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갯불이 이는 시간
아침 7시 43분. 밤새 내려앉은 사무실 공기를 가르며 전등을 켠다.
컴퓨터 스위치를 누르고 부팅부터 운영 시스템 로그인이 완료되기까지 2분여 시간.
첫 손님이 들어왔다.
"이것 좀 부쳐줘요. 바로 되나요?"
"네"
오늘 첫 손님으로 다녀간 이는 화물 운수업을 하는 얼굴이 검고 주름 많은 늙수레한 나와 비슷한 또래의 가장이다. 나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편이다. 직장과 집이 멀어서 남들과 같은 시간대에 출근을 하면 교통체증으로 길에 머무는 시간이 사뭇 길어서 어차피 갈 바에야 미리 서둘러 가는 게 낫다 싶어 그렇게 한다. 우체국 문을 열기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각종 공과금 고지서를 들고 기다리고 계시다가 첫 손님으로 입장하였지만, 지금의 내 사업장은 금융업무 취급을 하지 않고 큰 도로가에 있어서 화물 운수 사장님들이 오는 경우가 많다.
첫 손님, 얼마나 가슴 설레고 얼굴 붉어지는 말인가!
하루의 시작은 해가 떠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말은 안 해도 하루의 운세를 기대하는 '첫 손님'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
지내 놓고 보면 별 의미 없는 기대치지만 처음이라는 첫인상은 너무도 강렬하게 일상에 작용하지 않은가?
나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첫인상이란 기억해보니 양수에 젖어 쪼글한 피부, 붉고 가녀리고 나약한 모습에 탄생의 신비감과는 좀 멀었던 것 같다. 피부에 탄력이 돌아오고 울고 자는 모습을 몇 번 겪고 나서야 내 새끼 내 아이임을 실감했다. 나도 세상에 첫 손님으로 등장했을 때는 그랬을 테다.
살아가면서 만남이 수없이 이루어지고 인연이 닿으면 지금까지 굵거나 가는 연결 끈으로 이어진다. 아주 가깝게 연결된 나의 가족 나의 아이들이지만 자라면서 속 썩고 안타깝고 즐거운 경험은 내 마음대로 이루어진 경험이 아니다. 타인으로 만나서 좋은 인연으로 지금껏 관계를 유지하고 있거나 짧은 만남조차 악연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이 또한 내 의지대로 되는 경험이 아니었다. 모두가 첫 손님으로 이루어진 일과 경험이 나의 삶에 관여하고 깊은 인상을 주었다.
관상가나 점쟁이들이 손님을 맞이할 때 아마도 십중팔구는 첫인상으로 길흉을 이야기하고 이 루어 길 바라는 마음으로 생활의 비책과 훈수를 들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 인격을 결정하고 인생을 결정한다는 말에 절대 동의하나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능력이 없어 점술가 되질 못했다. 내 몸을 움직여야 생계가 이루어지는 보통 사람의 그렇고 그런 생활의 불을 밝힐 뿐이다.
내 사업장에 첫 손님으로 자주 찾는 이들이 대부분 그런 이들이다. 내가 보는 그들의 첫인상은 볕에 탄 검은 얼굴과 거친 손을 가졌고 말은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질 않는 모습이다. 세련된 미인들의 얼굴이 아니다. 얼굴엔 고단함이 묻어나고 온 누리를 밝게 밝히는 빛을 내는 횃불 대신 식구가 싸준 도시락 가방이 들려져 있다.
그이들이 시작하는 하루에 내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까? 어떤 인상으로 인식했을까?
이른 아침밥을 먹고 남보다 이른 시간에 생업의 길로 나가는 중에 부지부식의 시간은 삶이라는 번갯불로 나와 교차하였다. 이것이 삶의 원동력인지 인연인지 모르겠다. 다만, 오늘의 인연으로 서로에게 좋은 날이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