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내준 질문을 보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아이가 묻는다. “엄마, 요술램프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엄마는 무슨 소원을 빌고 싶어?”
집중해서 보고 있던 뉴스 기사를 잠시 멈추고 떠올려 봤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한 가지 정도면 아이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
아니 램프의 요정이 소원을 세 가지나 들어주겠다는데, 이렇게 뭘 가지고 싶은 욕망이 없나. 예전에는 세 가지는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당장 램프의 요정이 깨어날 것처럼 머리를 굴려가며 쥐어 짜냈었는데 풋 웃음이 나왔다.
지금 나는 그 어떤 시기보다 평안하고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물론 ‘아 나는 매일매일이 행복해’는 아니다. 어떤 날은 늙어 가는 내 모습에 우울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데 내 요리 솜씨는 왜 이렇게 엉망인데 비난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게으름 피우는 내가 미울 때가 있을 정도로 아주 사소한 불행?을 겪으며 살고 있다.
내 인생이 이렇게 편안한 삶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쭉 이어온 낮은 자존감으로 항상 남들과 비교하며 나를 힘들게 했었다. 이혼하고 나서는 더 힘들어졌다. 노후 준비할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4살 배기 아이를 일하면서 돌보고 있었다. 자아의 성장은 멈춘 채, 가진 것은 보지 못하고 현실만 탓하고 살고 있었다.
‘내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팍팍한 삶에 한숨만 쉴 뿐,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그 누구보다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상하 조직문화가 힘들고, 꼰대 문화가 싫었던 나는 조직에서 나왔고, 부모님 울타리에 있으면서 부모님의 비위는 맞추기 싫어 갈등이 있었던 나는 지금 독립해서 살고 있다. 생계를 위해 내 에너지를 100%로 쓰기 싫었던 나는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어 내 에너지의 20%로만 쓰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하루에 1시간도 채 일하지 않는다. 재테크를 해서 충분한 돈을 모아가고 있다. 사고 싶은 물건을 마음껏 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까지는 아니지만, 누구 밑에서 일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은 채 생활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독립을 이뤘다. 마트에 가면 비싼 과일이나 식료품이어도 먹고 싶으면 산다. 크게 비싼 물건이 아니라면 사고 싶으면 산다. 비싼 물건이어도 꼭 필요하다면 산다. 아이가 먹고 싶은 음식이나 식당이 있으면 주문을 하거나 밥을 먹으러 나간다. 사립학교나 국제학교에 보내는 것은 무리이지만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지원해 줄 정도는 된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면 ‘벌이도 시원치 않은데 너 써라.’ 말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웃으시면서 받는다. 항상 큰 언니를 만나면 밥은 언니가 샀었는데, 지금은 내가 사주면 기분 좋게 받는다. 그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내 시간 100%를 나와 아이에게 쓰고 있다.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받는 직장인이 아니기에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 큰부자는 아니더라도 부족함 없이 내 인생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부를 이룰 거라는 확신이 든다.(그 확신의 힘은 뒤에 내 삶을 변화시켰던 세 가지 방법에 있다)
나는 이제까지 내 결정에 대해 못 미더워했던 사람이었다. 대학도 내가 가고 싶은 과보다는 졸업을 하면 취업이 더 수월할 것 같은 과에 들어갔다. 첫 직장도 내 의지라기보다는 마냥 놀수만은 없으니 그럭저럭 내 스펙에 맞춰 들어갔다. 결혼도 확신은 없었다. 결혼식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속 고민했었다. 이혼 역시 100% 내 의지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던 의지박약의 사람이었다. 내가 하는 말이나 선택은 절대 현명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한없이 나약한 사람이었다. 한때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세요, 처신하세요.라는 책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그 누구의 조언대로 내 의사를 결정하지 않는다. 참고만 할 뿐,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큰 후회가 없다. 설사 실패했더라도 다시 일어설 정도의 바운더리에서만 도전하기 때문에 큰 여파가 없다.
무슨 일이 생기면 큰 언니에게 의지하고 물어봤던 내가, 이제는 큰 언니가 무슨 일이 생기면 네 생각은 어떤 것 같냐고 나에게 물어본다.
지금은 무슨 일이든 진정한 내 안의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나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나만큼 내 일에 있어 나에게 딱 맞는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다.
불과 1년 반 전에 나는 시간제 교사를 하며 92만 원에 월급을 받고, 하루하루 육아하며 힘들게 살았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까를 고민했다. 두 달 동안 온라인 활동을 쉬면서 나는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책과 글쓰기와 사색, 실행이었다.
나는 임신 때부터 지금까지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책을 읽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읽고 싶어서 읽었다. 하지만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 그때 잠시뿐이었고 현실에 와서는 다시 현실 타령, 도전해서 달라지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현실에 타협하며 살았었다. 아니 정확히 뭘 도전해야 인생이 바뀌는지조차 방법을 몰랐다.
책을 쓰기 시작하고, 온라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읽었던 때보다 더 많이, 깊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시간이 모여 자아가 성장했고, 명확히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고 나서, 나는 더 간절히 내 삶을 바꾸고 싶었다. 더는 이렇게 남에게 좌지우지, 돈에 절절매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계획을 세워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독서와 글쓰기, 실행 중에 마지막인 실행이 제일 어렵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고,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사람은 편안한 것을 찾고, 익숙한 것을 찾는다.
나를 행동에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절박함’이었다.
불안장애를 앓고 적은 월급에 만족해하며 끝나지 않을 육아에 힘겨워 하루하루를 살고 싶지 않았다. 살려면 일을 해야 했고, 시간이 없어 주위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하며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계를 위해 아등바등 살다가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엄마가 나에게 뭘 해준 게 있는데", "엄마 때문에 내 인생 망쳤어"라는 원망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충실해지고 싶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과의 밸런스를 맞춰 더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절박함이 나를 행동으로 이끌었고, 나는 이렇게 내가 원하는 삶의 80%의 만족을 하며 살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100%로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가장 이상적인 삶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