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 법을 배우기
아내가 한국방문을 갔다. 그래서, 하루만 내가 아내가 일하는 세탁소에서 아내 대신 일을 했다. 가게 문을 열고 한 시간도 안되었는데, 가게 옆을 지나던 김 씨 아저씨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게로 들어오는 김 씨 아저씨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아휴! 하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김 씨 아저씨는 은퇴 한지 10년 정도 된 70대 노인인데, 대충 알고 지내는 분이다. 아내가 일하는 가게가 마침 이분 동네에 있다 보니, 어느 날 자신의 산책코스에서 우연히 가게 안에서 일하는 아내를 발견한 뒤, 매번 산책 나올 때마다 들르곤 한다. 우리 부부 둘 다 그분과 안면이 있어, 나도 아내 가게에 있던 그분과 몇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이 처음 가게에 들렀을 때 아내가 반가움에 기쁘게 인사하고, 그동안의 안부를 서로 나눈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 이후, 동네 산책을 나올 때마다 가게를 들러,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30분이 넘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가벼운 안부인사에서 시작해, 날씨 얘기, 예전에 자신이 한국에서 살던 얘기, 동네 산책하며 보고 들은 소식, 최근에 들은 한국소식, 캐나다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겪은 일을 떠들어댄다. 그때마다 아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맞장구를 치며 얘기를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나이 지긋하신 분이 카운터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서 아내 쪽을 향해 계속 말하는데, 예의 없이 못 들은 척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이 올 때마다 아무리 바빠도 하던 일을 멈추고, 관심도 없는 얘기를 계속 들어야 했다. 자신이 말을 하다가, 듣는 사람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자신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계속 물어보고, 할 수 없이 형식적으로나마 대답을 하면, 그 반응을 미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언젠가부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반응하면, 아무리 둔해도 그분이 스스로 눈치를 챌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예전만큼 상대방의 대답이 신통치 않자,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의 말에 대한 신빙성을 의심한다고 느꼈는지, 자신의 말이 근거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말까지 덧붙여 더 많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반대로 적당히 대꾸를 해주었더니, 상대방이 자신의 말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고, 평소보다 말을 더욱더 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분을 쫓아낼 적당한 방법이 없어, 그분이 수다를 그치고 가게를 나가는 유일한 방법인, 최대한 빨리 가게에 손님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나마 가게 안에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면, 자신이 하던 말을 그치고 황급히 인사하고 가게를 나갔기 때문이다.
최근 계속 날씨가 추워 한동안 보이지 않던 그분이, 오늘 잠깐 날씨가 풀리자 오랜만에 산책을 나왔는지 가게에 들른 것이다. 아내는 없고 나만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분이 아내의 소식을 묻기에 한국방문을 갔다고 하니, 갑자기 신이 났는지 자신이 유튜브에서 본 한국에 대한 지식을 한바탕 쏟아놓기 시작했다. 오늘은 얼마나 신이 났는지, 손님이 들어와도 안 돌아가고, 손님이 나가자마자 자신이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이미 수십 번도 더 들은 똑같은 그분의 레퍼토리를 들으며, 한편으론 이 상황이 지겹고 한편으론 그분이 가엾게 느껴졌다. 얼마나 말을 하고 싶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과 아무리 그래도 남의 영업장에 와서 이러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이 교차했고, 마침내 나는 늙어도 저러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는다는 사실자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겠지만, 그래도 곱게 늙으려면 스스로 계속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창피하게 늙지는 말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