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행복한 우리 집

묻고 싶었다.

by 바크


보미는 아이들을 성인으로 키워냈다.

부모로서의 책임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녀가 받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을

넘치도록 주고 싶었고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숟가락을 떠서 밥까지 먹여주는 실수를 하게 된다.

아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했다.

보미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인생을 깨달음을 주는 정신적인 스승이자 유혹을 하는 사탄과 같은 존재인데 그는 과연 그녀 인생의 걸림돌이었을까 구원자였을까?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첫 문장에서 보자.



“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안했다. 굳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박식한 척할 필요가 없었고,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허둥대지 않아도 되었으며, 패션 카탈로그에 나오는 남자들과 스스로를 비교해 위축될 까닭도 없었다.”



남편은 채식주의자를 보며 보미와 같다고 웃었다.

보미는 솔직한 저 성격이 무례함을 어찌 모를까 혀를 차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남편은 마치 어린 시절에 정신 수준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어쩌면 솔직함을 저렇게 당연하듯 표현할까, 그와 살면서 보미는 점점 꿈과 희망이 많던 낭만소녀에서 점차 현실주의자로 변해버렸다.

아이들이 어릴 때 말을 안 들으면 남편은 소리를 지르며 보미에게 역성을 냈다.


“너는 애들하고 똑같아! 모두 다 잘못이야!”

그의 전지적인 관점과 태도는 보미와 자녀의 위계를 파괴했다.

남편은 훌륭한 아빠로, 좋은 아빠로 남아있고 싶었다.

철저히 방관자 입장에서 아이들은 알아서 스스로 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미 같은 경우 어린 시절 철저히 혼자 자랐다. 가족이 돈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조부모 밑에서 한동안 자랐으며 부모 모두 생업에 나가느라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밥을 차려 먹고 학교를 다녔다. 비 오는 날, 소풍날, 운동회날, 고등학교 입시 때까지도 그녀는 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이

그냥 그렇게 여러 아이들 중에 섞여도 눈에 띄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녀의 형제들은 선택할 순간에 최악의 패를 들어서 인생이 초반에 휘청거린 것을 눈뜨고 봐야 했다.



반면 남편은 교사아버지와 가정주부 엄마 밑에서 자랐다.

넓은 양옥 주택에 다가구가 살았는데 세를 놓고 주인집 아들로 넓은 마당에서 뛰어놀며 자랐다. 장식장에는 아버지의 표창장이 장식되어 있었고 각자의 방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풍족하지 않았더라도 굶거나 월급이 밀리거나 하는 인생을 겪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보미의 시어머니가 가장 큰 인생의 좌절은 남편이 대학 시험에 떨어졌을 때였으니까 어느 정도 꽤 괜찮은 가정환경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보미가 결혼을 결심한 것도 남편의 가정이 선망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가정이 평화로우면 그 자식도 후광효과를 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보미는 그런 가정에서 자란 남편은 자녀교육에도 진심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완전한 별개임을 다시 한번 알았다.

남편은 철저히 개인주의자였다.


양귀자의 모순이란 소설에서 이런 대사가 있다.

“결혼을 하면 여자는 20년 징역살이고, 남자는 평생의 무기징역이야”


이 말을 보미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자는 형식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고 속박당하는 걸 괴로워한다.

여자는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의 막대한 책임을 지우고 나서야 가사와 육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는 의미일까?


보미가 느끼기에 남편이 딱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의 태도 같았다.

집에 오면 보미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집은 편히 쉴 곳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30평대의 아파트에 공간이 넓어도 자기 쉴 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는 평생을

밤늦게 귀가했다.

(앞서 보이지 않는 여성들이란 책에서도 서술했듯이 주거공간은 남성들에게 여가공간으로 구분되는 이유가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이고, 여성은 주거공간이 여가공간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노동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보미는 처음엔 남편이 퇴근하길 기다렸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보미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남편은 야근을 핑계로 스크린골프, 아이스하키 스포츠활동 등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주차장에 머물며 또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

보미는 그가 집에 들어올 때쯤이면 이런 상상을 한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처절하게 싸우고 돌아와 피를 흘리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다리를 절며 집으로 들어온다’


보미는 항상 남편이 그래 보였다.

얼마나 밖에서 집에 들어오기 싫어하면 저럴까? 우습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더구나 말본새까지 미운짓만 골라했다.


다시 아이들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 보미는 열혈 맞벌이맘으로 합류하였다.

아이들은 일찍 학교를 끝나는데 엄마는 오후 6시 퇴근이고 아이들은 집에 알아서 있어야 했다.

막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가 혼자 있을지 걱정이 너무 되었다.

남편은 항상 남의 아이처럼 느긋했다.

“애들 혼자 있어도 될 나이야. 내 말 믿어, 애들은 다 혼자 알아서 잘한다니까?”

걱정은 항상 보미몫이었다.


그러다가 같은 맞벌이 엄마의 사연을 듣고 그녀는 자기와 같은 사람이 있음을 안도했다.

홍성이엄마는 치위생사인데 그녀는 고향이 김천이다. 어느 날 아이가 수두에 걸려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밤 기차를 타고 김천으로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겨놓고 새벽 기차를 타고 다시 출근을 한다고 했다.

그녀 역시 남편이 육아에 동참을 하지 못했으리라.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 보미는 그녀를 보고 또 참을 수 있었다.


