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까?

뿔난 강아지는 강형욱에게, 못난 음식은 백종원에게, 어려운 경험은?

by 김규성

나는 지금 한 없이 쪼그라진 상태다.

수압에 눌려 찌그러진 공, 모래밭 속 한 톨의 모래.


평범한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런데 그 평범한 하루 중의 어느 한 일이 화살이 되어 내게 꽂혔다.

사건은 이랬다. 우체국 고객 중의 한 분이 외국에 있는 친지에게 평상시대로 옷가지 몇 개와 일상 용품을 담아 보냈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고 그 고객은 우체국에 분노의 얼굴로 왔다.


"어떻게 일을 처리했기에 관세를 내냐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줘!"


내가 뭘 잘 못했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외국으로 가는 물품은 국내 소포와는 달리 제한 물품도 많고 영문 주소 작성은 물론 보내는 물품 목록과 함께 가격을 적어 보내게 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신고하는 물품 목록과 가격은 혹시 모를 분실이나 훼손 시 우체국에서 손해를 보상하는 기준이 되는 반면에 상대국에서는 이를 기준 삼아 관세를 부과하기도 한다. 내 마음대로 물품가액을 적는 것 또한 아니다. 비싸다고 모두 관세가 부과되는 것도 아니며 싸다고 면세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국의 정책과 문화의 차이, 더 깊숙이는 당일 근무하는 세관원이 발췌하여 검사하는 일종의 운도 배제할 수 없는 경우의 일이기도 하다. 우체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업무 영역임에도 이런 사정을 모르는 고객들은 모두가 우체국 일인 줄 알고 불편한 심정을 토로한다. 물품의 가격은 겉과 속이 달라 직원으로서는 순간적인 고민거리다. 민원인은 우체국에서 물품 가격을 높게 적어 주었으니 그 관세를 변제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요구였지만 공공기관의 일을 대행하는 자로서 우선 사과의 말을 하였다. 그러나 이미 확고하게 마음먹고 이의를 제기하는 데에는 백약이 무효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방문 시에는 목소리까지 높이게 되었다. 결과는 상급기관 민원 게시판에 올려지고 '민원해결 조치 보고'를 통보받게 되었다.


관세 부과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내게도 불찰이 있지만 민원인은 해외우편 발송이 처음도 아니었다. 민원인과 옥신각신하는 사이 나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이 일방으로 쏠리는 책임만이 나를 한 없이 쭈그려 뜨려 땅바닥까지 닿게 하였다. 민원인으로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돈을 세금으로 내게 되었으니 화풀이를 한다손 치더라도 내부적으로는 부당 민원에 대한 심의 기구조차 없이 참고 감내하라는 수준의 지시 통보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상일이란 게 좋은 사람들의 의지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상부상조한다는 보험이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았고 상식을 넘어서는 보험 처리와 피해 보상 요구는 갑과 을의 관계를 복잡하게 꼬아 버린다.


나쁜 일들에 대해 스스로는 '찻잔과 받침대'라는 쓰임의 조화로 정리를 하고 있었다. 차를 마시다 보면 찻잔을 타고 한 방울 정도의 차가 흘러내린다. 받침대가 없이 마시면 놓는 자리에 자국이 남게 된다. 받침대의 쓰임은 이 불편함을 보완하는 선한 쓰임이라 비유하였었다.


자신이 타던 자전거를 도둑맞은 젊은 청년의 글을 읽었다. 자전거를 잃고 나서 서운한 마음이 잠시 있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며칠 후 우연찮게 자신의 도둑맞은 자전거를 발견한다. 원래의 주인으로서 그 자전거를 다시 가져갔지만 영 개운치 않은 마음이 있어서 다시 그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는 생활 글이었다.


이번의 경험이 그와 같았다. 그동안 무심하게 행한 대필(代筆)이 화를 부른 것이었다. 누구는 그걸 왜 대신 써주었느냐고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한글 주소 쓰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고 이 어려움에 작은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사회에서는 '친절'이라 부른다. 말 많고 사건 사고 많은 현대에 법을 들이대자면 손끝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이제부터 작은 친절이 낚시 바늘과 같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고 사람을 대함에도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너그럽게 이해한다는 가치 중심보다는 아프면 소리 지르고 손해 나는 일은 가차 없이 거절하리라 마음먹는다


오늘 딸이 친구 이야기를 한다. 좁은 도로에서 마주하는 차를 피하려고 차를 '쪼끔' 후진했는데 뒤차에 흠짐을 냈대. '괜찮아요! 보험 처리하면 몇 푼 안될 거고 그냥 가세요' 해서 왔는데 나중에 차량 수리비에 병원 치료비에 몇 백만 원이 청구됐대!


피해자가 누구인지 심각하게 꼬여 버렸다.


점점 개인의 권리는 확대되고 상식과 체면의 자리는 이렇게 스스로 지워간다.


커피를 마시며 잔을 내려놓자 바닥에 커피가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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