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물 도난 사건
내가 사는 동네의 우편함들은 공동우편함의 형태로 골목 입구에 서 있다. 똑같이 생긴 우편함마다 각 집의 주소가 적혀있다. 그래서, 2-3일에 한 번씩 골목입구로 일부러 걸어 나가, 내 주소가 적힌 우편함에서 우편물이나 소포등을 꺼내온다. 주로 광고전단지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공문서가 배달되는 경우도 있어,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날도 평소처럼 공동우편함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수십 개가 넘는 우편함들 중에 유독 맨 가장자리에 있는 3개의 우편함들이 문이 열린 채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우편함을 살펴보니 우편함의 안쪽 문고리가 뜯겨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고, 우편함 내부가 텅 비어있었다. 누군가 지렛대 같은 것으로 우편함 문을 억지로 뜯고 안에 있던 우편물을 가져간 것이다. 수십 개의 우편함들 중 맨 왼쪽부터 차례로 3개만 뜯겨있었는데, 3번째로 뜯긴 우편함이 공교롭게도 나의 우편함이었다. 텅 빈 우편함을 바라보며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우편함이 뜯긴 나머지 집들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들도 내 말을 확인하기 위해 우편함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우체국에 전화를 걸어 우편함들이 뜯긴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편함의 위치와 뜯긴 상태를 자세히 알려주었더니, 일단 내 주소로 오는 우편물 배달을 일시적으로 중단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낮 시간에 우체국 직원이 직접 집으로 찾아왔다. 내 주소와 이름을 확인하고, 우편함을 고쳤다고 알려주며 새 우편함 열쇠를 주고 갔다. 새 열쇠를 가지고 우편함에 가보니, 손상된 모든 우편함 문이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편함의 피해상황과 후속조치에 대한 안내문이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경찰에 이 사건을 신고 접수했으며,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다음 날부터 우편물이 다시 배달되었다. 그런데, 며칠 후 동네 산책을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옆 동네의 우편함도 똑같은 일을 당한 것이다. 우리 동네는 우리 골목의 공동우편함만 파손되었지만, 옆 동네는 골목마다 최소 15개부터 25개 이상의 우편함이 손상되고, 그 안의 우편물이 똑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일이 거의 비슷한 날짜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우리의 것과 비슷한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그런 사건이 있은 후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어느 날, 우리 골목의 우편함이 뜯기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번에는 우리 집을 포함해서 모두 12개의 우편함이 뜯겼고, 우편함 안은 지난번과 똑같이 텅 비어있었다. 한 달 간격으로 같은 일이 일어나자, 나는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지난번처럼 우체국에 신고하고, 새 우편함 열쇠가 오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마침 내가 집에 없을 때, 우체국 직원이 와서, 새 우편함 열쇠를 찾아갈 수 있는 곳을 적은 스티커를 집 현관문에 붙여놓고 갔다. 그 스티커와 내 아이디를 가지고, 새 열쇠를 찾아와서 내 우편함을 열어보니 이미 우편물이 와 있었다. 그리고, 지난번과 동일한 안내문이 지난번과 동일한 위치에 붙어있었다. 옆 집 사람은 이번 일로 화가 몹시 나서 시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조치는 없다. 범인을 잡았다는 소식도 없고, 우편함 근처에 cctv를 설치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속하게 우편함을 고치는 조치를 해 주었기에, 급하고 중요한 우편물을 받지 못하는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을 우편배달부를 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런 사고가 종종 생긴다고 한다. 그 이후로, 나는 매일 한 번씩 내 우편함이 멀쩡한지 가서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반드시 받아야 하는 중요한 우편물이 있는 경우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우편함이 괜찮은지 꼭 확인한다. 그런 나의 관심 때문인지, 마지막 사건이 있은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우리 동네 공동우편함은 멀쩡하다. 그리고, 계속 멀쩡하길 나는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