위 점프 3대 요소라고 불리는 우정, 노력, 승리가 잘 배어 있고, 권선징악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면서도 다른 소년만화와 차별화되는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인기작이 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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