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우선순위
이민 초기 이야기다. 내 주변에 한국의 편의점과 비슷한 형태인, 컨비니언스 스토어(Convenience Store)를 많이 하고 계셨다. 그런데, 다들 가게의 좀도둑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훔쳐가는 것을 빤히 눈으로 보면서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산하지 않은 물건을 들고 가게밖으로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가게밖으로 나간 후엔, 가게를 비우고 잡으려 쫓아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훔쳐가는 CCTV 영상을 증거로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이 도통 잡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이 좀도둑을 잡아놓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일종의 감금행위로 인정되어, 가게 주인이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중국인 주인이 좀도둑을 쫓아가서 잡은 후, 경찰에 신고했더니, 오히려 감금이란 범죄행위로 경찰에 잡혀가 재판을 받은 실제 사례가 있다.
가게 주인의 안전을 위해, 좀도둑이 그냥 훔쳐가도록 내버려 두고, 좀도둑이 사라진 후 경찰에 신고를 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이용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도둑질을 시켜, 결국 가게 주인이 견디다 못해 가게를 팔아버린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장사를 하려면 그런 놈들과 잘 사귀어 친하게 지내고, 오히려 그놈들의 친구들이 가게를 건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낫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도대체 이곳 경찰은 누구 편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의 인권은 보호해 주고, 열심히 장사하는 사람들의 권리는 정작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서 알고 있던, 범죄자를 잡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사명감 넘친 경찰의 이미지와는 너무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사실, 이곳에서의 경찰은 하나의 직업일 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우선순위는 자신의 안전이고,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후, 범죄자를 잡기 위해 일한다.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맨 먼저 본부에 보고하고, 주위의 경찰들을 모두 모아 활동을 시작한다. 여기 시스템이 그렇다. 일단, 최대인력을 공급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차례로 복귀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인원이 현장을 정리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접수되면, 근처에 있는 소방차와 구급차와 경찰차가 현장으로 모두 달려간다. 사고지점을 중심으로 최대한 넓게 도로를 막아 교통을 통제하고, 상황이 심각하지 않으면, 구급차가 제일 먼저 사라지고, 그다음으로 소방차가, 경찰차도 차례대로 한 대씩 사라지며, 마지막 남은 경찰차가 모든 정리를 끝낸 후 사라진다.
캐나다는 총기사고가 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이 정말 몸을 많이 사린다. 이곳 경찰은 남녀 할 것 없이 덩치가 정말 좋아, 일단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안전을 가장 먼저 확보한 상태에서만 경찰업무를 수행한다. 그들에게 경찰은 하나의 직업일 뿐이며, 경찰이라고 해서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 자체가 위험하니까, 오히려 더 많은 보호장치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위험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한 업무환경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도록 강요받는 것도 일종의 인권침해라는 생각이 든다. 경찰도 스스로의 안전을 보호받아야 할 또 하나의 시민일 뿐이다. 근무시간이나 시스템이, 경찰의 안전을 보호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다른 사람의 안전을 보호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모순이다. 이곳에서 경찰은 절대 위험한 직업이 아니다. 그저 시에 소속된 수많은 공무원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20년만 근무하면 은퇴 후 평생연금이 보장된 정말 좋은, 그러나 조금은 지루한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