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보미가 결혼을 결정한 이유는 남편을 지켜본 결과 직장생활을 오래 할 것이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 밖의 다른 이유로 봤을 때 보미의 집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보통의 가정 안에서 자란 남편의 모습이 참으로 안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보미는 남편보다 나이가 5살이 어렸기에 그녀는 남편을 존경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결혼이 급한 것도 아니었는데 남편의 집에서 갑자기 결혼을 서둘러서 보미는 자신의 주관이 제대로 서기도 전에 새로운 세상으로 빨리 문을 열게 된다. 그곳은 보미가 겪지 못할 장밋빛 미래와 금은보석이 가득한 보물섬이라는 달콤한 상상에 빠지게 된다. 집을 얻게 되고 두 사람이 벌어오는 수익으로 차곡차곡 모우다 보면 내 집마련까지 은퇴 후 삶은 창창대로라고
사랑을 하면 그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 나 자신을 포장한다. 그리고 나의 완전한 모습은 치부로 느껴져서 꼭꼭 숨기고 그 와 닮아가길 그토록 열망한다. 보미의 사랑은 설익은 과일처럼 풋풋하고 덜 영근 풋내가 나는 사랑이었다.
반면 남편은 주변의 평가를 중요시한 사람이었다. 남편의 이상형은 확고했다. 성숙한 외모에 여리여리한 몸매, 그리고 능력까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상형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그의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남편은 누구보다 자신이 우위에서 선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형 여인들은 성숙하고 연상이었다. 남편은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보미를 선택하게 된다.
나이가 어리지만 말을 잘 듣고 기다릴 줄 알며 전화를 안 해도 그 자리에 꼭 있는 사람. 게다가 주변에서 보미의 빼어난 미모를 칭찬하며 남편은 주변의 평가에 점수를 확인하고 보미와 연애를 한다.
결혼 적령기가 되면서 남편의 어머니가 결혼준비를 서둘렀다. 보미와 남편은 그렇게 어른들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남편은 보미가 그저 그런 여자, 적당히 자기 비위를 맞춰줄 여자, 예쁘지 않지만 그래도 장식으로 썩 괜찮은 그냥 보통의 여자로 선택을 했다.
사랑은 정신병이라고, 애초에 사랑 따윈 사람에겐 일시적인 도파민이라고 했다. 보미는 얼굴 빼고 모두가 못생겼다고 했다. 손과 발이 못생긴 여자는 처음이라고 했다. 남편은 보미에게 솔직한 사람이었다.
연애시절엔 길가면서 방귀를 뿡뿡 뀐다. 보미는 그 방귀소리가 너무 싫지만 남편은 생리현상은 참으면 안 된다고 오히려 반문한다. 그는 트림도 거침없이 한다. 보미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자판기 커피를 꺼내어 둘 다 동시에 즐긴다. 보미는 그런 그가 무조건 좋았다. 옆에 있기만 해도 행복했다. 그녀의 나이 25살이었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스스로를 자멸하게 할 수 있다. 보미는 어쩌면 남편이 자신을 구원해 줄 구원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편의 모든 뜻에 거스르지 않고 따르고 싶었다. 사랑은 그 사람을 닮아가는 거라고 했다. 낭만이 이성을 좌우하던 시기에..
보미가 결혼하고 나서 보미의 언니 보영이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겼다.
보영이 역시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타지로 공장에 3교대 근무를 하는 열혈 아가씨였다.
몇 년 돈을 모아서 전셋집을 얻었다. 어느 날 그 지역 건달이 붙어와서 동거를 시작했다.
보미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언니와 함께 살 생각에 단숨에 언니가 살던 곳으로 날아갔다. 언니는 남자와 동거하기 위해 집에서 머물 수 없음을 그러니 나가달라고 했다. 보미는 어쩔 수 없이 남편이 얻어 다 준 고시텔에서 지내게 된다.
그 후에 그녀의 친구와 방을 얻고 함께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자취생활동안조차도 보영이는 보미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남자를 사랑하여 보영이는 모든 재산과 마음을 그에게 다 주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그녀는 남편을 믿고 또 믿었다. 아이를 임신하게 되어 급하게 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렇게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건달이 돈을 벌어오는 것은 나쁜 짓 이외에는 없다. 둘째를 임신할 때쯤 보영이는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남자가 구치소에 들어갔고 그 바닥을 드디어 직면했기 때문이다.
보미는 현실을 바라보라고 보영이에게 충고를 했지만 보영이는 그게 진실일까 봐 두려워 눈을 감았다.
남편이 구치소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대로 혼인을 지속할 수 없음을 드디어 인정한 것이다. 그녀는 인어공주이다.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재산도, 영혼도, 그리고 주변에서 둘 사이를 갈라놓을 때 비로소 그녀는 그를 놓아준다.
보미와 보영은 그런 바보인생을 살았다. 현명하지 못하고 인생을 덤벙대며 그대로 달려들었다.
잔다르크 투사처럼 옳은 신념으로 사랑하나로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며 불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갔다.
구치소에 들어간 남자와 협의 이혼을 하기 위해 남편이 갑자기 눈빛이 반짝이며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보미가 보기에 남편은 상당히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하면서 주변을 탐정놀이하듯 추척하고 이혼 사유를 찾아내고 그 사이에 보영이는 보미집으로 큰 아이를 데리고 둘째를 임신한 채 들어왔다.
그녀가 자신의 보금자리에 갔을 땐 이미 건달이 살고 있던 집을 빼서 전세금을 모조리 가져다 쓰고 짐은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을 했기에 아무것도 건질 수 없이 너무 늦어버렸다. 그녀는 몇 달 동안 친정과 보미의 집에 얹혀 사느라 자신의 집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걸 몰랐던 것이다.
