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값

편리한 디지털 생활? 아니다.

by 김규성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 걸쳐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낯선 과학 용어가 시대를 꿰었고 90년대부터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 보고 만지며 경험할 수 있는 물체로 컴퓨터와 온라인이라는 도구가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컴퓨터와 온라인이라는 통신망이 없으면 세상이 멈춰 버리는 시대가 되었고 로봇을 넘어 빅데이터 산업과 딥러닝과 같은 지능형 AI가 산업화되며 인간 중심의 편리성을 무한대라 할 만큼 극대화시켜 놓고 있다. 학교에서 공부하길 초침과 분침이 돌아가는 시계 형태가 아날로그이며, 엘리베이터의 층간 멈춤 개념이 디지털로 비교 설명된 지 3,40년 만에 디지털 기반은 인간 생활 그 자체가 되었다.


사람 채용 관계로 온라인 구직사이트에 구인 광고를 실었다. 단 사흘 만에 40여 명의 구직자들이 등록하여 적잖이 놀랐다. 취업의 어려움은 익히 알고 있어서 예상은 하였으나 컴퓨터 화면을 오르내리다가 사람을 놓고 쉽사리 넘겨보는 내 행위가 경박하고 편리함이라는 환경에 너무 익숙해져 있음에 놀랐다. 컴퓨터는 사람을 '목록'으로 정렬시켜 놓았고 목록을 펼쳐보고 닫음에 내 주변은 깔끔했다. 구직자 목록은 필요시 내가 다시 펼쳐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내가 한 행위가 상대에게 노출되지 않는 익명성으로 마음의 부담은 적었다. 표현이 노출방식은 철저히 분리 단절된 일종의 디지털화였고 생활에서 이용은 아날로그화 된 일상이었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누가 이력서 붙이러 우체국에 가고 수많은 사람들을 면접장으로 불러들이냐는 말을 한다. 옳은 말이다. 좋고 나쁜 양면성을 두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편리한 기회를 제공'함에 없어진 사람들은 누구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이 편리를 제공하는 주체가 갈수록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자본이 거의 독점하거나 사업의 불확실성이 걷히고 안정화된 후에는 그 위치가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위치가 공고화 된다는 점에서 권한은 남용되고 자본 증식의 수단으로 전락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예전에는 짜장면집을 하려면 배달원이 있었다. 치킨집을 하더라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달원을 두느냐 사장이 직접 하느냐는 차이는 있어도 고용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지금은 어떤가? 플랫폼 산업이라 해서 고용 없는 산업이 확장 확대되고 정부에서도 권장하는 4차 산업의 한 갈래가 되었다. 플랫폼이라는 전환대는 온라인으로 구축되어 마음만 먹으면 직종에 뛰어들 수 있고 해고 면직 또한 쉽게 이루어진다. 고용은 없으며 기본적인 영업 자본도 일하고자 하는 이가 전적으로 부담한다. 배달 오토바이는 보험료니 기름값 수리비등의 운영비는 물론이고 일하고자 하는 시간도 본인 선택 사항이고 돈벌이를 위한 노동의 강약도 본인이 결정한다. 업주 입장에서 사업의 영역은 온라인 주문이라 지역 한계 없이 넓고 현지 거주인의 용역을 쓰니 무한한 시장성이 있다. 어찌 보면 짜장면집이나 치킨집 입장에서도 고용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고 직분에 충실하니 좋은 점이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약간의 배달료만 지불하면 편하게 원하는 장소에서 배달을 받아보니 삼자 모두에게 혜택이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려다 불발이 된 우버 형 택시' 타다'의 운영 방식이 '나눔'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한 무고용 택시사업이고 골목 배달을 사업화한 '라이더 산업'은 디지털이 생산한 복덕방 사업이다. 이런 사업의 속성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빌미로 알뜰하게 수수료만 챙기고 공장 없는 회사로 몸값을 한 껏 올린 후 투기자본에게 사업권을 팔아먹고 수많은 종사자들은 나 몰라라 하고 튀었다. 디지털 깡패들이다. 이 깡패들에게 가술 없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생활이 절박하여 너무 쉽게 예속되고 미래가 없는 현실 속에 몸을 혹사시킨다.


인류가 발전시킨 산업화는 농부와 농지를 줄이고 사람을 써서 작업장이 돌아가던 1차 2차 산업은 자동화로 많은 사람들을 산업현장에서 배제시켰다. 금융이나 판매를 하는 서비스 산업 또한 디지털 자동화로 많은 인력이 필요 없어졌다. 설계와 예측조차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넘어가면서 가히 사람은 한번 쓰고 버리는 소모 부품으로 전락했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생활의 편리를 찾았으므로 원인제공자이자 필요 없는 잉여인력이 된 것이다. 이 편리는 무한 욕심으로 자원을 황폐화시켰고 편리하게 이용한 도구들은 불멸의 쓰레기로 지구의 환경을 바꿔 놓았다. 오로지 투기와 투자가 전부인 양 삶의 형태가 한 방향으로 쏠려있다. 나 이외의 존재는 나의 생존에 필요한 도구일 뿐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는 휘발재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야 하는 미래의 목표를 거두어 한다. 몸을 움직여 힘써 일하기 싫어하는 우리들에게 생각을 바꾸고 생활의 절제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무한의 수라는 바둑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을 이겼고 증권거래에서도 분석과 투자가 승률 100%라고 칭찬한다. 이 무패의 칭찬은 생활에 더 깊이 침투하여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 과학영화에서 보아온 프로그램을 머리에 이식받고 본연의 생체 한계를 뛰어넘은 능력의 인간이거나 단순 조립 수준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생활하는 저질 인간들이 득실대는 미래 모습이 결코 멀리 남아 있지 않음을 직감한다. 사람들은 인공지능 경영자 아래에서 단순한 노동자로 전락하는 중이고 생활방식은 투명 유리방에서 먹고 자고 심지어 질병까지 엄격한 통제를 받는 흐름이 진행 중이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편리를 더 요구해야 하나. 사장없는 회사, 누구에게 어떤 목소리로 정당한 사람 값을 요구할 것인가!. 불편한 마음을 풀지 못한 체 나 역시 편리하게 목록화된 인물들을 컴퓨터 화면으로 열고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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