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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세상을 외면하고

아무 생각 없이 부산에 '풍덩'

by 김규성

부산에 대한 나의 시원(始源)은 어머니가 큰아들, 형을 군대에 보내 놓고 부산에 있는 부대에 배속지로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불원천리 한걸음으로 달려간 첫 면회지였고 그곳은 한 겨울인데도 '눈이 오지 않는다'는 이국적인 곳이었다. 그리고 선잠같이 지난 나의 제주 신혼 비행 대기지가 부산이었으며, 예식이 끝나자마자 당시 최고 등급인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서너 시간 밤을 달려 내린 역이 부산역이다. 신혼 첫밤을 지낸 곳이 송정의 어느 호텔이었으나 이젠 기억조차 흐릿하다. 이렇게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 속의 60년대 말의 부산과 희미해진 90년대 초 신혼여행 경유지로 들른 부산이 내가 알고 경험한 부산의 전부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긴 연휴가 있었나? 1박 2일 딸과 동행이다. 계획 없이 풍덩!


가을비가 무색하게 달리는 열차는 창문이 차광막에 가려지고 눈 맞춤이 불가능하도록 빠르게 달려 풍경이 없다. 사람은 모두 고개 숙인 채 화면에 몰두한다. 두 시간이 채 못되게 주파한다는 열차의 시간은 가까워졌지만 내 무지의 아득함은 멀고 멀어서 가늠하기 어렵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고 손가락으로 확대 축소를 해봐야 하는 짓이 부처님 손바닥에 손오공 놀이다. 내려서는 교통수단은 뭐로 하지? 잠은 어디에서 잘꼬? 구 시대의 학습경험은 쓸데가 없다. 젊은 세대가 구세대에게는 내비게이션이다. 걱정 붙들어 매 놓으라는 딸의 말을 의심 반 믿는 구석 반으로 여행에 뛰어들었다는 게 솔직하다.


버스에서 부산을 느끼다


부산이다. 뒤돌아볼 것 없이 출구 역마당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는 시감(視感)은 두껍질 않다. 눈 뜨면 산이고 넓어야 들인 줄 아는 익숙함에 시냇물이 휘돌아 나가야 사람 사는 동네라는 산골 태생 사람 눈에 비친 첫인상이다.

딸, 우리 느릿하게 버스로 다니자. 산도 보고 물도 보고 사람도 보고. 그러나 첫 시각은 틀렸다. 순간순간 보였다 사라지는 풍경에 바다는 가깝게 보이고 커다란 무역선들이 떠 있다. 버스 정류장간 거리도 길고 속도도 내가 사는 곳보다는 빠르게 달린다. 사람들의 모습과 쓰는 말이 사뭇 다르다. 부산 사투리가 들리지 않는다. 승객들 거의가 외국인들이다. 신기하게도 외국인들까지 예외 없이 모두 카드로 버스요금을 지불한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사는 도시는 2022년 7월부터 버스 요금은 무조건 카드 결제로만 받고 카드 결제를 하지 않으면 계좌 이체를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 깜빡하고 카드 잔액이 소진 사람들이 애타게 카드 단말기에 결제를 사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스를 수 없는 편리에 내 남이 따로 없고 국적이 따로 없다.


한국이 낯선 한국사람


배꼽을 드러나게 입은 딸의 복장이 눈엣가시였는데 대부분이 그렇게들 입고 있고 남녀 모두가 문신 하나쯤은 내놓고 자랑한다. 옛날에는 중죄를 지은 죄수 얼굴에 자자라는 형벌로 새긴 문신이거나 죽어도 잊지 않겠노라는 연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곳에 새기는 연비(戀秘)가 내가 아는 문신이다.

문화라는 말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과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고전적으론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면 자연은 모든 것을 허용하고 문화는 통제한다고 했다. 어느 게 고차원의 문화이고 어떤 게 자연의 범위인지는 모르겠으나 하고 싶은 욕망이 문화의 근원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오늘의 세계는 가깝고 문화는 빠르다. 내리려 일어서는 정거장을 앞두고 현금으로 요금을 내는 승객이 있고 당연히 거스름돈을 내주는 운전기사의 모습에 한숨이 돌려지게 하는 부산을 본다.


처음 맛본 탕후루, 익숙한 돼지 국밥의 충돌 혼란을 일으키다


첫 방문지로 잡은 송도 해상구름다리를 걸어 바닷바람을 쐤다. 비가 그칠 않아 해상케이블카를 탔다. 둥그런 호를 따라 이루어진 해변도시가 세수한 얼굴 같다. 사람 사는 곳이 압축된 부산의 시장이 궁금하다. 자갈치 시장은 명절연휴로 닫았고 연이은 깡통시장도 듬성듬성 열어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없어 서운하다. 시작도 모르고 끝도 모르게 나온 곳이 국제 시장 골목이다.


