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는 사람

시간이 거꾸로 간다

by 김규성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의 영화 얘기가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 뼈가 내려 앉고 기가 쇠락해 사람의 몸이 작아진다는 의학 소견이 아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갈 수록 편리해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기계에 밀리고 기기에 밀려서 쓸모 없이 사람들이 퇴화 된다는 얘기.


참 오랜 고객이다. 우체국이 지역 금융기관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던 시절이 있었고 근근하나마 예금 적금을 모두 우체국을 애용한 노인이다. 원칙주의가 철저한 은행권 보다는 우체국 직원들은 노인들의 금융업무를 거들어 전표 대필도 하고 지금은 상상할 수 없으나 비밀번호도 외우고 있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홍노인의 금융 업무는 전적으로 직원들에게 맡겨 졌었던 것 같다. 자신의 이름 석자 쓰는 것에서 부터 인출 금액 쓰기, 통장 인감 날인, 패드에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까지.


내가 퇴직하고 난 후 지역 금융권은 큰 소용돌이가 있었다. 시중은행이 2금융권을 포함해서 5개가 있었는데 현재는 농협 하나만 남아 있고 은행은 ATM기만 남겨 놓고 모두 철시했다. 우체국도 폐국을 하면서 내 사업장에 ATM기 1대를 남겨 놓았다. 홍노인은 ATM기를 이용할 줄 몰라 매번 아무한테나 통장정리 해달라, 왜 안되는 거냐 대신 돈 좀 찾아 달라 하도 부탁을 해서 그러지 말라고 사용 방법을 몇 번이나 일러주었다. 그런데도 아직 자동화기기를 전혀 쓸 줄을 모른다. 그런 막무가내식 행동이 미워서 부탁도 모른채 하며 이젠 알아서 하시라고 핀잔까지 주었다.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을 곧 잘해서 농담인듯 노안의 핑게로 여겼고 다른 노인들도 잘 이용하는데 무슨 이유가 될까 여겼다. 그런데 어느날 퍼득 '아, 저 노인이 글을 모르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 염려는 실제였다. 그전에 내가 금융 업무를 전담해 본 적이 없고 시절도 대필이 널리 해주었던 시절이라 친절한 업무 지원을 했다고만 여겼다. 금융창구가 사라진 지금에서는 홍노인은 ATM기에서 배제된 사람이다. 타인에 의지하고 부탁하는 업무는 지극히 본능적이고 지혜로운 생활이다. 부수적으로 발생하게되는 인력으로 해야할 업무를 보려면 불편하게도 거주지가 아닌 버스나 택시를 타고 이웃한 가야만 한다.


역시 ATM기를 쓰지 못하는 노인이 또 있었다. 입성으로는 배움이 적을 것 같지 않아 보였는데 비밀번호와 다른 실행 번호가 기억나질 않아 기계에 거절당하고 돌아서는 모습에서 자존감이 무너진 듯 매우 힘이 없어 보였다. 기계는 항상 침착하고 명랑하고 또랑또랑 친절하게 안내하고 거절 어투조차 세련되게 말하나 노년의 기억은 퇴화하고 어제의 일이 오늘은 새롭고 버겁게 느껴지는 세월이 되었다. 뒤에 섰던 자동화 기기에 익숙한 젊음은 노년의 어둑한 행동이 굼뜨고 답답하게 보였을 것이다. 똑똑하고 편리한 ATM기는 짜여진 기능에 충실하여 노인의 틀린 청구에 거절이 단호하다. 한번의 기회만 허용하고 상대의 인생이나 이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생활 편의를 쫒아가기 바쁜 세상이다. 나 또한 이런 편리한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못하다. 현대 문명을 대표하는 스마트폰의 사용이 거의 전화 기능만 이용하는 수준이다. 몇년 전에는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려다 표 구입에서 개찰까지 남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바쁜 햄버거 가게의 화면식 주문을 하지 못하여 그냥 나온 때가 있다. 잠시나마 무력감이 들었었다. 스마트 기기 사용이 일상이 된 요즘 환경에 어떤 과정을 거치고 인증을 받아야하는 절차에 화가나서 기피하곤 한다. 그래, 너는 안받아. 쓰는 사람만 받으면 돼. 앞으로 편리할게 잘 쓸 사람은 무궁무진하니까 네 걱정 따위는 필요없어! 서로가 배타적이다.


참 나, 나도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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