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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후지노 넌 왜 만화를 그려?", <룩백>

모티베이션에 관한 이야기

by Woo Play

누군가에게는 한 사람의 존재가 강력한 모티베이션이 될 수 있다.

<룩백>의 주인공 후지노가 "넌 왜 만화를 그려?"라는 질문에 대답 대신 쿄모토와 함께했던 기억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힘들고 보상도 확실하지 않은 일에 자진해서 스스로를 갈아 넣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스스로를 모티베이션이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늘 부러워하면서도 존경해왔다. 그들이 어떤 일에 그렇게까지 매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 이것은 나의 오래된 고민 중 하나였다.

<룩백>의 주인공 후지노 또한 내가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부류에 들어간다. 어려서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고, 평생을 그려왔으며, 힘든 시기에는 잠시 손을 놓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만화로 돌아온 사람이니까.


하지만 정작 후지노는 만화 그리는 것이 재미있지 않다고 했다. 만화는 그리기보다 읽기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런데도 왜 후지노는 만화를 계속해서 그릴까? 그것은 또 다른 주인공 쿄모토의 존재를 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나에게 <룩백>은 사람이 어떤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힘, 바로 모티베이션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후지노에게는 쿄모토가 바로 그 모티베이션이었다고 생각한다.




<룩백>은 단편만화의 분량 안에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사춘기 소녀의 성장과 우정, 창작의 고통과 기쁨,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난 다음의 상실감 등 누구나 살면서 한번은 겪게되는 감정들을 다뤘다. 이 만화가 다양하게 해석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룩백>에서 후지노가 겪은 그 모든 경험과 감정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합쳐진다. "넌 왜 만화를 그려?"라는 질문으로.


그 질문에 후지노는 말로써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친구이자 팬인 동시에 소중한 동료였던 쿄모토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릴 뿐이었다.


사실 후지노가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게 된 최초의 이유는 허영심이나 인정 욕구와 같은 지극히 초등학생다운 감정에 있었다. 그것이 쿄모토라는 인생 최초의 벽을 만나면서 좌절감으로 바뀌었지만, 다시 "저는 후지노 선생님의 팬이에요"라는 쿄모토의 한 마디로 인해 강력한 모티베이션으로 승화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콤비를 이뤄 함께 만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결국 후지노에게 최초의 좌절이자 최고의 영감이었던 쿄모토와 함께 한 모든 나날들은 "넌 왜 만화를 그려?"라는 질문에 대한 후지노의 답이 되어 주었다.


이제 후지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이 관심과 칭찬이었는지, 만화 그리기였는지, 쿄모토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후지노가 자신을 전부 바쳤다는 것이다. 그림에, 그리고 쿄모토에게. 여기서 그림과 쿄모토를 분리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쿄모토와 함께한 이후로, 후지노는 그림과 쿄모토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을 테니까.



후지노가 만화 그리기에 열중했던 것처럼, 무엇인가에 깊이 빠져드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안다. 비록 그것을 생업으로 삼지는 못했더라도, 가슴속 꿈으로 남겨둔 채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모든 것을 내던지고 뛰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는 이유에 대해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후지노가 그랬던 것처럼.


후지노도 '사실 만화를 그리는 건 전혀 좋아하지 않고, 힘들기만 할 뿐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다시 만화의 길로 돌아온다. 연재를 중단하고 주저앉을 뻔했던 후지노를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쿄모토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다. <룩백> 최고의 명장면으로 많은 사람이 후지노가 빗속을 달리는 장면을 꼽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때의 회상 장면이 가장 가슴속에 남았다.


쿄모토에게 “넌 내 뒷모습을 보면서 성장하면 돼”라고 말했던 후지노가 처음으로 쿄모토를 향해 뒤를 돌아본(look back) 순간이고, "넌 왜 만화를 그려?"에 대한 답이 쿄모토에게 있었음을 드디어 깨닫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때론 어떤 일을 계속해 나가는 이유가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 힘들고 하기 싫은 일도 계속 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걸 우리는 모티베이션이라고 부른다. 모티베이션은 타인에 의해서 강제될 수 없고,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사람에 의해서 생겨날 수는 있다. 누군가에게는 한 사람의 존재가 무엇보다 강력한 모티베이션이 될 수 있다. 그건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나를 응원하는 누군가, 혹은 내가 동경하는 누군가일 수 있다.


혹시 그런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면, 뒤를 돌아보자. 후지노가 그랬던 것처럼. 내 등 뒤에서 조용히 함께해주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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