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강박
일주일 전부터 내 휴대폰이 갑자기 작동을 멈추고 재부팅되는 경우가 생겼다.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완전히 껐다가 다시 켜면, 그런 증상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아도 배터리가 빨리 닳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완전히 꺼졌다. 아무리 충전을 하고, 리셋버튼을 눌러도 켜지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휴대폰을 써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여태까지 휴대폰 기능이 천천히 나빠지기 시작하면, 완전히 망가지기 전 적당한 시점에서 새 휴대폰으로 교체하곤 했다. 이번 경우,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시점에,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더니 곧바로 먹통이 되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휴대폰 자체를 켤 수 없으니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정보들, 특히 주소록이나 매일 사용하는 수많은 앱들의 중요한 데이터를 고스란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휴대폰이 먹통이 된 첫날,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휴대폰 수리센터에 맡겼다. 나는 그저 배터리 문제이거나 이상한 바이러스에 걸린 것이라고 판단했고, 배터리를 교체하거나 바이러스 치료프로그램으로 고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최악의 경우, 휴대폰을 교체해야 하더라도, 최소한 그 안에 있는 나의 소중한 데이터는 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리센터의 대답은 휴대폰을 고칠 수 없고 켤 수도 없어 그 안의 데이터를 빼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갑자기 생길 수 있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막막한 심정이 들었다.
둘째 날, 휴대폰 구입 때마다 친절하게 서비스를 해주던 단골 휴대폰 세일즈맨에게 연락했다. 그가 최근에 다른 곳으로 옮겼기에, 그의 명함에 있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해 메시지를 남기고, 하루종일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하루종일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셋째 날, 집 근처의 휴대폰 가게에서 2년 약정으로 새로운 휴대폰을 구입할지, 온라인으로 휴대폰 기계를 구입해 칩만 교환해서 쓸지 고민했고, 마침내 휴대폰 기계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휴대폰 없이 3일이 흘러갔고, 그 3일 내내 나는 심한 불안증상을 겪었다.
나의 생활 전부가 휴대폰과 연관되어 있다. 내게 온 이메일을 확인하고,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은행계좌도 확인한다. 운전할 때 내비로 사용하고, 주유할 때 포인트 카드로 이용하고, 도서관 카드, 교통카드, 크레디트 카드도 모두 휴대폰 안에 있다.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고 메모를 하고 책을 읽고 뉴스를 본다. 그 모든 것을 갑자기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휴대폰을 사용한 이후, 하루이상 휴대폰이 내 손에 없었던 적이 없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내 주위의 모든 세상이, 언제든 갑자기 망가질 수 있다는 공포가 생기고, 더 나아가 무기력증까지 느끼게 되었다. 빨리 새로운 휴대폰이 내 손에 들어오기를 기다릴 뿐, 3일 내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동안 휴대폰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