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물에 젖은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킬 것인가

궁극의 종교

by 김규성

싯다르타가 인간 고통의 근본 문제를 풀기 위해 고행 길에 들어선 후 고행자들의 수행처로 알려진 우루렐라 마을에서 이제껏 수행한 깨달음보다 더 큰 깨달음을 위해 품은 생각이다. 즉 좋은 음식과 방자한 감각에 길들여진 육체를 물에 젖은 나무로 비유하며 모든 욕망의 근원인 육체를 마른 나뭇가지처럼 만들고 말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더욱 수행에 정진한다.


나보다 불과 몇 개월 전에 개업했을 안경점이 지난 3월 말일자로 문을 닫았다. 개업 떡 받이 차 들렀을 때도 남아있던 실내 목공 나무 내음과 여러 장식재의 냄새를 기억한다. 출근하면서 오늘은 어떤 날이 될까, 내방 고객의 선택에 따라 일희일비하던 감정, 퇴근의 문을 닫으며 떠오르던 생각들이 고스란하게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시작의 설렘과 절박감 그리고 최종 영업일에 홀가분함이거나 어떤 낭패감을 느꼈을지 나는 모른다. 다만 영업일 내내 겪어야 했던 사장의 마음은 지옥 생활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일이 바쁘면 피곤함이 묻혀가고 즐겁고 괴로운 일들이 있는 그대로 묻혀 간다. 그러나 일 없이 덩그런 객장을 보며 홀로 앉아 있는 심정이란 납덩이가 풀밭을 누르고 있는 상태라 숨쉬기도 어렵고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시장에서 소리치며 손님을 모을 수도 없고, 문을 닫아걸고 외부로 나가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무서운 시간이다. 물에 젖은 나무를 비벼 봐야 소용이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나의 직장은 내가 노력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나의 작은 친절로 손님과의 소통이 이우어져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어 긍정의 힘을 믿으며 극복하고 있다.


삶은 고통이다. 어느 종교나 사상도 한결같은 얘기이나 이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저 참고 기도하고 베풀고 나눔을 가르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쁜 짓을 하고도 벌 받지 않고 잘 살고 있으며, 대단히 많은 사람들은 착함에도 고통을 받으며 좀처럼 고달픈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너무 불공평하다. 모든 종중에서 가장 똑똑한 인간이라면 당연히 자연적인 불평등조차 평등하게 만들고 모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같이 누리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사람다운 사람이지 않겠나? 세상이 이와 정반대로 가는데

내세의 영생과 편안함이 무엇에 소용이 있으며, 살아 겪는 세상의 고통이 무슨 영생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 말인가. 내 삶을 신께 의탁하면 내일은 행복이 뚝 떨어질까?


지구 역사 이래 인간의 출현이야말로 가장 나쁜 출현이고 그들의 진화가 오히려 악영향을 끼쳐 지금은 환경적 퇴행으로 치닫고 있다. 지상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 식물과 동물은 인간이 위대하다고 하는 '생각'이 없다. 어려운 뜻으로 그간 이해했던 '무념무상'의 '해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없으니 삶이 없고 죽음이 없다. 식물은 봄 되면 싹이 트고 여름에 자라 가을이면 혼자 영글어 씨가 떨어지고 겨울을 자고 다시 봄이면 태어난다. 짐승은 배고프면 먹고 때 되면 잉태하고 낳아 힘이 자랄 때까지 보살피다 죽는다. 그 존재들은 인간이 바라고자 하는 '천상의 생활이고 구원의 길'을 이미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을 버려야만 최고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감히 말해 본다. 종교가 가르치고 선인이 가르치는 어렵고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보다 '생각하지 말고 살아라!' 식물이 자라듯 동물이 생활하듯 하면 인간도 평등하여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될 것이고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 인간으로 이미 던져진 존재다. 남보다 뛰어난 능력도 재력도 없다. 산다는 것에 대해 질문의 시작과 해답은 마치 머리가 제 꼬리를 물고 바닥을 돌고 돈다. 남이 내 몸이 될 수 없고 내가 남의 몸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생각하는 고독한 존재'다. 신을 일컬어 인류학자는 '모든 것을 관장하는 이'로 규정하였고 과학자는 '인간이 모르는 것'을 신으로 떠밀었다 한다. 둘 다 인간의 '생각'능력과 그 발전을 토대로 하는 다중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생존 그 끝이 우려와 희망으로 섞인다. 고통은 생각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삶은'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의 의미'이며 과학의 언어로 생명의 본질이 원자나 분자들에 있는 게 아니라 이 물질들이 '결합하는 방식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비록 하고자 하는 일이 지금 당장의 고통이라도 순간순간에 하는 마음고생도 삶의 과정이고 무엇으로 새로이 출현하느냐의 화학반응과정일 것이다. 그러면 됐다. 무슨 노력이 더 필요하고 어떤 신에 의탁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가진 재주껏 물에 젖은 나뭇가지를 비비다 보면 햇살에 마르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마르게 할 것이니 내 손바닥이 부르틀지언정 나뭇가지에 불이 일 것이다.

궁극의 종교는 뒤 돌아보고 내일을 또 살아가는 나. 인간의 선한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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