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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크 Jul 10. 2024

수영대회를 나가보았다.

나의 운동스토리

원래 물을 싫어했었나? 

딱히 그런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물속에 잠수하고 놀았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엄마의 뱃속 양수 안에서 

편안하게 있는 것처럼 느꼈던 것 같다. 


또 처마가 달린 집에서 비 오는 날 창호지가 붙은 문을 열어두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관찰하던 어린 시절이 있어서 그랬을까? 비 오는 날은 꽤 낭만적이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군인가족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를 다녔는데 친구 아빠들이 소령, 대위 이랬던 것 같다.

그 아빠들이 자기 자녀들과 놀라고 주던 부대 풀장 이용권을 받는 날엔

어디서 얻어온 정체불명의 수영복과 세면도구를 챙기고 무더운 여름날 잽싸게 부대로 들어가면

군인아저씨들의 호위로 풀장으로 달려가고 뜨거운 햇살아래 눈부신 물결 위로 찰방찰방 놀았던 경험이 있다.



성인이 되어 호주로 훌쩍 워킹홀리데이로 가게 되면서 해양스포츠의 강국인 호주의 바다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케언즈에 가서 요트 투어를 하는데 유럽인들이 자주 가는 것을 보고 따라 하면서 우연히 걸린 그랜드 베리어리프 투어는 내 인생에 수영을 반드시 배워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한 시간 반을 요트를 타고 그랜드 베리어 리프에 도착한다. 잠수복을 입고 모두 스노클링을 하며 아름다운 산호와 다채로운 물고기들을 보는데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한 상황이라 이 무모한 도전에 얼마나 무지했던지.

요트 선장에게 나는 수영을 못한다고 하니 아무 거리낌 없이 기다란 막대 봉을 하나 툭 건네주더니 문제없다고 한다. 


겁이 없었던 걸까? 막대봉을 겨드랑이에 껴서 스노클을 하는데 이 세상이 아닌 아름다움을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 무조건 한국에 가면 수영을 배우겠다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운 좋게도 수영센터가 가까이에 있었다. 퇴근하고 수영하기 딱 좋은 도보로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처음으로 수영 기초반을 등록했다. 처음 6개월은 열심히 다녔지만 아무래도 강사진도 맘에 안 들었고 또 사람은 현실에 찌들면 운동은 차후로 미뤄지게 되니까 나도 자연스레 수영을 그만두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슬금슬금 운동에 대한 욕구가 다시 솟구치게 되면서 아이들을 두고 현실적으로 운동을 배울 시간이 없어서 새벽반을 등록하게 된다. 

새벽 6시에 강습을 받고 집에 오면 7시 15분이라 이때 아이들을 케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제법 꽤 오랜 시간 수영을 다니다 말다 반복 패턴을 유지하게 된다. 


수영을 꾸준히 다닐 수 있었던 게 아니고 1년 다니고 관두고 몇 년 후 1년 다니고 관두고 이런 식으로 수영은 어쩌다 한번 더 배워볼까 하는 연속성이 있는 운동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코로나로 세상이 순간 멈추게 된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코로나로 마음도 몸도 찌들어 갈 때였는데 이때 어디 도망가거나 숨을 곳이 필요했다. 다시 새벽 수영을 등록하고 그때부터 쉬지 않고 지금까지 수영을 다녔으니까 아무래도 가장 힘든 시기에 수영이 내게 큰 위로를 준 것은 틀림없다. 


이렇게 따지면 내 수력은 최소 7년 이상은 되는데 사실 수력만큼 실력이 비례하지 않아서 수력이 얼마나 하는 계산을 일부러 하지 않는다. 물을 좋아하지만 운동신경은 너무나 없었고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상당히 느린 편이었기에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서 그나마 이 정도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결정적으로 남편은 내 수영실력을 일체 믿지를 못한 것도 내가  자신감이 떨어지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 남편 이야기를 하자면 아주 아주 귀엽고 장난을 치는 산만한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남편은 내가 하든지 나를 이기고 싶어 하고 내가 존중해 주기를 엄청 원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수영을 배우는 나에게 계속 내기를 하자며 단거리 경기도 했었고 남자의 피지컬에 압도적으로 수밖에 없던 나에게 남편은 승리자로 취해있었다. 또한 내가 스타트 입수 다이빙자세를 연습하면 항상 국가대표 선수들 영상을 비교하며 못한다는 소리를 얼마나 자주 하던지 남편의 약 올리는 발언에 나도 모르게 더욱 남편에게 없다는 승부감이 생겨서  수영을 열심히 하게 된다. 




