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는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

그동안의 백수 라이프

by 숲속다리

공장에서 잘리고 백수로 지낸 지 벌써 9개월이다. 작년 11월에 잘렸다. 잘리기 전까지 계약기간이 여러 번 계속 연장되어 마침내 정규직의 희망이 보이던 순간, 갑자기 휘몰아친 인원감축 바람에, 결국 정규직이 무산되고 백수의 삶이 시작되었다.


실직 후 2개월 동안 내가 실직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아침마다 출근시간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맘 편하게 잠시 쉬어가자는 생각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사이를 매일 왔다 갔다 했다. 일단, 일을 안 하니 그동안의 노동으로 쇠약해진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지쳤던 내 몸이 매일 조금씩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그때가 연말연시 기간이어서,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쁘게 지낼 수 있었고, 한 해의 삶과 함께 그동안의 삶도 한번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짧고 바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실직 3개월째부터 6개월까지의 네 달 동안, 여러 곳에 이력서를 보내고, 연락을 기다리며, 언제든지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며 지냈다. 그리고, 그동안 시간이 없어 못하고 방치했던 일들을 하나씩 찾아 하기 시작했다. 집안에 쌓여있던 잡동사니들을 버리고, 책들도 꺼내 읽고, 영어회화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집안에서 일정시간 동안 운동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종종 외식도 했다. 또한,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좋은 습관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매일 밖에 나가 돈을 버는 대신, 나의 현재와 미래에 도움이 되는 습관을 하나씩 찾아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실직 7개월째부터 미래에 대한 강한 위기감이 스멀스멀 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열심히 살지만, 이런 식의 유익하고 재밌는 삶이 영원할 수 없으며, 결국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고 재취업도 영영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금 돈을 못 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이런 백수의 삶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현실적으로 와닿는 순간, 난 갑자기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일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때에 할 수 있는 지금의 백수 삶에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예전처럼 힘들게 노동하는 삶으로 돌아가기가 이제 정말 싫어졌다. 그냥 지금의 삶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사이에서 점점 무기력해지는 나 자신을 보았다. 실업급여가 끝나기 전, 무슨 일이라도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 지금처럼 축 늘어진 마음과 몸으로, 예전처럼 힘든 공장일을 과연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점점 커졌다. 결국 그동안 그렇게 좋던 백수의 삶이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이젠 하루가 비현실적으로 너무 빨리 지나간다. 어느새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계절이 바뀐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나의 감각이 조금씩 무뎌진다.


기분 좋은 휴식의 느낌으로 시작된 백수의 삶이, 어느새 늘어진 삶에 익숙해지고, 결국 두려움과 무기력으로 가득 찬 삶으로 바뀌었다. 더 늦기 전에 일을 찾아 사회에 복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이 계속 망가질 것 같아 정말 두렵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집 밖을 나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