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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고치기

그냥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

by 숲속다리

작년 이맘때 보일러가 고장 나, 수리기사를 부르고 수리기사를 기다리고 수리기사가 부품을 사 와 고칠 때까지, 한겨울 제일 추울 때 3일을 보일러 없이 추위에 떨며 지냈다. 부품도 비싸고 인건비도 비싸 예상보다 많은 돈을 지불했던 경험이 있다. 그보다 1년 전에 온수탱크가 고장 나 한겨울에 찬물로 씻어야 했다. 돈도 돈이지만, 이곳에선 기사를 불러도 금방 오지 않고, 기사가 올 때 누군가 집에 있어야 해서 여간 번거롭지 않다. 이렇게 2년 연속 수리를 했기에 올해는 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작년 10월부터 보일러를 틀었는데, 11월 중순부터 보일러가 며칠에 한 번씩 꺼지기 시작했다.


다시 켠 후 운 좋으면 일주일 동안 괜찮고, 어떤 날엔 하루에도 서너 번 꺼질 때도 있어 종잡을 수 없었다. 매번 수리기사를 부르기보다 이번엔 혹시 내가 원인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보일러가 꺼질 때마다 지하로 내려가 보일러 상태를 지켜보았다. 기계와 전기 쪽으로는 전혀 지식이 없는 나는,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준에서 보일러 안의 전기선의 연결부위나 가스가 들어오는 라인 쪽을 면밀히 살펴보고, 살짝 건드려도 보며 무엇이 문제인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내 머리로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결국 보일러 필터를 한번 갈아보았다. 사실, 보일러 필터는 내가 봐도 외관상 아직 깨끗했지만, 그래도 만의 하나,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갈아본 것인데,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도 보일러가 중간에 꺼지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져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고, 결국 내가 보일러를 고쳤다고 가족에게 자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연말이 다가왔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자 다시 보일러가 꺼지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밤에 자다가 일어나 보일러를 다시 켜는 날이 많아지고, 혹시나 하는 심정에 새로운 필터도 갈았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두 손 들고, 보일러 기사를 불렀다. 눈이 펑펑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날, 보일러 기사가 우리 집에 방문했다. 몇 시간 동안 검사하고 내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더니, 결론은 중요부품 중 하나를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부품의 가격이 몹시 비쌀 뿐 아니라, 이미 보일러가 노화된 상태라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해도 언제든 다른 부분에서 또 고장 날 수 있으니 차라리 새 보일러 교체를 권했다.


결국, 크리스마스 시즌에 새 보일러로 교체했다. 비용은 수천 불이 들었고, 그 덕분에 지금 같은 강추위에도 보일러는 잘 돌아간다. 그리고 더 이상 새벽에 보일러 때문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 조금 이상할 때 보일러 기사를 불렀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새 필터로 교체하고 문제가 없어 보일 때, 보일러 기사를 불러 점검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결국, 추위에 떨고 새벽잠도 설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들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미루다 결국 일을 키웠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돌이켜보면 참 미련한 짓인데, 그때는 내가 무언가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지금 내가 실직 상태라 수리비도 아깝고, 시간이 많으니 계속하다 보면 혹시 고칠 수 있을까 하는 미련한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나 자신에게 정직했다면, 더 나은 선택을 했으리라. 안다고 생각하는 것,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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