보미네 자매 모두가 20대 시절의 일이었다. 무능력한 부모님은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느라 이러한 비극을 듣고만 있었다. 고통스러운 엄마는 더욱 열심히 일하고 가족일에 신경을 안 쓰는 아버지는 부처님 같은 표정으로 회사를 나갔다. 힘주며 속상해하던 오빠는 항상 목소리만 열낼 뿐이었다.
결국 흥미롭게 관찰하던 남편이 적극적으로 행사하던 끝에 드디어 보영이가 이혼을 하고 지방의 부모님 댁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거짓말..
거짓말은 결국은 들통나게 되어있다. 작은 거짓말이 쌓여 부풀려졌을 때 이미 자기 손아귀에 조정을 할 수가 없다. 거짓말을 외면하는 우리의 눈도 결국은 진실에 마주 보게 되어있다. 보영이는 진실은 눈감았다. 터지면 폭탄인걸 알고 있었다. 그 나이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보미는 남편에게 애절하게 부탁했다.
언니의 이혼이 부끄러우니까 좀 나중에 주변사람에게 말해주면 안 될까?
다른 사람에게는 이혼 사유를 말 안 해주면 좋겠다고..
남편이 말한다.
"나는 거짓말이 제일 싫어, 내가 거짓말로 전 애인과도 헤어지고 나서는 진짜 거짓말 싫어해.
왜 속여야 해? 그건 네가 감당해야지. 진실을 아무리 속이려 해도 감춰지지 않아."
그렇게 그는 거짓말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친구들이며 그의 부모님, 가족에게 보미의 언니에 대한 사건의 낱낱들이 가십거리처럼 도마 위에 올려지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보미의 집안이 형편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녀를 함부로 무시하기 시작했다.
보미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사랑한다면 아내를 위해 좀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굳이 말 안 해도 되지 않을까?
거짓말이 뭐라고 꺼내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온 동네에 떠벌리고 다닐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거짓말이 싫다고 하면서 정말 거짓말을 안 하고 사는 것일까?
보미의 부모님이 집에 오셨을 때 그는 조용히 회사일이 바쁘다고 하고 캠핑을 갔다.
보미는 비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겐 그렇게 거짓말에 관대하지 않을 수 없다. 얄팍한 그의 거짓말에 보미도 눈을 감아준다. 이 정도는 내 손아귀. 더 점점 커지면 그건 우리 둘 다 혹독한 대가를 받겠지.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거짓말이 습관이 되면 감당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온다.
우리는 생존본능에 따라 진화되어 왔다.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예측 불허의 일에는 두려움을 느끼고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 동물적 감각으로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부딪치고 스스로 어긋난 행동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학습을 하며 보편적인 행동을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는 너무 우리 스스로를 믿고 방관할때가 있기때문이다.
보미의 남편은 그 이후에도 자잘한 거짓말들을 한다. 심각한 거짓말은 아니고 살면서 흔히 하는 일반적인 거짓말들이다. 야근한다 핑계로 실내 스크린골프나 여행등. 그럴수록 보미는 남편과 대화를 끊임없이 한다. 직구는 아니더라도 시기적절할 때 꺼낼 수 있을 때, 우위 선점하고 싶은 남편의 자존심을 건들면 일을 그르치니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감정을 배제하고 담백하게 꺼낸다. 그러면 남편은 듣고 자기 자신만이 정답이 아님을 깨닫는다. 자신도 모순덩어리임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눈을 감는다.
아직은 인생의 절반만 달려왔으니 어느 인생이 답일까?
어느 선까지 눈을 감아야 할까? 우리 모두가 서로 진심을 숨긴 채 이렇게 달려오는 것이 맞는 것일까?
완벽하게 거짓말이 싫다고 공개망신을 당한 보미는 거짓말이란 텍스트를 항상 따지고 든다. 예민한 그녀의 성격탓이다. 받은 말은 되돌려준다. 그녀의 소심한 저항.
완벽한 거짓말은 있을 수 없지만 거짓말이 싫다고 하는 사람조차 거짓말을 하는 모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믿는가? 믿는척해야 하는가? 믿어야 하는가? 따지고 들어가야하는가?
이것은 각자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입력하면 바로 출력값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이 우리 인생이기에..
그래도 보미는 최소한 다시 겪고 싶지 않는 암울한 과거를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 결백과 진실을 무기로 삼는다.
좀 더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면 보미의 남편처럼 "네가 그저 보통의 여자라, 괜찮은 여자라, 손발이 예쁘지는 않지만 얼굴만 예뻐서, 적당해서 결혼했다"라는 말은 하지 않을것이다. 솔직과 진실은 또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 곳에서 방귀를 뀌고 트림을 하면서 주변의식을 하지 않는 그런 솔직함은 칭찬해줘야 하는가?
불편한 진실은 아무도 알고 싶지 않을것이다. 그럴 때 처세술을 배우는게 좋다.
완전 별로였던 연극을 보러갔다. 시놉도, 연출도 깔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초대해준 사람의 성의를 봐서 나의 잘난 지식을 자랑하면서 솔직성을 드러내는것보다
"초대받아서 갔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 그 순간만큼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거야"라는 다른 진실로 표현할 수가 있다. 보미의 남편도 외모적인 진실보다는 너의 성격이 너무 좋았어. 평생을 믿고 살아갈만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결혼을 결심했어라고 또다른 진실을 찾아냈다면 서로에게 얼마나 좋았을까?
이것은 비밀이지만
보미는 아직 남편에게 남편 외모의 진실을 말한적이 없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그가 얼마나 슬퍼할지 예상이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