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의 일상화를 기다리며
입사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둘째가 진지하게 질문했다. “아빠 회사 그만 다닐 때 되지 않았어?”라고. ‘아니 어떻게 들어간 회사인데 그만 다니라니, 얘가 무슨 말을?’라고 생각하면서 이유를 물어봤다. “왜? 아빠 회사 안 나갔으면 좋겠어?”
늘 집에서 일하던 아빠가 회사라는 곳에 다니게 되었다고, 그래서 너희들은 내일부터 학교가 끝나면 돌봄교실과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 집에 와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만 해도, 아이는 그것이 잠깐 동안 참으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고 했다. 며칠만 견디면 다시 아빠는 집에 있을 것이고, 자신들은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며칠에서 일주일, 다시 한 달을 기다려도 아빠가 계속 집에 늦게 들어왔던 것이다. 참다못해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낸 막내에게, 우리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상황을 다시 한번 잘 설명해 주었다. 아빠가 지금까지 하던 번역 일은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앞으로는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월화수목금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직장인들의 표준적인 최소 근무시간이다. 바꿔 말하면, 대부분의 직장인은 최소 평일 낮에는 가족들과 함께 있기 힘들다는 뜻이다. 또한 엄마 아빠가 모두 출퇴근을 한다면, 아이는 최소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부모의 얼굴을 보기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잘 알고 있다. 나도 집에서 일을 할 때에는 제발 아이들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자주 호소했으니까. 하지만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살게 되니 이 또한 비극이었다.
얼굴만 못 보는 게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참견과 도움 없이 스스로 해야 하는 숙제와 학원을 힘들어했고, 우리는 집안일에 허덕였다. 각자 회사와 학교/학원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만나는 저녁 시간이 점차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숙제했니? 영어 학원에서 전화 왔던데?”
“방은 왜 이렇게 엉망일까? 먹었으면 치워야지. 그리고 간식 줄이자고 했지?”
“아빠 피곤하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빨래가 밀렸어...”
우리는 본격적인 맞벌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 가족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내가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다시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집에 아이들과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거실에서 재택근무를, 아이들은 각자 방에서 원격수업을 들었다. 한 공간에 같이 있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출근 시간에 함께 아침을 먹고 중간중간 간식을 나눠 먹었다. 점심밥을 함께 차리고 먹으면서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했다.
“친구가 수업시간에 고양이를 데리고 있었어. 너무 귀여워. 우리도 키우면 안 돼?”
“몰래 게임하다 들킨 애가 있었어. 다른 반 친구랑 같이 했데.”
“아빠, 아까 전화 누구야? 팀장님? 아빠는 팀장님 아니고 뭐야?”
잔소리 대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일하는 틈틈이 빨래와 청소를 할 수 있으니 집안일 스트레스도 줄었다. 아이들의 생활도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점심을 먹고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저녁을 먹으며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기도 했다. 그 시간들은 내게 평생 기억할 행복한 순간으로 남았다.
꿈같은 시기였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꿈이었다.
공공기관은 재택근무를 도입할 때도 그랬지만, 중단할 때도 빠르고 일사불란했다. 내심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유연근무제의 한 형태로 재택근무가 부분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랐지만, 정말 칼 같이 끝냈다.
현재 우리 회사는 임산부와 장애인에게만 재택이 허용되고, 다른 경우에는 사용할 수 없다. 다른 공공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외의 많은 사람들에겐 사실상 코로나 이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마치 재택근무가 가능했던 시절이 거짓말이나 꿈처럼 느껴졌다. 비록 장점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팬데믹 기간에 재택근무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많았고 공들여 구축한 인프라도 상당하다. 이런 것들을 모두 무시한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맞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재택근무에 단점도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종도 있고(내 와이프가 그랬다), 모든 직장인이 재택근무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에게는 재택근무가 구원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힘든 시기였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집에서 쓸 PC와 책상부터 새로 사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나에게 재택근무가 좋았던 것은 몇 가지 조건들이 겹쳤기 때문이다.
우선 하는 일이 재택근무와 잘 맞았다. 나는 협업이 많지 않고, 간단한 메일과 전화로 대부분의 소통이 가능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 풀 재택보다는 2~3일 정도의 하이브리드 근무형태가 가장 이상적이긴 했지만, 단순히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수준을 넘어 재택근무의 효율이 더 높은 유형의 일을 했다. 같은 부서 내에서도 맡은 일에 따라서는 재택근무가 더 힘든 경우도 있었다.
두 번째로, 아이들의 나이가 적당했다. 너무 어리지도 많지도 않았으니까. 아이가 너무 어리면 재택근무가 아니라 전쟁을 치러야 한다. 중학생 이상은 어른의 손이 많이 필요 없기도 하고, 계속 같이 있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경우도 있다. 부모의 케어와 통제가 필요하면서도, 늘 붙어서 지켜보지 않아도 되는 나이. 즉, 초등학생 정도가 딱 알맞다.
그러니 재택근무가 모두에게 좋은 제도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때의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에게는 재택근무가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저출산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양육가정을 지원하는 제도들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영유아기에 집중되어 있고,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는 쓸 수 있는 제도가 많지 않다. 문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라고 해도 하교 시간은 대부분 2~3시라는 것이다. 맞벌이에겐 돌봄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중고등학생의 방학기간도 맞벌이들에겐 큰 어려움이다. 반 강제적으로 학원 뺑뺑이를 돌릴 수밖에 없다. 이런 때에는 재택근무가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 방학 때면 재택근무가 간절하게 생각난다. 비록 아이들이 방학이라고 하루종일 집에 있을 것도 아니고, 학원을 안 보낼 것도 아니지만, 밥과 간식을 챙겨주고 잔소리도 해주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조치해 줄 수 있는 부모가 옆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정말 다르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심리적 안정감이 훨씬 좋아지고 생활 패턴도 여유롭게 변한다. 출퇴근 시간을 아침밥과 빨래/청소에 쓸 수만 있어도 맞벌이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일주일 전부가 아니어도, 주 1~2회라도 없는 것보다는 삶의 질이 많이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고, 만약 신청할 수 있게 제도가 개편된다고 하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쓸 자신이 없다. 법적 강제력을 가진 육아휴직조차도 아직 마음 편히 쓰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재택근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연차를 낼 때에도 사유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 육아휴직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눈치 볼 필요 없어졌고, 사회적으로 권장하는 정도를 넘어 의무사항이 되었다(비록 아직 현실과의 괴리가 있다고 해도). 재택근무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물론 보완할 점도 많다. 악용사례도 적지 않았다. 재택근무 제도에 크나큰 도움을 받았던 나로서도,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정말 밉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적·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지, 재택근무를 무조건적으로 금지할 이유로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편의를 넘어 재택근무의 일상화가 사회에 가져올 많은 장점들(출퇴근 교통혼잡 감소나 지역 상점 활성화 등)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나를 비롯한 많은 맞벌이 부모들에게 다만 몇 시간이라도 더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끝.
(사족) 재택근무가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에게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워라밸을 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으니까요. 재택근무를 할 수 있고, 또 필요로 하는 사람 모두가 마음껏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