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엄마가 생각하는 단상.
몇달 전,
아들과 함께 좌식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을 때의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기 전, 아들의 기저귀 상태를 보니 갈아야 할 상태였다.
당연히 수유실이 없는 곳이었지만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상태였기에 주인에게 가서 여쭤봤다.
‘혹시 기저귀 갈 공간이 없을까요?’
그러자 주인이 몹시 놀라며
‘여태 손님 중 여쭤보고 하신 분이 없었어요- 구석에서 가셔도 됩니다 ^^’
물론 열이면 아홉이 공간 없습니다 ^^ 하고 말을 끝내기 때문에
이렇게 허락해준 것만으로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여태 물어본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 안타깝고 놀랍기도 했었다.
한국은(내가 해외에 안살아봤으니)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힘들다.
오분이면 나갈수 있는 전철역에서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 삼십분 넘게 헤메고 다니기 일쑤에,
어떤 역은 아예 설치가 안되어 있어서 두세정거장을 더 가서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우리 어머니 시대에는
아예, 나오질 않으셨다.
자유와 희생 중 으레 희생을 선택하셨기에 불편조차 제기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여성들은 자유로이 육아하는 법을 다양한 경로로 알게 되었고,
그것이 아이에게도 본인에게도 좋은 방향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시대마다 변화되어야 하는 굴곡이 있다.
그리고 그 굴곡에 선 사람들은 으레 고통받는다.
우리가 지금 그 지점에 서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노키즈존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엄마들은 혐오를 일으키는 단어라며 분노하기보다
먼저 배려하고 조심하며 더 나은 방향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미혼자에게는 ‘일부’를 ‘일반화’하여 제2의 82년생 김지영씨를 만들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조금더 나은 곳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