"아빠 나 저거 하나만 사줘! 맛있어"

과일모양의 꼬치였다. 떡볶이 김밥집은 내 주변에도 많고 얼마 전엔 내 옆집에 탕후루라는 가게가 새로이 들어섰는데 저런 모양의 과자를 진열했다. 요즘 유행하는 신업종이겠거니 여기며 속으론 뭔가 싶었다. 딸이 사 온 것은 귤모양 꼬치였다. 맑은 유리 얼음이 뒤덮인듯하다. 생과일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보기에는 딱딱하고 설탕에 색소를 입힌 과자였기 때문이다. 종류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란다. 잘도 먹는다. 하나 먹어보라고 건네주니 실제 과육에 설탕물을 입힌 꼬치다. 신맛을 잘 먹지 않는 나로서는 단맛이 칠해진 과육을 한입 베어 먹는 첫 경험에 야릇한 혼란을 가져온다.


경험이란 이렇게 예고 없이 도둑처럼 번개처럼 다가와서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놓는다. 못살고 못 먹었던 6.25 동란 속에 피어난 돼지국밥 뼈다귀탕 밀면이 부산의 대표음식이다. 먹을 게 없어 뼈다귀를 고아 뽀얗게 우려낸 육수에 적은 고기나마 얇게 썰어 온 식구들이 골고루 나눠 먹고자 했던 소박한 바람의 이야기가 있다. 혀를 자극하는 단 맛 위주의 기호 소비 식품은 1회용 소비식품이다. 오직 돈이라는 가벼운 편의만이 다가온다. 대하는 태도를 달리해왔으나 이제 부산에서 내 순정은 무너지고 습관적으로 편의인 '냉커피'가 들려 있었고 호기심으로 '탕후루' 과자가 국밥보다 먼저 들려졌다.


어디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선물 '영도다리 도개'를 보다


바람이 부는 데로 걸음이 가는 데로 걷다가 '매주 토요일 오후 두 시 영도다리가 열립니다.'라는 여행기사를 아침 열차에서 본 기억이 났다. 오늘이 마침 토요일이다. 전쟁으로 이산의 아픔이 서린 옛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 노랫말에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의 현장이다. 다리를 들기 전 긴 사이렌이 울린다. 철제 구조물의 무게는 약 590톤, 땅으로부터 열리는 각(도개각)은 55도라 하는데 그보다는 훨씬 치솟은 각이 다. 만개 시간까지 대략 5분 남짓한 시간이 흘렀나?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손에는 휴대폰 카메라로 들려진 다리 모습을 담기에 여념이 없고 다시 닫기까지 총 개폐시간은 15분가량이었다. 짧은 시간이 아쉽긴 하나 교통사정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갈매기 몇 마리는 제 갈 곳으로 날아간다.


육지로 이어지는 길과 바다로 이어지는 길의 교차로가 영도다리다. 동시(同時)라는 말이 여기에서는 불리(不理)인 화(禍)다. 한 곳이 멈추어야 한 곳이 통하는 순리(順理)가 있다. 일제의 수탈로 건설되었지만 숱한 이들의 가슴속에 슬픔이거나 희망으로 자리하였고 이유는 다를지라도 녹아 있는 사연이 생활이고 역사가 되었다. 난간밑 공원광장 귀퉁이에 옛날엔 이 주변에 점(占) 집이 참 많았다고 소개한다. 전쟁통에 살아 있으면 여기 영도다리로 와서 만나자고 했던 약속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루어졌는지 다리 난간만이 알 것이다. 내가 눈여겨본 것 중 하나가 있다. 소유권만 있는지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한쪽은 현대식 철판으로 둘러쳐 가린 벽이고 공터에 연한 다른 쪽은 널판목으로 덧대어 벽을한 집이다. 부산이기 때문에 소금창고보다는 오래된 생선창고였을 건물인듯한데 다리와 함께 이야기를 담아주면 훌륭한 역사 유물이 될 듯싶다. 보전을 바라는 아쉬움이 짙다.


