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절반을 끝내고
퇴근 5분 전, 그동안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주변을 정리한다. 내일 오자마자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사용했던 도구들을 제자리에 챙겨놓고, 일하는 동안 더러워진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다. 그리고, 일이 끝난 시각을 출퇴근 노트에 적은 후, 휴게실에 들어가서 내 도시락가방을 챙기고, 출근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는다. 퇴근 시각을 알리는 부저가 울리면, 휴게실을 걸어 나와, 출퇴근 펀치머신에 내 아이디를 들이댄다. 삐 소리와 함께 Thank you 메시지가 스크린에 뜬다. 동료들과 퇴근 인사를 나누고, 출입구를 향해 걷는다. 일하는 곳은 따뜻하지만, 출입구 쪽은 춥다. 걸어가면서 복도 옆에 쌓인 물건들을 쓱 훑어본다, 이미 마무리가 끝나 포장된 채 배달만을 기다리는 물건들보다, 내 손길을 기다리며 쌓여있는 물건들이 더 많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면서.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확 밀려온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눈이 쌓인 채 얼어있다. 주차장에 서있는 내 자동차는 눈 속에 묻혀 있다. 건물 안에서 일하는 사이에 또 눈이 저렇게 많이 쌓였다. 자동차까지 걸어가는 길은 몹시 춥고 미끄럽다. 시동을 걸고 차 위에 쌓인 눈을 쓸어내린다. 계속 눈이 휘날린다. 올해엔 유난히 눈이 자주 내린다. 아침에 눈이 안 내리면 그날밤에 내리고, 아침에 눈이 내리면 그날밤이 되어야 그친다. 그나마 잠시라도 눈이 그쳐, 쌓인 눈을 치울 수 있으니 다행이다. 하루 종일 혹은 며칠 동안 계속 내린다면, 정말 속수무책이다. 하루 종일 집 안에 갇혀, 눈이 그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교통이 마비되어, 스쿨버스도 운행을 중단하고, 직장도 출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천히 회사건물을 빠져나간다. 아침에 출근했던 길을 그대로 따라, 집으로 향한다. 퇴근은 출근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출근길에 한산했던 도로가, 퇴근길엔 많은 차량들이 몰려 혼잡하다. 퇴근길 코스 중간에 고속도로 진입로가 있어 혼잡이 가중된다. 승용차들과 트럭들이 진입로 쪽으로 한꺼번에 몰려 정말 혼잡하다. 그나마 그 구간만 벗어나면, 비교적 수월하게 집으로 갈 수 있다. 길에 쌓인 눈 때문에 차들이 모두 거북이걸음이다. 나도 덩달아 거북이 운전을 한다. 도로에 눈이 쌓이면, 평소보다 앞차와의 간격을 더 많이 띄우고, 속도도 평소보다 줄여 운전해야 한다. 자칫 미끄러지면 의도치 않은 사고를 낼 수 있으니까. 평소보다 퇴근시간이 늦어도 마음은 가볍다. 출근길은 출근시간 내에 도착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퇴근길은 그런 부담이 없어 마음이 느긋하다.
큰 도로는 그나마 덜하지만, 골목길로 접어들면 살짝 긴장해야 한다. 자동차 바퀴가 눈 밟는 소리와 느낌이 전달될 정도로 눈이 잔뜩 쌓였다. 그래서, 미끄러짐 사고위험이 더 크다. 집에 가까이 오니 집 앞 Driveway에도 눈이 잔뜩 쌓여있다. 차에서 내려, Driveway에서 현관까지에 쌓인 눈을 서둘러 치운다. 그리고, 차로 다시 돌아가 내 짐을 꺼내고, 차문을 잠그고 조금스럽게 현관으로 걸어간다. 열쇠로 문을 차례로 열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집안의 따뜻한 공기가 확 밀려온다. 여기가 천국이다. 몸과 신발에 붙은 눈을 털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거실로 올라선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 일을 끝냈다는 안도감에 긴 한숨을 내뱉는다. 내일 하루만 더 일하면 주말이다. 주말에 쉴 상상만으로도 피곤이 사라진다. 문득, 창밖에 내리는 눈을 쳐다본다. 바람에 휘몰아내리는 눈이 돌연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얼른 씻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