올해 갑자기 수영 선생님이 수영대회를 나가보라고 권유하게 된다. 

사실 이제 이 정도 다녔으면 자신의 객관적인 기록이 궁금해지기도 하다. 나는 정말 궁금했다. 나의 속도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수영대회에 25미터 자유형을 등록하게 된다. 

처음이니까 일단 단거리부터 시작하고 다음 대회부턴 50미터를 나가면 되니까 첫 시작은 미미하게 해 보자 생각을 했다. 


대회까지 한 달 동안 주 7회를 매일매일 혼자 꾸준히 연습을 했다. 강습을 받는 것과 별개로 혼자서 자유수영을 하면서 체력을 한층 끌어올리고 자신 없는 종목인 배영을 본격적으로 연습을 하게 된다. 

이때는 자식들도 남편도 눈에 안 보이게 된다. 오직 수영대회만 생각하며 살게 되니까 좀 행복했던 것 같다. 


대회날 혼자 가려고 준비물을 챙기는데 남편이 일찍 일어나서 같이 가겠다고 떼를 쓴다. 

와봤자 혼자 멀뚱히 쳐다만 보는데 시간도 길고 오지 말라고 말렸건만 남편의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알고?

실은 당신 마누라가 얼마나 못하는지 그거 뜬눈으로 지켜보며 놀려줄 생각이 가득한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물론 남편의 마음 한편엔 내가 이변을 내어주리라는 기대감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무튼 남편은 굳이 따라오겠다는 걸 말리지 못하고 결국 우리 부부는 대회에 같이 가게 된다. 

자유형, 배영 오직 한 번만에 결정이 나는 것이기에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스타트 입수 출발을 하는데 물이 엄청 무겁고 평소 실력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그냥 첨벙첨벙 정신없이 피니쉬까지 갔다. 수영을 하면서 '아 진짜 망했다. 망했어' 얼마나 읊었는지 모른다. 


기록은 처참하고 내 생에 이런 기록을 아주 중급반때 배운 적 빼고 본 적은 없었다. 부끄러워 말할 수 없는 기록이었다. 그리고 대기공간으로 다시 가니 남편이 환호하며 " 이야~~ 너 유력한 1위 후보야" 하며 연신 감탄을 한다. 


당황한 나는 무슨 일이냐고 하며 남편이 찍은 영상을 보면서 압도적으로 내가 1위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기록표가 나오면서 벽보에 붙여지고 우리는 당장 순위를 확인하러 뛰어갔다.


남편은 내 이름을 찾아내고 " 이야!! 너 금메달이야!! 이야 대단하다!"라고 마치 제가 금메달을 딴 사람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메달을 받자마자 바로 사진을 찍으며 가족 단톡방에 마누라 수영 대회 1등 했다고 자랑을 하니 민망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내가 준 선물은 반전미였던 것 같다.

항상 못하고 느림보 마누라가 대회를 나간다 하니 호기심에 기웃거렸더니 아니 글쎄 이 마누라가 1등을 했지 뭐야 하고 얼마나 기뻐하던지. 오히려 당사자인 나는 기록이 안 나와서 1등이고 뭐고 침울해 있었는데 되려 

나 대신 좋아해 주니 또 이것 조차 즐겁구나 싶었다. 



결론은 뭐냐고?

아마도 다음 대회땐 50미터를 도전할 생각이라 다음 대회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내년엔 전국 마스터즈 대회를 개인자격으로 참가할 생각이다. 


첫 대회인 만큼 긴장한 탓에 몸이 제대로 물에 못 탔지만 까짓것 이제 두 번째 세 번째 대회경험을 치르게 되면 평소 컨디션대로 수영을 날이 오지 않을까?


아무튼 이 기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뭐든 꾸준히 하면 얻는 게 있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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