민생을 바라보고자 정자에 오른다는 목민관의 마음으로


해가 졌다. 부산의 명물 용두산 공원의 '다이아몬드 타워'다. 쉭~. 엘리베이터로 수 초(秒)만에 우뚝 선 탑 전망대에 올랐지만 마음은 생활을 조망하고자 찾았다. 우리의 산이나 높은 언덕에는 다른 나라와 달리 정자가 있다. 화려하지 않으나 생활 속의 여유 수수한 쉼 휴식의 공간으로 이해한다. 규모나 형태 비교에 억지스러움을 덧씌우자면 타워의 쓰임과 의미만은 한국의 정자와 같지 않을까 싶다. 조선 성종 때 서거정이 공주 금강변의 정지산 취원루에 쓴 글이 생각난다. '이 정자에 오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들판을 바라보면서 농사의 어려움을 생각해 보게 하고, 민가를 바라보면서는 민생의 고통을 알게 하고.....' 목민관은 아니지만 높은 곳에 올라 부산의 밤을 바라본다. 넓고 긴 불빛이 어느 한 곳은 깊은 어둠에 빛 한 점이다. 오밀조밀하게 밝은 불빛 아래에 골목이 있고 밥 짓는 냄새가 날 것이다. 어디나 똑같은 세상살이의 냄새겠으나 이곳은 바닷내가 더 짙겠다. 저 아래 어느 한 곳에서 나의 모습도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해찰하다 비척비척 흔들린다. 욕하고 반성하고, 왜 저러는지 모르는 행동이다. 언제나 그렇듯 밤이면 집으로 아니 이번엔 숙소로 돌아간다.


뜻하지 않은 불가의 인연이란


해동용궁사는 아담하니 운치 있었다. 해안가 암반에 자리해서인지 드나드는 사람들의 어깨가 겹치고 발끝이 차인다. 손때 묻은 득남불이 초입에서 많은 이들을 맞이하고 소원 하나는 꼭 이루게 해 준다는 안내글이 불심으로 이끄는 절인가 보다. 주불로 관음불을 모셔졌고 보기 드문 와불도 모셔져 있다. 많은 내외국인들이 바다를 향한 해수관음상을 배경으로 삼고 나는 삼배로 언제나 한 분이신 부처님께 인사를 했다. 절은 해안과 잘 조화를 이룬 절경이다.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고 틈틈이 넘겨 보아도 흡족한 그림이 없다. 마침 풍경을 배경으로 찍어주는 사진사가 있어 한 컷 찍고 인화를 부탁했다.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모든 이들이 사진 명당이라고 여긴 자리는 같았다. 분명 내 핸드폰 사진 속에 딸과 나는 같은 바위를 밟고 서서 찍은 사진이 있다. 그이는 내려서서 웃으라고만 했다. 풍경 속의 인물이 달랐다. 이방인이 절 속에 어우러진 풍경이 있다고나 할까? 사소한 차이가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른다.


부산 여행은 정오를 넘기면서 마음은 이미 마무리 수순이었다. 해안가를 따라 걷는 산책길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 불가의 말로 하자면 '어떤 인연'이 스친 것이다. 승복차림의 외국인이 미소를 지으면 부처상이 그려진 부적을 건네고 염주팔지를 끼워주며 미안하다 한다. 순간이지만 미안하다는 말이 남다르게 느껴져 불전함에서도 열지 않은 지갑을 열어 그이에게 시주를 했다. 그 많이 지나는 사람들 중에서 유독 우리에게만 다가왔으니 이건 무슨 인연인가 우리가 너무 쉽게 생겼나라며 뒷말을 삼았다. 내 지갑에 있던 돈의 윤회처를 의심해 봐야 소용이 없다. 그이에 많지 않은 돈을 건네주며 용처를 물을 수는 없다. 오늘 수없이 찍어댄 사진을 놔두고 사진사에게 부탁한 마음은 무엇이며 그이의 노고로 우리는 기쁨을 얻었다. 나는 무심하게 시주했고 받은 이는 내가 얻은 기쁨 같은 알 수 없는 반가움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면 됐지 세상은 뜻밖이지 않은가?


사실이 아닌 허구를 기대하며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려면 최후의 만찬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빠 회는 어때? 나 무척 먹고 싶거든!"

"오냐, 온냐"

역방향과 동떨어지게 맛집으로 간다. 먹는 기쁨보다는 활력의 섭식이 먼저라는 말을 억지로 누르며 따라가니 문 밖에서 잠시 대기하라는 말을 듣고 기어이 한 소릴 내뱉고야 말았다. 아니다.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걱정이 되는, 무기력하게 온몸으로 맞아야 할 걱정을, 다가오는 걱정을 위해서라도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기다리자라는 딸의 말을 따른다. 기다리자. 기다리며 함께 하자.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핑계 삼아 술을 불렀다. 걱정 아닌 걱정을 찍으며 목에 넘기니 왜 사냐 묻는다면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가 아닌가 대답하겠다. 오후 낮술이 도도하다. 부산이 단풍으로 앉는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백석(백기행)의 시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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