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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의 반란 Jun 07. 2019

유럽에서 휴양을 하고 싶다면

마요르카를 소개합니다.

유럽은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가족여행을 하기에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부담이 되는 여행지이다. 그러다보니 여행계획은 에펠탑이나 콜로세오 같은 유명 관광지를 배경 삼아 사진 찍는 것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여행의 컨셉을 잡다보면 아무래도 여행의 질은 떨어지고, 여행을 다녀와서는 왕왕 첫인상으로 그 도시를 평가하곤 한다. 


'이탈리아는 더러운 곳이야' 

'파리지하철은 냄새가 나, 아직도 자동문이 아니고 사람이 열더라'


L'universita di Perugia, Italy 페루지아 대학


나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대학교 때 이탈리아 페루지아란 곳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울 때, 이루말할 수 없는 생활의 불편함과 낡은 도시를 늘 불평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생각은 그곳에서 이탈리아 역사를 공부하던 나보다 10살 많은 일본인 친구랑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그 친구가 해 준 설명에 날아갔다. 그가 뻔해보이는 성벽을 가르키며 물었다.


"저 성벽이 몇 개로 보여"

"뭐? 지금 장난하는거야? 하나잖아?"

"아냐 저건 3개야. 밑에 색이 다른 부분 보이지. 그건 로마인 이전의 에투르스키인들이 세운 것이고, 그 가운데 젤 단단해보이는 벽돌은 로마인들이 세웠어. 그리고 위를 봐. 저 위의 화려한 건축물 보여? 저건 르네상스 사람들이 그 위에 올린거야"


늘상 지나다니던 돌벽 하나에 수 천년의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니! 


에트르스키 사람들은 기원전 10세기에서 8세기에 이탈리아 지역으로 이동해 거주한 민족을 말한다. 우리로 치면 고인돌 위에 신라시대 사람들이 건축물을 올리고 그 위에 조선시대 사람들이 건축물을 올린 건축물이 망가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난 정말 살아있는 화석도시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살던 집도 200년이 넘은 살아있는 박물관급이었다. 파리의 몇몇 친구들이 지하철이 불편하다며 불평하는 나를 보고 오래전부터 쓰던 물건에 대한 애정을 설명할 때도 비슷한 결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이 허물어지고 아파트만 횡그러니 서있는 고향을 잃은 나에게 이들이 전통에 느끼는 향수 이상의 애정은 각별하게 다가왔다. 

유럽 여행은 뻔한 성당과 뻔한 광장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라면, 가는 동네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보셨으면 좋겠다. 음식이면 음식, 스토리면 스토리, 자연이면 자연... 유럽은 몇 시간동안 차로 달려도 같은 풍경이 나오는 북미보다 훨씬 많은 컨텐츠를 갖고 있고 그만큼 가성비가 높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별다른 준비없이 놀랄 준비 하나만으로 즐길 수 있는 휴양지가 하나 있다. 


마요르카, 스페인 

Soller 소예르 해변 

안익태 선생이 활동한 지역이기도 하고, 쇼팽의 흔적도 남아 있는가 하면, 빼어난 휴양인프라와 생야생의 자연 인프라가 공존하는 섬이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팔마 대성당이 있고, 발데모사 같은 지나가다가 들를 수 있는 작고 예쁜 마을도 있고, 옛 유적지도 있는 제법 볼거리가 많은 섬이다.   



성수기 주차난이 조금 있을 수 있으나 운전을 하기에도 아주 쾌적하고, 일단 섬 동서남북의 매력이 각기 달라서 차로 돌아보거나 숙소를 옮겨다니며 다양한 볼거리를 즐겨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섬이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잘 갖춰진 비치가 아니라 이 섬 몇몇 포인트가 보여준 생야생의 자연 비치들이다. 흙길을 20분 정도 걸어 내려들어가서 나오는 Calo des Moro도 그중 하나였다. 가면 편의점이나 식당은 커녕 앉을 곳 조차 마땅치 않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없는 청정자연을 선물한다.


Calo des Moro Beach 
Calo des Moro


아이슬란드나 캐나다, 그리고 이곳 마요르카가 그렇지만 돈이 없어도 좋은 자연에 접근할 권리가 동등하게 주어진다면 사람들의 정서의 결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치가 좋은 곳은 보통 식당이나 리조트가 있고, 그런 조망권을 누리려면 우리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퇴사전에는 억대연봉을 받아도 그렇게 돈으로 마음이 엔지니어링된 상태에서는 욕심을 버리기가 많이 어려웠다. 


'사람이 힐링하고 즐기는데 돈이 들지 않는다면 그렇게 욕심을 낼 필요가 있을까? 그럼 우린 서로 더 배려하지 않을까?'. 뭐 이런 종류의 망상들을 요즘 자주 하고, 그것들을 실험해보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적게 갖고 더 행복한 생활.


어쨌거나, 자연에 대한 무료의 접근권이 보장되고, 인구가 과밀하지 않아서 지나치게 사람들이 몰리지도 않는 이런 공간들은 우리 같이 번아웃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될 수 밖에 없다. 적당히 상업화되어서 편리하고, 적당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어서 즐길 수도 있는... 마요르카는 그런 섬이다. 


Alcudia (알쿠디아)


영국에서 유학할 때 만난 영국 사람들이 젊은 이들은 이비자로, 가족들은 마요르카로 휴가를 많이 간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마요르카는 하루 이틀만 있어봐도 그 설명에 바로 수긍이 가는 섬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유럽여행을 오면서 섬 한 곳에 머물며 휴가 전체를 보내는 건 마음이 내키지가 않다. 그래서 주요 도시 한 두 군데를 관광한 뒤, 2박 3일 정도 쉬어 간다는 생각으로 끼어넣으면 유럽 여행이 좀 더 다양해지고 만족의 밀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가족여행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마요르카는 바로셀로나에서는 한시간, 파리 등 유럽 주요도시에서 2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비행기표도 저렴하게 구입하면 5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도 있다. 지중해의 타들어가는 태양과 싸워야 하기에 야외활동을 즐기지 않으시는 분들에겐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문화, 음식, 자연이 어우러진 휴양지는 분명 언제라도 다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주는 곳이다.   


Solloer 소예르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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