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말에는 품격이 있다.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난다.
타인을 향한 배려와 존중은 언어 속에 숨어 있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청자에 대한 지나친 편안함이 실수로 이어지는 듯하다.
조언과 가르침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가끔은 말하는 이가 자신보다 상대를 아랫사람으로 생각하는 뉘앙스가 스며있다.
은연중에 기분 나쁘게 들린 말이라면, 말한 사람은 그 뜻을 돌아봐야 한다.
하지만 인간사가 어디 그렇게 이상적으로만 흘러가겠는가.
사람은 자기 말도 기억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지도 못한 채 그저 시간만 흐른다.
그리고 잊혀야 할 것은 잊힌다. 그럼에도 말은 투명한 발이 달려서 결국 되돌아온다.
어느 날, 그 말이 부메랑처럼 날아와 스스로에게 꽂힐 수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입은 더 무겁게 여며야 하는 것이다.
지방으로 내려온 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고향 근처로 돌아와 부모님과 가까워진 건 참 좋았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금은 여전했다.
며느리는 언제나 서열 아래의 존재고, 그 아래를 향한 일방적인 말들은 피할 수 없다.
어느 날,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셨다.
나는 편히 쉬실 수 있도록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음이 상하셨던 듯했다. 아파트 뒤에 산이 있어 냉기와 습기가 많다.
어머니가 느끼기엔 우리 집의 이불은 눅눅했고, 집안도 축축했다.
나는 오히려 더위 없이 시원하게 살고 싶어서
제습기를 돌리고 원목 마루를 깔았고, 어두운 바닥재를 선택했지만 온도, 습도, 환경 등 어머니께는 불쾌했을 수 있다.
게다가 안방이 아닌, 초등학생 아들의 방을 내어드린 것도 대접이 부족하다고 느끼셨을지 모른다.
다음 날,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 집에 있으면 병이 나. 축축해서 감기 걸릴 것 같고, 어떻게 그런 데서 사냐.”
그 말 한마디에 며느리의 마음은 산산조각 났다.
정성껏 대접하고도 좋은 말 하나 듣지 못하는 게 바로 며느리라는 존재인 것이다.
그날 이후, 10년 동안 어머니는 단 두 번만 우리 집을 방문하셨고 늘 손주와 며느리, 아들을 당신 댁으로 초대하셨다.
사람마다 생활 방식이 다르고, 라이프스타일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머니 집에 가서
“어머니 댁은 냄새가 나요. 화장실 곰팡이도 그렇고, 창틀은 미세먼지 때문에 더럽고,
도로가 근처라 오염도 심해서 한시도 못 있겠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은 없지만, 설령 단점이 눈에 띄더라도 상대에게 직접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건 결국 내면의 성숙도 차이일지도 모른다.
서열 차이와 위계 속에서, 아랫사람의 속마음은 쉽게 드러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미숙하다. 어머니를 존중하려고 노력하지만, 가시 돋친 말에는 쉽게 상처받는다.
복날을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삼계탕 집에 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머니의 입맛이다.
무엇을 먹을지 고르실 때, 나는 묻지 않고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해야 불평이 적어진다.
다행히 어머니가 고른 삼계탕은 입맛에 맞았는지 뚝배기 한 그릇을 비우셨다.
셀프 코너에 있는 콩나물 반찬이 드시고 싶다 해서 잰걸음으로 달려가 접시에 수북이 담아 어머니 식사자리에 놓아드렸다.
어머니의 입에선 고기 질기다, 반찬 짜다 같은 소리 없이 조용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남편이 낚시로 잡아온 오징어볶음이 먹고 싶다며 뜬금없이 어머니를 초대하였다.
부랴부랴 점심도 나가서 삼계탕을 먹었고 멀리 더 나아가 멋진 카페에서 차를 마셨는데 저녁 만찬까지 준비하라니?
그럼에도 어찌하겠나. 어차피 먹을 저녁 어머니 오신다고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잠깐 쉬지도 못하고 바로 저녁준비해야 하는 내 체력이 버틸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어머니도 평소와 다르게 며느리집을 가겠다고 하시니 의외였다.
나는 말문을 열었다. 몇 년 전의 그 말이 자꾸 생각 나서였는지 모른다.
“어머니, 저희 집은 비가 많이 와서 집이 눅눅하고 바닥이 축축해서 몸이 많이 아프고 피곤하실 거예요.”
마치 선전포고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기대치를 낮추면 덜 실망하실 것 같았다.
그건 일종의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방어였다.
어머니는 침묵하셨다. 말이 없으셨기에, 오히려 고마웠다.
며느리의 입장을 조금은 헤아리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엄마가 추울까 봐 바람막이를 챙겨주고 제습기를 풀가동을 하며 집안이 눅눅할까 봐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500여 세대 사람들은 습기에 병든 환자만 있단 말인가? 습도와 온도에 민감한 나조차도 적절히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데 어머니마음이 역세권의 비싼 아파트가 아닌 서민아파트라서 더욱 가차 없이 깎아 내리는 것을 모른다 말인가?
물론 식탁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맵고 짜다 온갖 품평을 즐기는 집안에서 요리의 간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내 선택은 싱겁게 가는 것이었다.
앉아서 밥상을 기다린 남편은 오징어볶음 간이 싱겁다며 식사 마칠 때까지 투정을 부렸는데 아마 며느리의 음식솜씨를 자랑하고 싶었는데 충족되지 않아서 여간 실망한 게 눈에 보였다. 엄마에게는 며느리가 요리 잘한다고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남편은 여태 당신 와이프가 요리 못한다는 것을 헛되이 들었을까?
게다가 부모님이 복날이라고 챙겨주신 새 김치와 반찬들에는 어머니가 젓가락을 대지 않으셨다. 입에 맞지 않을 음식은 가차 없이 거들떠보지 않으시는 것이 편식하는 사람들 특징이기도 하다.
까탈스럽게 먹을 것 앞에서 투정을 보고 있으니 그냥 “그냥 주는 대로 드세요!”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솔직히 좀 웃기지 않은가? 자기 입맛에 본인이 차려먹든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도 하다.
요리 솜씨가 형편없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에 객은 주인의 분위기에 맞춰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진심을 다했다. 최선을 다해 대접했고, 그 마음이 어머니 마음 깊숙이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남편의 어머니이기에 존중과 배려로 대하려고 애썼다.
어머니가 말이 없으셔서 고마웠다.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말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네가 기쁘게 맞아줘서 고맙다. 행복했다."
그 말 한마디면 된다.
말은 참 어렵다.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오해를 낳기도 한다.
나이 들수록 아는게 많아지니 더 실수할 수가 있다. 그럴수록 말은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른들의 말에 너무 깊이 상처받지 말라고.
경험해 보니, 그런 말들에 집착할수록 자신을 갉아먹게 된다.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가고 있다면, 스스로를 믿어도 된다.
남의 말로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경험과 감정, 그리고 생각으로 나를 만들어가야 한다.
내가 내뱉는 말이 내 내면의 성숙도를 보여준다.
좋은 말 한마디, 센스 있는 표현은 인연을 만들기도 하고, 귀인을 불러오기도 한다.
결국 말은, 반드시 어떠한 결과로든 인과를 남긴다.
나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내가 뱉어낸 언어로 지금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어머니의 날카로운 비판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었다면 그건 나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독설을 내뿜어야만 가능한 일 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태도에서 나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니 세월이 흐를수록 어머니와 나와의 사이에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