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패밀리 비즈니스

by 숲속다리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첫날, 내게 먼저 다가와 자신의 이름을 말한 사람이 있었다. 줄리아라는 나이가 70대 정도의 자그마한 이탈리아 아줌마였다. 이곳 직원들은 대부분 20대 아가씨들인데, 혼자만 나이가 유독 많았다. 그녀는 구석의자에 앉아, 느릿느릿 빨래를 개곤 했다. 그렇게 두세 시간 정도 일하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인사하고 먼저 퇴근했다. 뭔 일이 있어 일찍 조퇴하나 보다,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그 뒤로 삼사일정도 회사에서 안보이더니, 어느 날 출근시각도 한참 지난 때에 갑자기 나타나, 일하는 사랍모두에게 반갑게 아침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하던 사람들도 모두 줄리아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내 생각에 줄리아는 지금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전에 이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나이 들어 퇴직한 후, 근처 지나가는 길에 가끔씩 들리나 보다 생각했다. 이 회사에 일하는 동안, 함께 일하던 직장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반갑게 맞이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려, 두세 시간 정도 일을 도와주고 가곤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자주 온다는 생각이 들어, 친해진 동료직원에게 넌지시 줄리아에 대해 물어봤다. 그랬더니, 줄리아는 이 회사 사장의 시어머니였다. 원래 이 회사가 줄리아가 세운 회사인데, 은퇴 후에 아들에게 물려주었고, 현재 며느리가 이 회사의 사장이었다. 하지만, 며느리도 여러 가지 일로 바빠, 이 회사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잠깐 방문할 뿐이고, 실제 이 회사의 모든 경영은 매니저를 고용해 운용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자, 그녀가 어떻게 매니저와 직원들에게 스스럼없이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왜 모두 군소리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한편으론 엄연히 매니저가 있는데, 사장 가족이 회사에 드나들면서 직접 직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월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온 지 얼마 안 된 내가 섣불리 판단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난 열심히 옷을 다리고 있는데, 어느새 줄리아가 나타나 직원들에게 일일이 아침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줄리아에게 굿모닝 하고 아침인사를 했는데, 나를 보더니 갑자기 내쪽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바지를 다리고 있었는데, 그녀가 말없이 내 앞으로 쓱 끼어들더니, 그때까지 내가 다리던 바지를 잡아채고, 나에게 바지 다리는 법을 몸소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바로 내 프레스머신으로 바지를 다리기 시작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줄리아의 돌발행동에, 순간 난 무척 당황하고 황당했다. 나는 그저 줄리아의 등뒤에서 팔짱을 낀 채, 이게 뭐지? 하는 생각만을 하며 가만히 서있었다. 마치 식당 주방장이 요리를 만들고 있는데, 돌연 식당사장의 가족이 주방으로 들어와,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주방장이 사용하던 요리도구를 낡아 채 요리를 막 만드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무척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저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화를 내야 하나? 웃어넘겨야 하나?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있어야 하나?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줄리아의 바지 프레스가 끝날 때까지 그저 기다렸다. 그리고, 줄리아가 건네준 그다지 잘 다리지 않은 바지를 받아 든 채, 총총히 사라지는 줄리아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줄리아의 이런 행동을 내 주위에 있던 다른 누군가도 봤겠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다른 직원들에게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일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이전까지 이런 식의 일을 한 번도 당한 적 없던 나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이 일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일단 한 번은 넘어가자였다. 다음번에 똑같은 일이 되풀이된다면, 그때엔 매니저에게 말하고 매니저의 반응을 살펴봐야겠지만. 어쨌든, 오늘도 줄리아는 회사에 나와 빨래 개는 일을 한다. 이탈리아 말로 옆사람과 시끄럽게 떠든다. 그런 줄리아에게, 나는 오늘도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줄리아가 그날 내게 가르쳐준(?) 방식으로 보란 듯이 바지를 다린다. 하지만, 줄리아가 사라지면, 나는 내 방식대로 바지를 다릴 것이다. 아마도, 다른 직원들도 지금의 나처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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