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동안 동네 돌고 오기
오랜만에 집 밖을 나섰다. 집돌이인 나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내고, 볼 일이 있는 경우에만 잠깐 밖을 나가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대한 많은 일을 처리한다. 적어도 서너 가지의 일을 모아 한 번의 외출을 통해 해결한다. 나는 집안에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집안에만 있으면 커다란 단점이 있다. 활동량이 줄어들어 몸이 자꾸 굳어진다. 그리고, 왠지 머리도 무겁다. 그래서, 그럴때마다 한 번씩 집 밖으로 나선다. 오늘은 반 팔 옷차림에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에 집 밖을 나서니, 바깥 바람이 예상보다 차갑다. 그래서, 일부러 따뜻한 햇볕이 비추는 쪽으로만 걸었다. 그렇게 오분정도 걸으니, 몸이 더 이상 춥지 않다. 씩씩한 걸음으로 우리 집에서 가장 먼 공원을 향해 걷는다.
이렇게 이십 분동안 쉬지 않고 걸으면, 동네 끝에 있는 제법 큰 공원에 도착한다. 그 공원 옆에 커다란 숲이 있어 공기가 상쾌하고, 주위에 집들이 많이 없어 꽤나 한적한 느낌의 공원이다. 아울러, 공원 전체가 약간의 높낮이가 있어 걷는 재미가 있고, 가운데가 뻥 뚫려있어 갑갑하지 않다. 그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몇 번이고 걸었다. 따뜻한 햇살과 공원을 둘러싼 빽빽한 나무들, 그리고 무엇보다 한적한 분위기 때문에, 같은 코스를 걷고 또 걸어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산책로 구석엔 시에서 나온 트럭 한 대가 서 있고, 시 직원으로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이 톱을 들고 공원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앞선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자르면,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트럭에 싣는다. 더운 날씨라 그런지 모두들 느릿느릿 움직인다. 그리고, 공원 구석의 테니스장에는 한 가족이 놀러 와, 아빠가 두 딸에게 테니스를 가르친다. 아이들이 아빠가 쳐주는 공을 쫓아 이리저리 뛰뚱거리며 뛰어다닌다. 몸에 비해 커 보이는 테니스체를 들고 서로 경쟁하듯 이리저리 열심히 휘두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성당을 보았다. 매일 낮 12시가 되면, 이 성당 꼭대기에 매달린 종이 댕댕 소리를 내며 은은하게 울린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라도 고개 숙여 기도를 해야 할 것 같은 경건한 마음이 든다. 내가 사는 동네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이런 커다란 성당이 있고, 가톨릭 학교들도 아주 많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집 앞에 마리아 상을 떡하니 세워두기도 한다. 조금 더 걸으니, 길 옆 작은 공원들을 향해, 유모차를 끌고 길은 건너는 엄마들의 모습도 보이고, 이런 더운 날씨에 집 밖에 나와 자신의 앞뜰 잔디를 깎는 사람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내 주위의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고, 내 몸에서 어느새 땀이 나기 시작한다.
집에 거의 도착하니, 걷는 것이 더 이상 힘들지 않고 굳었던 몸도 적당히 풀어졌다. 집 안이 오히려 밖보다 더 덥다. 얼른 가벼운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나의 피난처인 지하실로 재빨리 내려간다. 이곳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지하실 소파에 앉으니, 차가운 냉기에 몸과 마음이 정말 시원하다. 간만의 외출이 조금 힘들어도, 역시 무더운 여름엔 자주 밖으로 나가야한다. 이곳에서 일 년 중 이렇게 밝고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짧다. 일 년의 절반이 겨울인 캐나다에서, 눈부신 태양과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란, 기껏해야 두세 달뿐이다.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이 나오는 집 안에만 있으면, 여름의 하늘이 얼마나 밝고 맑은지, 주변의 나무들이 그동안 얼마나 무성하게 자랐는지, 이 뜨거운 여름을 주변 이웃들은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고 지나친다. 한 편의 영화나 한 권의 책 보다, 집 밖에서 만나는 모든 자연들과 사람들이 내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내가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지금 이 순간, 좋고 아름다운 것들이 여전히 내 주변에 많이 남아있음을, 그것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동안 잊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