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일기
뜻밖이다.
2016년 4월 말일자로 25년간 근무한 우체국을 퇴직하고 아직은 일 할 나이이기에, 또한 생활을 해야 하기에 곧바로 농자재 가공 공장을 2020년 6월 26일까지 다녔다.
스스로는 힘쓰고 몸을 움직여야 하는 힘든 공장 생활을 잘 참아냈고, 근무하며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갖게 되어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마음속에 사직서 한 장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듯 나 또한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내부의 우체국은 그칠 줄 모르는 목표 사업과 수시로 발생하는 민원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직장이었고 내가 근무한 곳은 운영과 인사가 특별한 태생적 한계를 지녔었다. 그런 우체국이지만 직장으로서 나의 인생과 가정을 잘 건사하고 유지하게 해 주었다. 나는 퇴직에 대하여 예고된 시간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준비 없이 맞이하였다. 당시의 마음으로선 오십 중반의 젊은 나이에 입에 딱 맞는 직장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일자리'가 있을 줄 알았다. 퇴직과 동시에 구직활동도 열심히 하였으나 수십 번의 이력서 제출과 응시 회사의 무응답, 탈락은 '사람값'이라는 현실을 곧바로 깨닫게 하였다.
공장 생활은 해보지 않았던 육체노동을 필요로 했다. 손바닥 피부는 수시로 벗겨지고 좁은 공장을 쉬지 않고 매일 일하며 걷고 또 걸으며 군에서 해보지도 못한 100킬로미터 행군을 하게 되었다. 체력으로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두 달여만에 퇴직을 얘기하니 사장은 후임자 가 구해지는 말일자로 퇴직 처리를 해 주겠노라 한다. 채용도 쉽고 퇴직도 쉬운데 새로운 직장이 나를 위해 '어서 오십시오' 하질 않을 것은 뻔했다. 괜히 어정쩡한 사람이 되지 말고 마음을 다잡아 다시 일하겠노라 하여 입사한 직장에서 공백 없이 다시 근무하게 되었다. 일도 계속하게 되면 요령이 생기고 힘이 는다고 하는데 힘의 문제는 나에게 전혀 그렇지가 않다. 과부하로 허리 인대는 수시로 늘어고 어깨와 팔은 통증을 달고 다녀야 했다. 이런 통증은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직장동료들이 다 가지고 있었으며 직장인이라면 직업병으로 발전하여 한 두 가지의 만성 질병이 된다. 나는 지구가 돌아가는 이유는 '스스로 돌아감'이 아니라 '목숨들의 활동이 지구를 돌게 하는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언제까지 이 일을 하게 될 수 있을까? 무슨 일을 하며 내일을 살아갈까? 말은 안 하지만 원초적인 질문은 머리에서 지우질 못하고 살아가는 게 사람이지 않을까? 고달픔으로 잊었던 고민을 끌어안고 지내는 생활에 언론에서 전국의 우체국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다소 과격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우정사업이 적자'라는 말은 우체국 생활 시작부터 들었고 근무기간 내내 생존의 일환으로 목표사업은 해마다 강화되어 직원들을 긴장하게 하고 시골 우체국은 반일 근무체제로 변경하거나 실제 수지가 맞지 않는 우체국 폐국 소식은 들었던 터라 오랜 시차를 두고 시행하는 사업계획이겠거니 여겼다.
화창한 금년 5월 초, 전에 같이 근무하던 상사로부터 내가 퇴직한 우체국의 폐국 소식과 우편 취급국으로 전환하여 새로이 문을 열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도시 우체국인데 그럴 리가? 부랴부랴 같은 처지에 있던 동료들에게 안부를 물어보니 다행스럽게 별다른 일은 없었다. 며칠 후 관심을 가지고 우정사업본부 누리집을 들어가 보니 내가 근무하고 퇴직했던 우체국의 폐국 공고와 우편취급국 수탁 공고를 보게 되었다. 서운하다. 이름은 모르나 자주 오가던 주민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16년간 근무했던 곳, 우정사업본부의 세세한 경영수지 산출 방식은 모르지만 영업실적이 나쁜 곳이 아니었고 그래서 폐국 소식은 의아스럽고 서운하고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런 감정이 솟구쳐 무작정 수탁 지정 신청서를 넣었다. 서운하고 고마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며 다른 경쟁자들과의 자격심사를 거쳐 예상치 못하게 내가 우편취급국 수탁자로 선정되어 2020. 7.13일부터 다시 우체국 일을 하게 되었다. 불과 며칠 만에 전광석화처럼 어제까지도 알 수 없었던 일이 오늘 내게 일어났으니 내 인생도 내가 알 수 없다.
뜻밖이다!
일을 하게 되면서 4년간의 단절은 어설픈 시작이었으나 다행히 25년의 경험은 몸이어서 순간순간 머리보다 빠르게 회복하여 곧바로 업무가 정상화되었다. 다만 우체국 환경은 확실히 변해있었다. '편지'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던 군대 간 아들에게, 남자 친구에게 보내는 우편물이 없어졌고 코로나 19 상황이 그렇겠지만 시집 장가간다는 청첩장은 단 한번 5통만 접수하여 보내졌다.
우체국 일기를 시작하며 이런저런 이야기와 생활에서 사라진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