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의 대가

워라밸의 배신

by 숲속다리

워라밸을 위해 캐나다 이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을 덜 하고 돈을 덜 벌어도, 자신과 가족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정시퇴근 이후의 자유시간을 보장된 사회를 원하지만, 그렇지 못한 한국을 떠나 그런 삶을 보장하는 나라로의 이민을 선택한다. 하지만, 현지인은 몰라도 이민자에게 워라밸은 실현불가능한 꿈이다.


첫째, 워라밸을 누리며 생활비 감당가능한 직업을 얻기가 이민자에겐 힘들다. 캐나다는 기본 생활비가 한국보다 월등히 비싸다. 그런 생활비를 감당하려면, 한국보다 더 고소득 직업에서 일해야 한다. 그런 고소득 직업은 이곳 현지인과 경쟁해야 한다. 만약, 캐나다에서 필요하지만, 캐나다에 없는 그런 종류의 직업과 기술을 자신이 가졌다면, 이곳에서도 고소득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매년 캐나다로 계속 밀려들어오는 수많은 다른 이민자들과 경쟁해, 더 낮은 임금과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한다. 만약, 최저임금을 받는 일을 하며, 나머지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할 충분한 돈이나 다른 루트가 있다면, 물론 워라밸이 가능하다.


둘째, 다행히 고소득 직업을 얻었다면, 잠시동안 워라밸을 누릴 수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자신의 처지가 직장동료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같이 일하는 동료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현지인이므로, 영어뿐만 아니라 캐나다 문화에 당연히 익숙하다. 그래서, 다니는 직장에서 그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퇴근 후에도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첫 직장에서 잘리면, 다른 직장으로 쉽게 옮겨갈 수 없다. 이곳에서의 이직은 실력보다 인맥을 통해 이루어진다. 누군가 추천하거나 소개해 주지 않으면,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는 것이 힘들다. 이민자는 이곳에서 태어나 살지 않았고, 이곳 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았기에, 주변에 이렇다 할 인맥이 없다. 직장은 당신의 기술과 능력을 충분히 이용한 후,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거나 대체방법이 생긴다면 어느 날 갑자기 해고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런 당신에게 퇴근 후 워라밸 따위는 사치일 뿐이다


셋째, 당신의 자녀가 이곳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고 졸업하고 직업을 얻고 결혼을 하는 그 긴 시간 동안, 당신이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줘야 한다. 이곳 이민자 자녀들의 삶도 결코 녹녹지 않다. 그들도 낯선 캐나다에서 적응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갈등의 시간을 가진다. 이민 1세대는 캐나다에서 자란 경험과 지식이 없기에, 자녀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없다. 자신의 자녀들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 방황만 하지 않고 자라주길 기원할 뿐이다. 그런 과정이 2,3세대가 지난 후에야 제대로 캐나다에 정착하고, 비로소 워라밸을 가진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민 1세대는 캐나다에서 워라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모른다. 내가 부모님과 조부모세대의 고생과 도움으로 한국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이민 1세대가 내 부모님과 조부모 세대의 삶을 이곳에서 살아야, 나의 자녀들이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정도의 삶을,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캐나다 이민을 온다면, 워라밸은 내 세대가 아니라, 내 자녀와 손주세대의 몫이다. 이곳에서 나는 자녀와 손주들을 위해 몸을 갈아 비료가 되는 긴 인내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자녀들이 이곳 현지인들과 어떻게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자녀들이 이곳에서 뿌리내리고 제대로 자랄 수 있는 토양의 역할을 하기에도 나의 시간이 모자라는데, 워라밸 따윈 꿈도 꾸지 마라. 또한, 내가 이렇게 고생해도, 나의 자녀가 반드시 캐나다에 제대로 정착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시작해야 하고, 내가 맨 앞에서 바람과 눈과 비를 맞으며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뒤에 있는 사람들이 그나마 덜 고생하고 덜 힘들게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힘들 때 적절한 위로와 격려를 받지 못해도, 매일 아침 일어나 묵묵히 일터로 나갈 자신이 있다면, 고생문이 활짝 열린 이곳으로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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