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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의 반란 Jun 09. 2019

영상저널리즘, 이대로 가도 돼?

이미지와 권력

MB정부 때였다. 중동에서 사상 최대의 원전 수주를 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전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사들에게 그들의 컨트롤 타워라는 워룸(WAR ROOM)을 공개했다. 저녁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대한 워룸에서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수주 한 건 맞는데 시차 상 현지 연결을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요 뉴스 시간대인 9시에 뉴스가 나갈 수 있도록 전화가 현지에서 온 것처럼 저희가 전화를 받고 연출 아닌 연출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정대로 전화는 울렸다. 두바이가 아닌 바로 옆 에 있는 다른 전화에서 건 전화가 말이다.


"네? 수주에 성공했다고요?!, 여러분! 우리가 성공했답니다!"


(워룸 근무자 모두) "우와!!"


이 촌극은 3번을 반복하고 끝이났다.


....


작년의 일이다. 대톨령이 참석하는 지자체 취업 성공 컨서트에서 였다.

이번엔 훨씬 유연했다. 아나운서 출신의 행정관이 사회를 보고 토크컨서트 형식으로 무대위에서 청년,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등이 각자의 소회를 전하고 의견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 또한 리허설을 거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는 노골적이고, 하나는 더욱 대중적이고 세련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양 쪽 모두에 의견을 묻는다면 답변은 십중팔구 같을 것이다.


'사실에 기반 했기 때문에 연출은 아닙니다"


현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미디어 이벤트는 보통 이러한 범주안에 있다.



유사 이래 이미지와 권력은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미지에 재현된 인물의 크기가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달라졌고,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 역시 아우라나, 구도, 혹은 원근법 등을 통해 이미지의 중심이 되는 곳에 지배적 주체들이 배치되었다.로마와 비잔틴의 분리를 촉발했던 성상파괴(Iconoclasm) 역시 이미지의 재현과 그 제한에 대한 정치적 투쟁의 성격이 깃들어 있고, 이미지 전쟁으로도 불리는 종교개혁과 프랑스혁명에서 사용된 팸플릿, 낙서, 회화 등에도 이미지의 정치적, 사회적 기능에 대한 고민과 다툼들이 녹아 있다. 이미지 생산의 대중화 시대를 열어준 사진은 정치와 이미지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해 주었다. 나폴레옹 3세와 링컨, 빅토리아 여왕 등 근대의 정치인들 조차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이미지를 활용했다.


Albi, France

이미지의 사용이 훨씬 빈번해진 현대 정치커뮤니케이션에서 영상과 관련된 또 다른 이슈는 이미지들의 변형과 가공이 훨씬 쉬워졌고 그에 따라 이미지와 영상이 점점 더 회화적인 표현 수단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미국 공화당의 미디어 담당관이었던 탄타로스(Andrea Tantaros)는 후보자로 완벽했던 오바마(Obama) 이미지와는 달리, 공화당 후보인 팰린(Palin)은 리터칭을 하지 않은 불완전한 이미지들을 부각하였다며 해당 미디어의 보도가 편향적이란 논평을 냈다. 디지털 시대 이미지는 이제 이미지가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고전적 논쟁을 넘어 그 자체가 현대 정치마케팅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커뮤니케이션과 권력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카스텔(Castells) 교수는 정부가 유사 이래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통제에 기초해서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항상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정부는 태생적으로 민감하다고 진단한다. 그의 말처럼 이미지가 정치의 핵심 요소가 된 영상 시대에 각 정부는 이미지의 자유로운 유통에 민감하다. 그리고 이미지의 영향력은 실제적이다. 일례로, 미국 병사들이 테러 용의자들을 장난처럼 고문하는 장면을 SNS에 업로드 한 아브 그라이브(Abu Graib) 수용소 사건 이후에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3/4 정도가 전쟁 개입은 잘못되었다는 의견을 보였다. 베트남 전에 의해서 확증되고, 로드니 킹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보여주듯, 이미지는 휘발성이 강하고 정치적 동원력이 있기에 그만큼 권력은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에 민감하다.


After photography (Fred Richin)


최근 영상기자들은 현장에서 통제를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출입이 제한된 국제대회나 남북 이벤트뿐 아니라 일상적 취재의 공간에서도 영상기자들은 점점 더 통제되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또 이런 추세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뉴욕대학교 리친(Ritchin)교수는 시리아의 가자지구 등 분쟁지역에서 영상기자들은 어떤 것을 촬영해야 하는지 미리 결정된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만 현장접근이 허가되는 상황을 비판했다. 이런 경향은 미디어로 인해 여론이 크게 좌우되던 베트남전 이후 계속되어 온 문제라고 지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매그넘 출신의 사진기자 필립 존스 그리피스(Philip Johns Griffiths)도 오늘날 현장의 포토저널리즘은 이미 예측 가능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작업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은 언론사들이 선정적 사진들을 구걸하고 만들어서 내보내면서 독자들의 신뢰를 잃어가는 동안, 정부가 언론사를 패스해서 시민과 직접 소통하려는 움직임을 통해 더욱 복잡한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Rodney King  Case


이런 경향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이미지가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기억은 불변의 기록(script)이라고 믿고 쉽지만 연구들의 기억은 특히 오래될수록 변형과 왜곡에 취약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영국 워릭대학교는 미국 선거캠페인에서 존 캐리(John Kerry)가 배우 제인폰다(Jane Fonda)와 반전집회에 참가한 가짜 사진을 뉴욕타임즈가 사용했는데, 시간이 지난 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를 실제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와 유사하게 2010년 미국 온라인매거진 슬레이트(Slate)는 진짜와 가짜로 뒤섞인 정치적 사건의 사진들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기억을 하는 실험을 했는데, 절반 가까운 독자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을 실제로 기억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간 비슷한 연구들 역시 이미지는 상상력과 기억을 지배하고, 이는 정체성과 소속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맥락 하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보는가’를 정부가 결정한다는 점은 불편한 지점이다. 최근 기관들이 앞다투어 시행하는 기관 홍보와 뉴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한 직접 소통방식은 정보의 그릇된 전달을 막고 소통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프로파간다적인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위험한 뒷문 역시 열어 놓는다. 911 이후 미국 부시 정부가 이미지를 통해 존재하지 않았던 대량살상 무기의 시각화와 이슬람의 악마화, 그리고 이와 상반된 부시의 이미지 연출 정치는 결국, 이라크 공격에 대한 건강한 공론의 장을 훼손시켰다는 점에서 권력과 이미지의 올바른 함수관계를 성찰할 기회를 준다.


매일 쏟아지는 이미지는 우리의 인지와 사회적 감성, 그리고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집단기억과 정체성과 연관을 맺는다. 일상의 영역에서 기억은 항상 이미지이지 텍스트가 아니다. 국가 권력이 점점 더 많이 행사를 연출하고,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는가를 기획하는 시대는 은밀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정치가 광고와 비슷해지고,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기술적으로 모호해지는 토양, 이미지의 가치를 성찰하는 학문적 토양이 부족한 것 모두가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는 구매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상품이라면 작은 부분 하나가 부실해도 분개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인드를 엔지니어링 당하는데에는 그만큼 예민하지 못하다. 또 우리 대부분이 공론의 장에서 소통되는 텍스트에는 관심이 많아도 영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기억은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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