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아무렇지 않다. 다만 사람이 흔들릴 뿐이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집을 나섰을 땐 항상 행운이 따르기를 바란다.
냥집사에게 최고의 행운은 고양이를 만나는 것이다. 누구 뭐래도 고양이는 풍경을 풍경답게 한다.
2 천보가 넘어갔다. 하루 6 천보를 목표로 하기에 아직 4000보 가까이 부족하다.
더 걸어야 한다.
카메라를 가진 자에게 6 천보는 무의식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같아서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곳저곳, 여기저기 풍경을 담을 곳이 있나 살피는 재미가 걸음 세는 것을 잊게 한다. 만약 스마트폰 어플에 만보기가 없었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물론 그 불편은 만보기를 경험한자의 불편이다. 90대대 초반, 휴대폰이 없다 하여 불편을 느낀 사람은 없었다. 공중전화로 만족했고, 삐삐도 감지덕지였다.
하지만 애니콜이 나온 후 사정은 달라졌다. 전화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전화받지 않으면 초초했다. 휴대폰의 장점이 사람의 정서를 더 궁핍으로 몰아넣었다. 가끔 묻는다. 난 다시 휴대폰이 없었을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인다.
저기, 노랑이가 보인다. 숲 사이 풀 사이를 야무지게 걸어간다. 중성화 수술을 한 것을 보니 수컷이다.
잠시 후 사라졌다.
어? 방금 있었는데, 어디 갔지?
렌즈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감쪽깥이 사라졌다.
숨을 곳도 그리 많지 않은 고양이, 그런데 순식간이다.
앗, 저기다.
고양이가 수로 안에 누웠다.
천천히 걸어갔다.
줌을 최대한 당겼다. 20m 정도 가까이 가까이 갔을 때 고양이 고개를 돌린다.
"뭐야? 저건?"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하다.
나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곧바로 일어선다.
고양이 걸음이 야무지다.
호랑이 걸음걸이를 닮았다. 작고 귀엽지만 고양잇과 동물은 분명하다.
사뿐사뿐, 야무지게 땅을 딛고 경공술로 풀숲을 헤쳐 나간다.
그리고 앉는다.
나 때문에 수로에서 나온 게 아니다. 나에 대해서는 1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더 가까운 곳에 앉는다.
고양이는 아무렇지 않다. 그저 자기의 길을 갔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