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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퍼펙트 데이즈

코모레비 보단 윤슬

by 우다우다

우리는 왜 일상을 퍼펙트하게 만들 수 없는가? 그게 가능할까?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 보았을 때, 그날 하루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을 얼마나 손꼽을 수 있을까?

눈을 뜨면 아침 식사를 서두른다. 출근길에 막히지 않으려면 식사를 마셔야 한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다. 한 손에는 수저, 다른 손에는 휴대폰으로 SNS, 유튜브 등으로 시선이 뺏기는 게 일상이다. 출근을 하면 일 하나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두 개가 추가된다. 쳐내기 바쁘다. 야근 좀 하다가 PT를 받으러 간다. 목표했던 바디프로필 촬영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시간 바짝 운동을 했다, 오운완. 갓생을 산 것 같다. 자려고 누웠는데 쇼츠니 릴스니 몇 개 안 봤는데 12시가 넘었다.


가상의 인물인 영화 '퍼펙트 데이즈' 주인공(히라야마)의 하루는 루틴으로 돌아가고 있다.

- 아침 : 기상, 식물 가꾸기, 출근 전 캔커피 마시기

- 일 : 출근길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도쿄 도심을 관찰, 근무(공공화장실 청소일), 점심시간(공원에서 사진)

- 퇴근 후 : 단골 가게, 술집에서 식사나 반주, 목욕탕, 중고서점


주인공처럼 나도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똑같이 완전한 하루 맞잖아? 응 아니다.

나는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고, 히라야마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현실을 사는 것과 시간을 때우는 차이다.


감독(빔 벤더스)은 같은 공간에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을 같이 배치하여 그 차이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까지 청소를 한다. 일을 하는 모습이 신명 나 보인다. 직장 동료는 여자친구를 어떻게 꼬실지를 생각하며 대충 일을 한다.

공원 벤치에서 점심을 먹는데 주인공은 즉석카메라로 나무 사진을 찍는다.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담는다. 그의 오랜 취미이다. 건너 벤치에 여성 직장인이 점심을 먹는다. 멍~한 표정에, 그저 한 끼를 때우는 것 같다.

나의 하루는 누구의 모습과 더 닮아있을까?


주인공은 말수가 적다. 자신의 루틴이 깨지면 급발진하는 경우도 있다. 주변인에게 친절하다.

업무에서는 프로페셔널하다. 과거 어떠한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그에 비해 현재 삶이 충분히 만족스러워 보인다. 노래, 일, 식물 가꾸기 등 다양한 요소가 그의 하루를 구성하고 있다. 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 주인공은 전념한다. 이게 완전한 하루를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엔딩 장면에서 롱테이크로 주인공의 얼굴을 보여준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표정이다. 주인공도 과거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루를 시간이나 때우면서 살았으리라.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삶을. 그런 자신의 과거가 안타까워 얼굴에 슬픔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하루를 낭비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하루를 만끽한다. 얼굴에 나타난 또 다른 표정은 바로 그 기쁨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삶에 전념할 수 있을까?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예고편을 보며 싱긋 웃었다. 저기에 나 같은 사람이 있구나. 가상의 인물에게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도 나무를 올려다보는 사람이었다.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이 기이한 행위의 시작은 군대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말에 생활관(공군 숙소)에서 창 밖을 보며 멍 때리고 있었다. 아마 상, 병장쯤 되었나 보다. 계절은 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 생활관 맞은편에 큰 나무가 있었다.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 창문으로 상쾌한 바람이 들어온다. 멀리 나무에서 빛이 반짝인다. 거울로 햇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나뭇잎에 햇빛이 반사되어 내 얼굴을 때린다. 별게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특별했다. 이유는 몰랐다. 대낮에 나무에서 보이는 반짝임.

그 경험은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에 새겨져 있다.


내가 경험한 것은 히라야마가 좋아하는 코모레비는 아니다.

(코모레비는 우리말로는 쑥물빛 또는 볕뉘라고 한다. 볕뉘는 빛이 나무 그림자 사이에 누워있다는 표현이다. 너무나 창의적이다. 누가 처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나뭇잎에 반사된 햇빛, 이걸 뭐라 하는지 우리말 표현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내가 하나 지어본다면 잎반사, 잎반들? 표현이 너무 과학용어 같다. 건조하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지은게 느껴진다.


살아가면서 잎반사와 같이 관심이 가는 것들이 점차 늘어났다. 내가 일부러 찾지 않았다. 그것들이 나에게 하나씩 나타났다.

이런 현상들이 마치 동료를 모으는 것처럼.



휴대폰 옛 자료를 꺼내봅니다.

[출근길]

겨울 출근길

피부에 느껴지는 겨울의 건조하고 찬 기운



매미 소리

정적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공간을 가득 채우는 매미 소리

(코모레비도 살짝 찍힘)



낙엽 소리

가을에 들을 수 있는 사부작 사부작 낙엽 발걸음 소리



[물에서]

바다 윤슬

천, 바다 표면에 반짝이는 햇빛

(윤슬 또는 물비늘)


왜 이런 자연현상에 관심이 가는 것일까?

저는 자연에 반응하는 동물의 본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알아볼 수 있는 상태일 때만 영접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으면 출근길부터 동네 산책길까지 모든 것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하루는 거기에 있습니다.



저의 퍼펙트 데이즈 사계절 레시피를 소개해드립니다.

- 보너스 트랙 :

봄에는 라일락 꽃 향기

여름에는 매미 소리

가을에는 윤슬, 낙엽 소리

겨울에는 파도



이런 사람들은 완전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일 겁니다.

공원에서 나무를 올려다보는 사람,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



아직 발견 못한 레시피가 너무 많습니다.


궁금합니다.


당신의 퍼펙트 데이즈 레시피는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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