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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행복한 우리 집]

보석과 범용 이야기

by 바크

지독히도 가난하면서 모두가 책임을 지지 않았던 때

태윤이는 젊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부부는 오랫동안 함께 살지 못했다.


두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고 아이들이 3-4살이 되었을 때 여자는 집을 나갔다.


태윤은 부인이 가출하자 방치된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집으로 맡겼다.

그리고 그는 홀연히 원양어선 배를 타고 뱃사람이 되었다.


늙은 부모는 아이들을 거둘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핏줄이 무엇이기에 마지못해 한번에 들어온 생명들이 조부모의 보금자리에 던져졌고 거절하지 못했다.


큰 아이는 딸이고 이름은 보석이다. 보석은 태어날 때부터 빛나게 나아가라며 지어진 이름이었을까?


작은 아이는 눈물이 많은 아들이고 이름은 범용이다. 용처럼 그의 인생이 훨훨 잘 날기를 바라며 지어진 이름이었을까?


할아버지는 얼마 안가 지병으로 먼저 하늘로 떠났다.

홀로 된 할머니는 큰아들 부부네 집으로 들어가 합가 하게 되었다.


큰아들 태정은 부인이 준 돈으로 흥청망청 쓰는 사업병에 걸린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합가 하기 위해 부인이 저축한 돈을 가지고 일부는 사업자금으로 일부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큰 집을 전세로 얻었다.

(당시에는 주택을 구입 할 수있는 정도의 돈이 모아졌다. )



큰며느리를 저주하며 평생을 살았던 할머니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사실 큰아들 부부를 갈라놓기 위해 무당집을 자주 드나들며 굿을 했고 동네 주민들은 혀를 내두르며 할머니의 지독한 행동을 큰며느리 정자에게 알려주었다.


큰며느리인 정자는 혹독한 시댁살이와 남편의 역마살, 여성편력까지 감당하며 살고 있었다.


그녀의 신은 돈이었다. 돈이 없음 생존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고 정직과 근면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녀는 악착같이 나가서 일을 했다. 아이들과 먹고 살기위해 돈이 필요했다.


다만 신은 그녀가 원활하게 살기 위해 감정을 빼앗아버렸다. 인색한 그녀는 남의 감정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할머니집에 함께 들어온 손주는 보석이 뿐이었다.


큰며느리 정자는 어머니께 물어보았다.


“범용이는 어디 갔어요?”


“내가 둘 다 키우기 힘들어서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보내버렸다. ”


정자는 속으로 혀를 찼다.

‘엄마가 없으니 애들을 책임질 사람이 없구나’


보석은 점점 영악하게 행동했다.


보석은 눈치로 살아가야 해서 이간질이 갈수록 심해졌다.


대범하게도 큰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중간에 말을 끼워 섞고 교묘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보석만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으리라.


보석은 때때로 서울에서 방학시즌만 되면 고모들에게 호출되어 사촌동생들을 돌보러 보내지기도 했다.


큰엄마 정자는 따뜻한 표현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웠고 큰아빠는 가정안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보석은 큰아빠네 가족과 한 공간에 지내는 것이 불편했다.


보석은 방직공장이 운영하는 야간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심했다. 방직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고등학교 수업을 진행하는 기숙학교로 보석에겐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의 동생 범용은 보육원에서 생활하며 가끔 집에 와서 며칠밤을 지내다 가곤 했다.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할머니 따라 들어올 공간도 있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정을 붙일 수 없었다.


어느 날 원양어선 타던 태윤이 돌아왔다.

할머니는 아들이 온다는 소식에 찹쌀떡을 빚었다. 미우나 고우나 할머니에겐 소식 끊긴 아들의

기별이 선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태윤은 멋진 트렌치코트를 입고 형인 큰아들집으로 들어왔다. 결혼할 여자가 있다고 조만간 소개하러 다시 온다고 했다. 아이들이 자아가 생기고나서 아버지를 본 건 처음이었다. 어색한 기류에도 보석과 범용의 표정는 다소 들뜨고 긴장된 상태였으나 희망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만남도 잠시 보석과 범용은 새엄마의 소식에 당황했다. 어린 시절 연락이 끊겼다가 부모님 얼굴이 잊힌 채 살아왔던 아이들이었다. 며칠 지난 후 함께 살기 시작했다던 새엄마도 왔다. 이때는 정말 새로운 사람, 새로운 식구, 새 출발로 보였다.


아이들과 조만간 합칠 계획이 있다고 했다.


보석과 범용은 처음으로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갔다는 설렘이 있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엄마란 사람은 태윤과 더 이상 성격차이로 살 수 없다고 통보했고 그렇게 태윤은 다시 배를 타고 떠나버렸다. 그 뒤 아이들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혼처리가 안 된 친모는 어느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노인의 첩으로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아이들은 다시 한번 날카로운 칼날에 깊게 상처가 베어졌다.


그렇게 또 한바탕 사건이 뒤로한 채 시간이 흘렀다.


보육원에 지내던 범용이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처음으로 큰 아빠에게 등록금 고지서를 내밀었고 큰아빠는 범용을 위해 학비를 대주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범용이가 학교 다닐 때쯤 보석에게서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큰아빠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연락이 왔다.

결혼식에 큰아빠는 보석의 손을 잡아 입장하고 보석은 신랑의 손에 넘겨졌다.

보석을 사랑한다는 남자를 만났고 남자 집은 시골이지만 정감이 가는 분위기가 넘쳤다. 보석은 결혼 후 잘 살 거란 확신이 들었다.


범용은 군대를 갈 쯤에 큰아빠의 공장으로 방위 산업체로 들어갔다. 제대 한 달을 앞두고 정을 내준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범용은 그날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결혼했던 보석도 연락이 뚝 끊겼다.



모두 청소년기에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이 아이들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가족의 무책임 속에서 홀로 자라난 보석과 범용은 각자의 삶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온기도, 작은 책임감도 끝내 그들에게 허락 되지 않았다.


보석과 범용은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 서로를 기억할지, 아니면 완전히 잊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온 날들은 지독히 가난하고 외로웠던 시절 속에서도 함께했던 단편적인 순간들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른들이 외면한 책임의 자리에서, 그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견뎌내며 지나왔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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