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 # 1
제정신이라는 착각 - 필리프 슈테르처/ 유영미 옮김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인터넷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책 추천 정보를 흘려 보게 된다. 우연히 뇌과학자가 아주 강력하게 추천하고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말에 홀려 도서관에 대기를 걸어 빌려왔다.
단언컨대 이 책 추천하는 사람들은 인지 심리학자, 뇌과학분야 종사자 들 아니면 절대 추천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생소한 용어들이 가득 차고 작가인 독일양반은 왜 그렇게 막 쏟아내는데? 보는 사람 입장에서 배려를 해주면 안 되나? 또 번역은 왜 이렇게 딱딱할까? 원서 그대로 느낌을 살리려고 그랬는지 피동표현의 남발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무튼 독자인 나는 일반인이라 생각하고 접근했을 때 상당히 불편한 글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의 본질은 뇌과학자가 추천한 만큼 뭔가 매력이 있지 않겠나 싶어 무거운 책장을 며칠 내내 끙끙 씨름하며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거국적이고 근본적인 머리말에서 이 책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나와 타인의 좀 더 유연한 사고로 확신은 가설일뿐 소통을 하며 양극화 시대에 소통을 하자는 게 주요 골자 같다. '좋은 말이네' 항상 이상적이고 좋은 의미의 글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가슴에 새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는 순간 마지막엔 이 복잡한 글자들 사이에서 코르티솔을 분비하며 스트레스를 유발했음에도 진한 인상을 남겼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제 뇌의 물리적인 처리 기능이 연상이 되며 해석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와 다른 사람과의 좁히지 않는 생각차이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켜켜이 쌓아온 내적 세계관이 있고 그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단체나 사회집단에서의 신념과 본인의 신념이 일치가 되면 더더욱 설득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특히 지식인일수록 자신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타인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 이해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아, 너는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가지게 되고 오히려 분노나 괴리감이 줄어들게 된다. 작가와 이 책을 추천한 사람들의 의도가 이런 것이었을까?
또 이 책을 읽기 전 나에게 중요한 한 가지 의문점!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나, 혹은 소수의 독자들 (대학민국의 독서율이 세계적으로 낮다고 봤을 때)이 이 책을 읽고 계몽을 했다고 치자, 혹은 깨달음을 얻었다 하자. 그러나 이 책을 읽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의 확고한 생각을 뒤집을 생각이 없다. 그런데 왜 책을 읽고 깨달은 독자들만이 성찰하는 것이 무슨 이득일까? 나의 정신이 온전해진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세상은 달라지고 있지 않고 과열되고 분열되고 모두 자기가 옳다고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는데?
그러나 확실히 읽고 난 후 나의 생각은 완전히 열려버렸다!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고 번역가는 충실히 번역했을 뿐 이 불친절한 글들은 나에게 큰 뻐렁침을 남겼다.
우선 모두가 가지고 있는 '확신'이라는 것은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줄어들게 도움을 준다. 이것은 진화론적으로 우리가 생존과 번식을 하기 위해 자연선택의 이점으로 발전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말이 옳다고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사람들은 진화론적으로 생존 본능에 가까운 행동인 것이다.
그런데 나와 모두가 가지는 이 확신들은 사실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인데 이것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이제 이해할 것이고 뇌과학자나 인지심리 전문가들도 알 것이다.
사실 우리 뇌는 컴컴한 방안에 있는데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외부 세계와는 노크소리로 신호를 받아 상상을 한다. 우리가 보는 이 두 눈은 망막을 통해 신호를 전달해서 뇌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그럼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허상일까 현실일까?
복잡하게도 이것은 현실일지 허상일지 모른다. 현실과 허상의 괴리가 커지면 우리는 심리 질환으로 망상증이 심한 조현병 환자를 생각할 수 있다. 되도록이면 현실과 우리의 망상이 최대한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많은 합리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식 있는 생물종으로 진화해 왔으니까.
이 말을 다시 쉽게 풀어보자면 호모사피엔스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 중에 비합리성의 인지로 생존을 해왔고 이것은 다른 종과 다르게 외부세계에 유연한 사고로 그때마다 위기를 벗어났다고 한다. 그러니까 추우면 옷을 만들어 입고 적이 침투하면 무기를 만들고 음식이 떨어지면 이동수단을 만들어 음식을 공급하고 등등의 유연한 사고는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자연선택의 이점이라고 하니까 이제까지는 비합리성판단으로 확신을 가지고 세계관을 꾸리고 오늘날의 현대사회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이제는 작가는 이렇게 비합리성이 굳은 확신은 더불어 살아가는 면에서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집단에만 소속되어 있다면 분열이 더 과열되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일이 어려워진다고 우려한다.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결코 나쁘거나 안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확신이 때론 가설로써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이고 모순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쪼르르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하게 이 책의 호불호를 말했는데
언니가 스트레스받는다고 갑자기 과자를 씹어먹는다고 했다.
코르티솔 분비는 일시적으로 우리 몸을 안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이게 장기간 되면 병이 된다. 자연의 섭리고 생존 본능이다. 언니는 지금 뇌의 안정화를 시도하고 있구나 하는 이런 망각을 또 하게 되니 이 책이 남긴 여운은 장난 아니다!!
아래 그림을 보자. 개가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 개의 몸뚱이가 한 덩어리로 보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