남편은 사업을 했기 때문에 출근은 항상 늦어도 되었다. 보통은 열 시에 출근하면서

그 아침에도 남편은 자느라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행여 학교가지 않는 날에도

아이들과 집에서 티브이를 보며 배가 고프다고 어린아이들에게 과자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했다.

그는 주방은 철저히 남자가 가는 곳이 아님을 , 요리란 지긋지긋하고 귀찮은 일임을, 아이들은 밥을 안 먹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과자로 밥으로 때웠다며 퇴근한 보미에게 밥 차려달라고 졸라댔다.

퇴근하자마다 외투만 벗고 옷도 갈아입지도 못하고 그녀는 서둘러 밥상을 준비한다.

지긋지긋한 인생이고 우울증이 극한으로 가던 시기였다.



캠핑을 가는 날엔 남편은 아이들과 놀기보다는 어른들과 술을 마시는 즐거움이 컸다.

아들에게 일찍 핸드폰 게임을 허락했다.

“매도 일찍 맞아야 철든다. 미리 게임을 해봐야 나중에 안 해”

보미와 남편은 육아 방식에도 맞지 않았다. 보미는 통제를, 남편은 자유를.. 그 사이에 있는 아이들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부모 때문에 더욱 자기 멋대로 자라게 된다.

그 아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역시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겜보이로 자라게 된다. 게임 때문에 학교를 빠지게 되고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았다. 스스로 공부해야한다는 남편의 말에 학원을 끊어야 한다고 해서 보미 아들은 학원도 한번도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이들은 크게 모나지도 않게 무사히 학교를 건강하게 졸업했다.

때론 은따로 생활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시간으로 보낸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또 아프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보미는 다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남편은 항상 똑같다 생각하고 보미의 체력이 한계가 있음을 빨리 인정하고

아이들을 느긋하게 기다려 줄 수 있는 엄마로 다시 살아보고 싶긴 하다.


체력이 안된 엄마는 억지로 가정살림과 일과 육아를 끌고 가느라 화가 많고 서둘러야 했다.

모든 걸 다 한 번에 이룰 수 없고 포기를 해야 하는 것임에도 셋다 끌어가려고 무리를 뒀다가

제일 먼저 보미가 두 손 두 발을 들게 된다.


아이들이 알아서 크도록 부부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들이 학업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수치스러워했고

보미는 아이들의 학교에서 전화 올까 봐 겁이 났다.


큰아이가 사춘기 때 보미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엄마에게 하지 말아야 할 악독한 언어들로 딸아이는 엄마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보미는 상처를 받고 명상센터에 등록을 했다. 3일간 명상을 하며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남편은 비아냥을 댔다.


“네가 간다고 본질이 달라질 것 같아? 인간은 하나도 바꾸지 않아. 네가 간다고 해도 절대 안 바뀌어!”


보미는 상처를 받고 명상센터에서 3일간 온전히 사랑받는 존재로 태어났고 자랐음을 세뇌를 받고 또 받았다. 마음속 내면이 쌓아진 후에야 딸아이를 마주 보며 달래줄 여유가 생겼다.




이번에 아들이 문제가 생기자 학교에서 단박에 보미에게 전화가 왔다.

보미는 엄마에게 전화하지 말고 아빠에게 전화를 부탁한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문제의 상황은 아빠도 알아야 하지만 보미는 이미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문제를 크게 확대시키며 상황을 성급하게 판단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또 보미의 입에서 아이들 문제가 나오면 혀를 차며 보미를 나무랄게 뻔했다.

남편은 담임의 전화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

부부 모두 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을 뵙고 아이를 잘 다시 교육을 시키겠다고 약속을 했다.

남편은 그렇게 처음으로 아이의 문제에 대면했다.

함께 자식걱정을 하며 처음으로 부모로서의 공평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보미 부부는 자식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았다.

원래 내려놓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집안의 권력은 아빠에게 있는 것! 표면적으로 남편을 무시하는 발언은 최대한 조심히 했다.

부부는 공동의 전략가이기 때문에 남편은 아이들 앞에서 아내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보미는 남편의 위신을 세워주면서 아빠의 존재가 하늘처럼 높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래야 아이들이 문제가 생길 때 아빠의 말은 힘을 발휘하니까

언어는 되도록 상냥하고 고운 말을 쓰도록 노력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평화로워야 하는 걸 신경 썼다.

그저 밥과 간식을 채워서 잘해줄 것!

집은 편안한 공간일 것!

게임을 할 수 있고 웃음이 나오는 곳!

거실로 나와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

집은 아이들이 있기에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출이나 탈선을 하면 위험하니까 보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기도밖에 없었다.

신께, 만물의 신들께, 조아리고 조아리며 무탈하게 아이들이 졸업만 할 수 있게

조금만 더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애원했다.

잔소리 같아도 좋은 말만 했다.

도덕적이고 신뢰 있는 사람만이 앞으로 이 세상에 먹고 살 힘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또 말하였다.

보미가 할 수 있는 부모로서의 역할은 이것뿐이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어떤 길을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을 부딪혀야 살아갈 힘이 하나씩 쌓이는 것 같았다. 꼭 자신처럼.

덕분에 보미는 두 아이들이 무사히 고등학교 졸업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묻고 싶었다.

보미는 이제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냐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행복한 그녀들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