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은 어떻게 지낼까?
설 명절은 그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 맛있는 떡국을 먹으며, 새해를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하는 즐거운 시간이다. 교과서 속에서는 명절이 가족의 사랑과 화합을 나누는 특별한 날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보미의 시댁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큰 시누는 명절 당일이나 전날 1박 2일만 시댁에 머무른다. 요즘은 남편만 내려오고, 큰 시누는 명절의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작은 시누의 경우, 그녀의 가족은 차례를 지내지 않으며, 형제들끼리 장을 보고 밥 한 끼를 함께한 후 흩어진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명절에조차 형제들 간의 만남이 끊겼다.
보미의 주변 지인들을 돌아보면
시댁과 연을 끊어서 발길을 끊은 집, 명절 당일만 참석하는 집, 명절만 되면 해외여행을 가는 집, 명절에는 1박2일만 하는 집등이 있다.
어리석은 보미시절에 설이 평일 화요일이라면 그 전 주 금요일부터 시어머니가 보미를 기다린다.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이어지는 5일간, 보미는 주방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요리를 하고 치우기를 반복한다. 명절 음식은 삼색나물, 삼색전, 산적, 생선구이, 떡국, 곶감, 식혜 등 매년 똑같다.
보미의 남편은 친구들과 만나거나 골프를 치며 연휴를 휴가처럼 보낸다. 아이들은 방 한 구석에서 게임 삼매경이다. 보미와 시어머니만이 주방에서 명절을 보낸다.
명절이 끝나면 차례 음식은 모두 시누이 집으로 옮겨지고, 보미는 대접받기는커녕 가져온 음식을 다시 먹는다. 초대받은 손님에게 최소한의 대접조차 없는 이 상황은 보미를 서글프게 한다.
보미가 생각하는 명절은 이렇다.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보드게임도 하며 웃음이 가득한 하루. 가족들이 함께 성묘를 다녀오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덕담을 주고받는 시간. 그러나 현실은 남편의 부재, 아이들의 방관, 그리고 시어머니와의 끊임없는 노동으로 가득 차 있다.
친정에서의 또 다른 풍경
명절에 친정을 찾는 날, 보미의 남편은 불편한 돌하르방처럼 자리에 앉아 꾸역꾸역 음식을 먹는다. 장인의 과거 이야기와 음식 얘기가 반복되는 식탁에서, 남편은 두 시간이 지나면 다리가 저려온다. 그 모습이 안쓰러운 보미는 서둘러 그를 본가로 돌려보낸다. 부부는 이렇게 명절마다 갈라지고, 연휴가 끝날 즈음에야 집에서 다시 만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보미의 남편이 시간단위로 머무르는 시간은 평균 2~3시간이 전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보미집안은 이게 훨씬 편하다. 사위는 항상 어렵고 서로는 불편한 존재이기때문이다. 보미 역시 시댁과 입장이 불편한 것과 같다. 영원한 평행선이기에 부부 외의 타인은 어렵고 낯설다.
이제는 20년이 흐른 지금, 보미는 명절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즐겁지도 않다. 명절에는 두 아이와 조카들에게 줄 용돈, 장보기 비용, 연휴 동안의 생활비로 큰돈이 나간다. 모두 보미의 주머니에서 나가니 풍족할 리 없다.
보미는 한때 남편의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남자의 의무는 차례상에 올리는 지방 쓰는 거고, 여자의 의무는 음식 준비하는 거야.”
보미는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 남편에게 보여주며 반박했다.
“전통적으로는 여자가 차례상 근처에도 못 가. 남자가 다 준비했어야 맞아!”
명절은 모두가 함께 동참해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부모님 댁에 와서 고장난 곳을 손질하고 더러운 곳을 청소하며 그렇게 새해를 묵은 것을 보내고 새것이 들어오게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모두가 명절이 무거운게 당연한거다.
적당히, 둥글게, 가볍게 명절에 접근해보자.
보미의 시어머니는 여전히 깐깐한 입맛을 고수하며, 보미가 준비한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그녀는 20년동안 시어머니의 주방 도우미로 일을 했다.
“소금넣을까요? 간장넣을까요?”
“양파를 넣을까요? 마늘을 넣을까요?”
매번 무슨 요리를 하던간에 어떤 재료를 넣어야 하나 일일이 허락을 맡는다.
보미는 이게 차라리 정신적으로 편하다고 한다. 마음대로 했다간 웬만해선 마음에 들기 어려운 까다로운 시어머니 입맛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메뉴를 미리 상의해 준비한 것이니, 그것에 만족하며 즐길 필요가 있다.
보미 역시 자신이 완벽히 맞추려는 노력을 조금 내려놓고, 시어머니가 하라는 대로만 적당히 따라주는 방법을 택했다. 서로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 위해 한 걸음씩 양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명절은 이제 단순히 의무가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정답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시끌벅적한 명절이 행복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명절이 더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보미는 연휴가 긴 만큼 시댁에 미리 갈 생각은 없다. 이제는 적당이 내시간을 챙기고 할 도리를 해도 시간은 넘친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정문화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효의 문화가 사실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유지하는 마지노선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명절에 부모님을 뵙고 어렵더라도 한 가족이 잠깐이라도 같이 식사를 하고 함께 있는것이 상당히 유의미하다.
올해는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적당히 즐거운 명절을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