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이야기 3

'빠마' 이야기

by 김규성


“머리카락을 내 피부에 직접 느껴 보기 위해, 그 속에 입술을 대 보고, 키스를 하고, 깨물어 보기 위해 머리카락과 함께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얼굴에 감아 보고, 향기를 마셔 보고, 머리카락을 통해서 비치는 황금빛 햇빛을 보기 위해 내 눈을 머리카락의 황금빛 물결 속에 담갔다. 아! 나는 머리카락을 사랑했다! 그렇다, 사랑했다. 머리카락 없이 살 수 없었고, 그것을 보지 않고는 한 시간도 견딜 수 없었다. “ 부유한 재산을 지닌 남자가 골동 가구에 감춰진 비밀 서랍에서 나온 낯선 여인의 머리카락에서 사랑을 느끼고 애무하다 관능적인 착란을 일으켜 정신병원의 신세를 지는 모파상 소설 『머리카락』의 일부다.


굳이 문학 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남자들 중에는 여성의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보고 첫눈에 반하여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머리카락은 신체의 일부이나 감각이 없다. 분명히 자라나는 산 것이고 잘라낼 때 고통이 없는 것을 보면 죽은 것 같기도 하다. 머리카락은 사랑의 유발자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주체할 수 없는 고민거리다. 경우에 따라 만나는 머리카락의 심리는 여간 복잡한가? 세속을 떠나는 연인이 깎아 놓은 머리카락, 전쟁에서 산화한 남편의 한 줌 머리카락. 밥 속에 나온 머리카락. 생각나는 대로 적어 놓아도 감정과 의미가 복잡하니 가히 머리카락은 문학하는 이들의 훌륭한 소재거리가 된다.


딸이 빠마하러 나간다. 밋밋하게 흘러내리는 머릿결에 곱슬거림을 주어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이유다.

민 머릿결은 곱슬거리게, 곱슬머리는 곧게 펴는 기술이 빠마다.

타고난 자연스러움에 대한 식상함을 거부하는 행위는 예술로 보자면 일종의 거스름이고 도발이며 반항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이발비 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돈 들여 추구하는 예술품 ‘빠마’를 공부해 봤다.

기원은 고대 이집트 로마인들이 막대기에 머리카락을 말아 햇볕에 말려 웨이브를 만들었다 하고 더 알 수 없는 시간에선 인간이 어느 날 나뭇가지에 머리를 말았다가 풀어보니 곱실거리는 현상을 발견하며 이후 반복된 행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장 기초적인 자르고 묶고 꼬는 손기술 미용 방식이 인류는 1870년에 들어서야 열에 의한 머리 연출을 하게 되었다 한다.

현재 미용기구는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여성이 있는 집이라면 가정에 미용 매직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서 간단한 머리 손질은 본인 스스로 해결한다. 이 매직기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용실에선 연탄구멍에 꽂아 달구어 쓰는 ’ 고데기‘라는 미용기구다. ’ 펌‘이라 불리는 파마(permanent)는 영구적이다라는 말뜻이다. 이른바 화학약품을 바르고 열을 가하는 머릿결 연출 방식인 ’ 열 파마‘는 1905년 독일인 네슬러에 의해 연구 개발되었다니 현대 미용기술은 불과 100년의 역사이기도 하다. 100년의 역사는 그야말로 뻥튀기 기계라도 들어갔다 나왔는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미용의 분야도 세분화 전문화의 길로 가고 있다.


아름다움은 고통이 따른다. 아름다움을 쫓는 여성들에게 고통이 있었다. 고데기로 이용한 머리는 자고 일어나면 원래의 자연 상태로 되어 항구적 이질 못했다. 우리나라의 ’ 빠마‘ 효시는 대략 1900년대 초기로 잡는다. 빠마를 하려면 경제력도 있어야 하거니와 여간한 용기가 없으면 하질 못했다. 그 시절엔 머리에 알칼리 용액을 바르고 열을 가하여 일정한 형태로 고착시키려면 전기가 필요했다. 빠마를 하려면 세련되지 못하게 ’웅웅‘거리는 전기 부하 소리와 전자파를 몇 시간 동안 감내해야 했고 그마저 잘못하면 발열기에 피부를 데고 머리카락은 타서 푸석해지는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전력이 부족한 때라 툭하면 전기가 나가 완벽한 빠마 머리를 하려면 하늘이 돕고 시간이 돕고 우주가 도와야 할 만큼 변수가 많았다. 궁여책으로 가봉(카본) 빠마가 등장했는데 이는 둥근 막대 모양의 은박 미용 기구에 새끼손가락만 한 숯을 넣고 끝에 불을 붙여 머리카락에 열을 가하는 빠마였다. 머리에 불을 지핀 격이니 취급하다 불통이 떨어져 옷에 구멍을 내기 일쑤고 머리카락은 많게든 적게든 불이 탔으며 피부에 화상을 입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다.


이렇게 머리카락에 정성을 들여 완성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것일까? 자신은 완벽하지 못하다는 자각이 인간 누구나에게 있다. 부족함을 채우려는 본능은 적어도 자신만큼은 행복하고 싶다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머리카락은 아픔 없이 자라나고 신체를 이용한 아름다움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묶고 꼼에도 고통이 없으니 아름다움의 도구가 될 만하다. 잘린 머리카락은 섬뜩함이 있다. 소설 속의 남자는 잘린 머리카락의 관능에 이끌려 정신병원 신세를 졌다.


아무리 거추장스럽다 여긴다 해도 머리에서 자라는 머리카락이어야 신이 모셔지고 영혼이 있고 사랑이 햇살에 피어난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고민이 생긴다.


예술의 출발점이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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