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뇌에서 삭제된 청소 시냅스

청소가 그렇게 나쁜 것인가?

by 바크

남편의 뇌에서 삭제된 청소 시냅스



인간의 뇌는 인생 전반에 걸쳐 딱 네 번의 변곡점을 맞이한다고 한다.
(뇌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니,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참고만 하자.)

첫 번째 변곡점은 유년기, 0세부터 9세다. 이때는 시냅스가 폭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인지 능력이 급격히 확장하는 발달적 분기점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시냅스 중 활동성이 높은 연결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가차 없이 제거된다.

우리 남편을 평생 관찰해 보건대, 아마도 유년기에 귀한 장손이라며 오냐오냐 귀여움을 받고 자란 탓에 청소, 설거지, 정리정돈이라는 시냅스를 과감하게 완전히 제거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청년기의 증거들

청년기, 친구들과 자취하던 방에 놀러 갔을 때였다. 아무도 설거지를 하지 않아 음식물에서 구더기가 날 정도였고, 이 중 서열이 가장 어린 남자가 보다 못해 청소를 했다.

또 한 번은 남편이 지방 발령을 받아 회사 기숙사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물건도 옷도 그대로 널린 채, 그곳에 살면 살수록 물건들이 테트리스 쌓듯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남편의 철학은 ‘가만히 둔다’이기에, 먼지마저 시간만큼 켜켜이 쌓여갔다.

기숙사 퇴실 날, 남편은 내게 와서 정리를 도와달라고 했다. 그것은 한 번도 제자리에 물건을 두지 않고, 한 번도 정리하지 않은 사람의 방을 구경하는 것과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남편의 뇌에서 삭제된 ‘청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숙제로 남게 되었다.



결혼 후의 일상

여전히 그는 나와 살면서, 한 번만 입은 옷은 빨래하기 아깝다며 방 옷걸이에 하나둘 걸어둔다. 그게 한두 달이 훌쩍 지나가고, 여러 옷들과 겹치면서 보이지 않게 된다.

간헐적으로 옷을 정리해 주는 나는, 예전에는 무슨 강박증 환자처럼 매번 옷을 정리해 주었지만 이제는 그런 소모를 하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을 택했기 때문이다.

유년기에 삭제된 그의 청소 시냅스는 아마도 복구 불가능할 것이다. 반복된 훈련으로 익힐 수는 있겠지만, 그 많은 세월 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명에 지장을 느낀다’는 자기 생체 시스템을 완전히 만들어버렸기에, 가끔 “마누라 잔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며 친구들을 만나 술 마실 핑계를 대고 집 밖을 떠돌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삶에 크게 터치하지 않지만 50대의 남편이 점점 마누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리는걸 보면 그도 자신이 변화해야한다는것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남편의 합리주의

남편의 합리주의는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 살았기에, 자신의 이익에 편승하고 뇌도 자기 입맛대로 판단하게 둔다.

예를 들어, 어쩌다 한 번씩 재활용 쓰레기를 버려주면 이렇게 말한다.
“야, 내가 뭘 쓰레기 안 치우냐? 나 시간 되면 다 하잖아! (어쩌라고!)”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한다.

아이들 방 책상이 깨끗해지면, 그런 공간에 자신의 낚시 장비를 점검하고는 정리하지 않은 채 호로록 몸만 빠져나간다. 그가 사투를 벌인 테이프와 본드, 여러 낚시 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서 나는 그것을 한꺼번에 바구니에 담는다.

그는 어떤 행위를 즐겁게 하면서도 자신의 뒷자리는 전혀 보지 않는다.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아무리 정리하라고 불러도 나의 스트레스만 쌓인다.


그래서 어쩌다 한소리를 하다보면
“마누라가 갈구고 바가지를 씌운다”며 나를 악독한 처라고 자부하고,
“소크라테스가 왜 철학가가 됐는지 알아? 바로 악처 때문이야. 너는 필시 나 늙으면 벌레보는 듯 쳐다볼게 뻔해" 하며 남자어를 구사한다. 맹세컨데 기필코 내 머리속엔 악처와 벌레, 갈굼, 바가지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싸우지 않기로 한 이유

우리의 대화는 늘 평행선이라, 여기서 싸울 필요는 없다. 각자의 뇌 회로가 맥락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기에, 나의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주장하는 남자를 더욱 흥분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참아야 하나? 참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같이 사는 것으로 얻는 이익과 불이익 중, 이 부분이 불이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라 여기고, 그냥 그대로 그를 인정해 준다.


점점 집을 치우지 않고 편안하게 살게 된 이유도, 혼자서 이리저리 정리하다 체력이 한계에 부딪치면 내 건강을 생각해서 그냥 두는 것이다. 집이 어질러져 있어도 상관없다.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는 것으로 나의 뇌를 리셋시킨다. 질량총량의 법칙을 보자. 4인 가구집에서 각자 한꺼번에 정리를 하지 않고 물건을 쏟아낸다면 그 가정안에서 1명이 전부다 처리하기엔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는것이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것이다. 적당히 어질고 살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대안은 각자 정리를 하는 습관을 기르는것이 좋겠지만.



나는 여자로 태어나 배우고 자란 게 있다. 바로 청결과 위생, 집 정리, 청소 등이다. 학창 시절 실과와 가정이란 과목은 여성들에게 집중된 과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며 감당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남편 관찰 일지

어쨌든 남편을 관찰하면, 저렇게 신기하게도 청소라는 개념이 삭제되었는지 참으로 인간이란 생물은 재미있다. 아마도 나의 성향을 알고 있기에, 그는 평생 청소를 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할 것이다.

나의 아버지를 보자면, 그는 평생 남편처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는데, 결국 은퇴 후 집에 와서 보이는 모습은 무기력하고 “이대로 곧 죽는다”는 말만 한다. 그리고 엄마의 가사 일에 마치 본인이 평생 주부 9단인 것처럼 잔소리를 한다. 왜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안 들어준다며 강압과 폭언으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어필하는지 모르겠다.




네 번째 뇌의 변곡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우리 인생에서 뇌의 변곡점은 네 번 오는데 마지막 노화기는 83세에 온다고 한다. 이때 뇌는 각 연결이 심하게 감소하고, 각 영역이 조화를 이뤄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이제는 약화되어 특정 영역에 의존하게 된다.

뇌는 결국 자주 쓰던 방식으로 늙는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지만, 가끔 말씀 잘하시는 노인들을 보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뇌의 노화를 더디게 하여 각 영역을 두루두루 잘 사용할 수 있게, 본의 아니게 그의 평생 삶에서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혈관 질환으로 점점 뇌의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그럴수록 인간은 편안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운동으로 끊임없이 이 신체에 윤활유가 잘 돌아가도록 채찍질을 해줘야 한다.


그 예로 바로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한번 더 생각해보는 습관. 몸을 움직이면서 혈액순환을 하는 습관, 바로 청소라는것이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지만 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습관을 말하고 싶다.




마무리

남편의 앞날에 나의 우려가 없기를, 나는 계속 말하게 될 것이다.
“움직여라. 스스로 깨우쳐라.”
그를 인간적으로 걱정이 되어서 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